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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카레니나> 리뷰 (스포일러 포함)

미성숙한 사랑이 범람하던 시대

by 조종인
XL 필자가 읽은, 열린책들 버전 안나 카레니나 (상)


영화 <크로니클>을 보면, 갑작스럽게 얻은 초능력을 통제하지 못하고 폭주하는 청소년들이 나온다. 그 때 필자는 "통제할 수 없는 힘은 축복이 아닌 저주다"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안나 카레니나에서 안나의 상황도 어찌보면 이와 동일하다볼 수 있지 않은가.


안나는 상당히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남편 까레닌이 있고, 그와의 사이에서 세료자라는 아들 한 명을 두었다. 까레닌은 남의 감정을 이해하는 것이 어려운 사람이고, 안나는 그런 까레닌을 항상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둘은 겉으로 보기에는 이상적인 부부이지만 작품의 시작부터 그 안은 상당히 곪아있는 상태이다. 그러던 중, 안나는 오빠인 '스찌빠'의 불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잠시 오빠가 있는 곳으로 이동하고, 그곳에서 스찌빠의 아내 '다리야'의 동생인 '키티'를 만난다. 키티는 고풍스럽고 우아한 분위기를 풍기는 안나를 동경하지만, 이 동경은 얼마 안 가 무도회에서 깨지고 만다. 안나는 무도회에서 만난, 키티의 짝사랑 상대 브론스끼와 제대로 눈이 맞아버린다. 그리고 이 사태로 인해 상황이 엄청나게 꼬여가기 시작한다.


XL <안나 카레니나>의 영화판 DVD. DVD에 나오는 인물은 왼쪽부터 카레닌, 브론스끼, 안나다.


안나와 브론스끼는 밀회를 계속한다. 하지만 그 밀회라는 것이 정말 둘만 만나는 것도 아니고, 주변에 지켜보는 사람들이 있는지라 둘의 만남은 러시아 사교계에 암암리에 알려지는 사실이 되어버린다. 설상가상, 안나는 브론스끼의 아이마저 임신한 상태가 된다. 그러던 중 안나는 경마장에서 브론스끼가 슬퍼하는 모습을 보고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고, 소문으로만 듣던 불륜의 정체를 실제로 확인하고만 카레닌은 이를 보고 '아내의 의무를 다하라'는 경고를 준다.


이 상황이 발생한 후 일은 더 심각해진다. 안나는 브론스끼에게 미쳐 점점 질투와 증오, 애정을 구분하지 못하는 상태가 된다. 심지어 아이의 출산일이 되자 사경을 헤매며 까레닌을 찾게되고, 안나-까레닌-브론스끼는 예상치 못한 삼자대면을 맞이한다. 까레닌은 이들을 보기 전까지만 해도 증오가 몸을 지배하는 상태였지만, 이들을 직접 목도하자 용서하겠다는 생각에 이른다. 그러나 안나와 브론스끼는 이런 까레닌을 무시하고 사랑의 도피를 떠나버린다.


하지만 현실을 외면하고 떠난 도피 생활이 행복할 수는 없는 것. 안나는 사교계에서 버림받았기에 다른 사람과 만날 수도 없으며, 그토록 아끼던 아들 세료자는 까레닌의 방해로 제대로 만날 수도 없어 완전히 고립된 상황이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안나 안의 브론스끼에 대한 질투와 증오의 감정은 점점 커지고, 그 감정이 안나라는 사람을 집어 삼켜버린다. 결국 안나는 브론스끼를 저주하기 위해, 기차에 몸을 던져 자살하고 만다.


dMeJzJiRtuh6lRB-Zb-55s8u2JdElWPFCwqULM218ti53JbYsauDU3uiDT5soJervTXR71aWJMY-AJOSrEWuU7fGnZ0SPTrYICB81VMSKRuWgPihA4Jdjm8=s1920-w1920-h1080 우연한 계기로 초능력을 얻게 되지만, 그 능력을 감당하지 못하고 파멸에 이르는 청소년들을 그린 영화 <크로니클>. <안나 카레니나>의 큰 줄기도 이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겠다.


줄거리 요약은 이쯤하고, <크로니클>에서 내가 느꼈던 감상과 이 이야기를 연결지을 때가 왔다. 둘의 이야기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뜻하지 않게 얻은 것으로 인한 파멸'이다. 안나와 까레닌의 결혼은 까레닌의 친척이 강요한, 당사자들은 전혀 원하지 않는 결혼이었다. 이 둘은 나이차이도 많이날 뿐더러, 무뚝뚝하고 남의 감정을 이해할 수 없는 까레닌을 안나가 사랑할리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던 중 브론스끼를 만난 안나는 '처음' 찾아온 사랑의 감정에 어쩔줄 몰라한다. 안나는 성인이지만, 사랑에 한해서는 누구보다 미성숙한 한 명의 어린아이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녀의 이런 정신상태와는 다르게 현실에서 그녀는 이미 결혼이라는 제대로 묶여있는 유부녀였다. 여기서 안나는 현실을 뒤로 한 채 사랑이라는 감정에 몸을 맡긴다. 일종의 현실 도피라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결과, 그녀는 그녀를 지지해주던 사람들 대부분에게 버림 받고, 브론스끼의 사랑만을 갈구하는 처지가 된다. 브론스끼는 안나의 집착과 질투에 점점 그녀에게 사랑을 잃어가고, 둘의 사이는 예전과 같은 뜨거운 상태로 돌아갈 수 없어진다. 결국 질투와 증오에 몸을 맡긴 안나는 브론스끼를 '저주'하기 위해 스스로 생을 끊는다. 사랑이라는 '저주'를 받은 한 여인이 자신이 사랑했던 남자를 '저주'하기 위해 자살을 택한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AS108HHMSs1CCOa9nwZFcsNykwgxa6kG.jpg 불륜을 저지른 여자임을 알면서도, 쉽사리 미워할 수만은 없는 여자.

불륜이라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엄청난 배신 행위다. 하지만 그럼에도 안나에게 동정을 하게 되는 이유는 뭘까. 그 해답은 당시 러시아 사교계의 상황에 있었을 것이다. 원치 않는 결혼을 한 안나는 사랑을 어떻게 대하는지 모를 어린아이였고, 어린아이답게 행동했을 뿐이다. 하지만 그녀가 처한 현실은 그녀의 미성숙한 행동을 두고볼 수 없었고, 세상으로부터 고립되는 처벌을 내린다. 이 이야기는 과연 안나라는 개인에게만 해당하는 특별한 이야기일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안나 카레니나>라는 작품의 시작은 안나의 오빠 스찌빠의 불륜이고, 작중 러시아 사교계에는 연애결혼을 매우 이상한 것으로 보는 문화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사랑이라는 감정에 성숙할 수 있는 사람은 존재했을까. 사랑이라는 감정따위 없이 집안에서 정해준 사람과 결혼을 하고, 상대방이 불륜을 하더라도 사교계의 시선을 생각해 쉽게 이혼조차 할 수 없는 이 사회에서 말이다.


안나 카레니나는 매우 입체적인 소설이다. 이번에 다른 주제는 그 중 한 가지에 불과하다. 다름에 또 글 쓸 거리가 생각나면 안나 카레니나에 대한 글을 써보도록 하겠다. 150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 때문에 읽는 걸 망설이는 분들이 계시다면, 강력히 추천드리고 싶은 책이다.



개인 평점 :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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