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TI에 대한 단상
3년 전, 대학원에 들어오고 다른 연구실 사람들과 술자리를 가질 때였다.
나는 사람을 그다지 많이 만나지 않는 성향인데다가, 그 해는 그 성향이 특히 두드러질 때였다.
그러다 여러 사람들과 동시에 마주하는 술자리를 가지고 있으니, 알지 못하던 세상의 문물(?)과 유행들이 나에게 휩쓸려 들어오는 느낌을 주기도 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놀랐던 부분은 "MBTI의 유행"이었다.
물론 필자도 인터넷을 통해 MBTI라는 키워드가 많이 언급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한 자리에서 이렇게 오랫동안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주제라고는 생각지도 못했기에, 당시에 꽤나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난 ENFP라 원래 이런식이야"
"넌 ISTJ니까 그렇게 행동하는 게 이상하지 않아"라는 말도 그 때 처음 들어보았다.
MBTI는 16가지 타입으로 사람들의 성격을 범주화하고, 처음보는 사람이라고 해도 MBTI를 통해 그 사람의 성격을 쉽게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쉽고 재밌게 쓰이는 것 같다.
하지만 이런 MBTI의 유행 추세를 보면서, MBTI가 '사람의 성격을 획일화'시키는 게 아닐까하는 걱정이 들기도 한다.
MBTI 검사 결과 I가 나온 사람이라고 해서 외향적인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 않는 것이 아니다.
MBTI 검사 결과 T가 나온 사람이라고 해서 감정적인 행동을 하지 않거나 공감 능력이 없는 것이 아니다.
물론 사람들이 보여주는 반응은 농담 섞인 것들이 많지만, MBTI를 지나치게 '과학'이나 '진리'로 받아들이는 세태에는 거부감이 들때가 많다. 사람의 성격이란 건 정해진 틀로 완벽히 규정할 수 없는, 때론 자기 자신조차 명확히 정의하기 어려운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떤 사람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 흔히 "저 사람은 ~한 상황에서 상냥한 모습을 보였으니, 나쁜 사람이 아니야"와 같은 말을 한다.
하지만 특정 상황에서 보여주는 모습 만으로 사람의 성격이나 특성을 완벽하게 캐치할 수도 없거니와, 사람에게는 양면성이라는 것이 존재해서 서로 반대되는 것 같이 보이는 특성을 둘 다 가지고 있을 수 있다.
인간은 본래 한 가지 모습만을 가지지 않는다. 사람의 양면성, 그리고 마음속에 품고 있는 모순은 예전부터 다양한 문학 작품에서도 다뤄져 왔다.
가장 일반적이고 널리 알려진 미신 가운데 하나는, 사람들은 저마다 고유한 특성을 지니며 따라서 대개 착한 사람과 악한 사람, 현명한 사람과 우둔한 사람, 정열적인 사람과 무기력한 사람 등으로 구분되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런 단정적인 존재가 아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에 대해 말할 때, 그 사람은 사악할 때보다 착할 때가 많다든지 어리석을 때보다 현명할 때가 많다든지 무기력할 때보다 정열적일 때가 많다든지 아니면 그와 반대로 말할 수도 있지만, 그 사람은 착한 사람이라든가 현명한 사람이라든가 아니 면 악한 사람이거나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렇지만 우리는 언제나 사람들을 그런 식으로 분류한다. 그것은 잘못이다.
사람은 강물과도 같은 존재다. 물은 어디에서나 똑같은 물이며 그것이 어디로 흘러가든 역시 물일 뿐이다. 다만 강은 그 폭이 좁기도 하고 물살이 빠르기도 하며 또 넓고 고요하기도 하고 맑기도 하고 차갑기도 하고 탁하기도 하고 따뜻하기도 하다. 사람들도 이와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모든 인간적 특성의 싹을 내면에 지니고 있어서 어느 때는 한 특성이 나타나고 또 어느 때는 다른 특성이 나타나며, 따라서 같은 사람에게서도 전혀 엉뚱한 특성이 나타나곤 하는데 누군가에게는 이런 변화가 매우 심하게 일어나기도 한다. 네홀류도프는 바로 그런 부류에 속했다. 육체적 원인과 정신적 원인 모두로 인해 이러한 변화가 그의 내면에 일어났으며, 지금도 그의 내면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 <부활>, 톨스토이
톨스토이의 <부활>에 나오는 말이다. 사람의 성격을 강물에 비유해서 설명하고 있다. 사람의 성격은 어떤 상황에 처해있느냐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강물로 비유하자면 상류와 하류에 흐르는 물이 다르고, 어떤 때는 물줄기가 세고 어떤 때는 약하다), 어느 하나의 속성으로 정의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서로 모순인 두 가지 내용이 모두 올바른 것이 될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인간에게는 모순을 이루는 두 가지 내용이 모두 사실일 수 있습니다. 게다가 서로 내용이 다르다고 해서 곧 모순이 되는 것도 아니지요." (후략) - <라셀라스>, 새뮤얼 존슨
대립되는 사람의 성격('모순')에 대한 서술이다.
대립되는 성격을 보이는 나의 예시를 들어보자면,
아무것도 하기 싫을 정도의 짜증을 느끼면서도, 무언가 하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은 내가 있다.
불편하고 우울한 감정 속에서 벗어나고 싶다가도. 그 감정을 받아들인채 편해지고 싶은 내가 있다.
어떤 사람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싶다가도, 존중 따위는 개나 줘버린채 내 앞에 있는 사람을 짓밟아버리고 싶은 내가 있다.
지나칠 정도로 순수한 나를 발견할 때도, 영화나 소설 속 악당과 다를 바 없는 추악한 나를 발견할 때도 있다.
과연 두 대립되는 성격 중에 무엇이 진짜 나인가? 그것은 나 조차도 알 수 없다.
우리는 불확실한 것보다 확실한 것을 좋아한다.
불확실한 것은 마주할때마다 새롭게 정해야할 것이 많지만, 확실한 것은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일의 효용성 또한 확실한 것을 다룰 때 훨씬 높다.
하지만, 이를 바꿔말하면 확실한 것은 '획일적'이고, 새로운 것을 전혀 창출할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어제와 다른 나 자신, 어제와 달라보이는 나의 친구, 일주일 전과는 달라보이는 남편.
부정적인 결과가 나올 지도 모르지만, 항상 똑같은 따분함을 갖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해본다.
적어도 내가 바라는 이상적인 삶은 '확실하지만 따분한 삶'보다는 '불확실하지만 다이나믹한 삶'에 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