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코스, 너도 할 수 있어!

오히려 신나고 즐겁게 달릴 수 있었던 풀코스

by 냥냥별


42.195km, 나는 도저히 갈 수 없는 거리라고 생각했다.




그랬던 내가, 처음으로 그 거리에 도전하기 위해 출발점에 서게 되었다. 2년 남짓, 그동안 다양한 방법으로 꾸준히 훈련을 했고, 달리는 거리도 점점 늘려서 30km까지는 2번 정도 경험을 쌓았던 터라 조금은 자신감이 생긴 상태였다. 하지만 30km 이후부터는 멘탈도 흔들리고 다리도 덜덜 떨려서 결국 걷게 된다는 걸 남편에게 들었기 때문에, 걱정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내 마음속에서 가장 많이 차지하고 있던 감정은 너무 '재미있을 것 같다'는 설렘이었다.


주변 지인들은 나의 풀코스 도전에 대하여, 참 대단하다면서도 '그 힘든걸 굳이 왜 하려고 하냐'도 묻기도 한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 가장 큰 이유는 재미있기 때문이다. 나는 대회에 참가하는 것 자체가 신나고 즐겁다. 물론 목표를 달성하고 싶은 욕심, 하고 나서의 성취감, 대회를 위한 꾸준한 운동으로 인한 건강관리와 체력증진도 그 이유에 속하겠지만, 일단 어떤 것이든 '재미'가 있어야 꾸준히 할 수 있고 취미가 될 수 있다. 솔직히 평소에 훈련하는 건 대회날에 비하면 늘 즐겁지는 않다. 나가기 정말 귀찮을 때도 있고, 하면서 힘들 때도 많다. 그래도 계속 러닝 하러 나가는 것은, 어쩌면 일 년에 몇 번 없는 대회날의 큰 행복을 위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런 대회 중에서도 나에게는 꽤 크고 중요한 대회라 할 수 있는 첫 풀코스 대회를 위해, 남편과 함께 전날 저녁부터 대회장 근처에 도착했다. 자차 운전으로 2시간 반가량 걸리는 거리라, 새벽에 운전하고 가서 풀코스를 뛰기에는 너무 힘들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지난번처럼 대회장 근처에서 숙박을 하려고 했으나, 우리가 너무 늦게 알아본 탓인지 예약 가능한 숙소가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있다고 하더라도 숙박료 바가지가 엄청나긴 했다ㅜ.ㅜ ) 그래서 우리는 차에서 '노숙'을 하기로 했다. 탄수화물 위주로 저녁을 든든히 먹고 와서는 근처 주차장에 차를 대고 침낭과 담요에 의지하여 잠을 청했다. 밤이 되자 생각보다 더 추운 온도에 두꺼운 이불을 더 챙겨 오지 않은 것을 후회했지만, 걱정했던 것보다는 충분히 푹 자고 일어나긴 했다. 새벽에 잠이 깬 김에 편의점에 간단히 아침을 먹고 일찍 대회장 주차장으로 올라가 보니, 아직 아무도 없었다. 참가자 중에서는 우리가 1등으로 온 듯했다. ㅎㅎ


우리가 천천히 준비를 하고 몸을 푸는 사이에 다른 참가자들도 속속 들어오기 시작했다.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나는 더 설레고 기분이 좋아졌다. 그 사이 화장실도 2번이나 갔다 오는 바람에 몸이 더 가벼워져서 그런 것일까? ㅎㅎ 얇은 싱글렛만 입고 시작하기에는 제법 쌀쌀한 날씨였지만, 난 거추장스러운 겉옷을 벗어던지고 대회장으로 달려갔다. 하늘은 정말 화창하고 좋은 날이었다. 차에서 잔 것에 비해 컨디션도 나쁘지 않았다. 그래, 이제 나만 잘하면 된다.





드디어 출발 신호가 울리고, 나의 긴 도전이 시작되었다. 하프 주자들과 함께 출발하다 보니 초반에는 주로가 많이 복잡했다. 하지만 어차피 처음 5km 정도는 천천히 예열하며 달릴 예정이어서, 큰 문제는 없었다. 길은 처음엔 비슷비슷한 논밭이 많이 보이는 조용한 시골 분위기가 이어져 좀 지루했으나, 더 가다 보니 유적지와 강, 다리, 큰 댐 등도 지나게 되어 멋진 경치를 즐길 수 있었다. 무엇보다 5, 10km, 하프를 달릴 때는 속도에 신경 쓰느라 계속해서 숨이 차고 다리가 무거웠던 것과 달리, 풀코스는 여유가 있어서 좋았다. 반환지점까지는 정말 남편과 이야기를 나누며 단풍 구경도 하면서 함께 달리니 그냥 데이트하는 기분이었다.


풀코스 반환지점을 지나 돌아갈 때쯤 신기한 경험을 했다. 이미 총거리의 반이나 달렸고, 내가 계획했던 것보다 빠르게 달리고 있는데도 몸이 하나도 힘들지 않았던 것이다. 오히려 기분은 너무도 신나고 다리는 마치 날아가는 것 마냥 가벼웠다. 그래서 반환지점에서 화장실을 간 남편을 기다리지 않고 쌩쌩 달려가버렸다. 남편이 뒤늦게 전력질주로 나를 잡으러 올 때까지 말이다. ㅎㅎ 한동안 그렇게 날아가다가 피로가 쌓이자 속도는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고, 그즈음에 진짜 복병을 만났다. 올 때 넘었던 것보다 더 경사가 심한 언덕이었다.


작년에 참가한 러닝유투버의 영상을 보고 알고는 있었지만, 실제로 체험해 보니 그야말로 욕이 나왔다. 평소에 등산로를 뛰어 올라가는 훈련도 했었지만, 이미 피로가 많이 쌓인 구간에서 경사도 심하다 보니 허벅지가 타들어가고 숨이 턱에 차올랐다. 나뿐만 아니라 함께 올라가는 참가자들 속에서 가뿐 숨소리와 힘든 곡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마지막에는 나도 모르게 동물 같은 소리로 울부짖으면서 간신히 그 구간을 걷지 않고 빠져나올 수 있었다. 먼저 앞서 갔던 남편에게 다가가 이제 큰 산은 넘었다고 기쁘게 말하니, 그는 의외의 말을 건넸다.


"자기야, 먼저가. 난 천천히 갈게."


늘 장거리에서 문제였던 그의 종아리에 또 쥐가 난 것이었다. 그래서 거기서부터는 나 혼자 헤쳐나가야 했다. 한 동안은 씩씩하게 잘 달려갔지만, 30km를 넘어가니 다리도 점점 무거워지고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신나는 노랫소리도 도움이 되지 못했다. 급수대에 있는 달달한 간식들도 먹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5km 정도 남았을 무렵에는 다리가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앞서 가던 사람들이 걸어가는 모습을 보니 나도 걷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하지만 계속 마음을 다잡았다. 앞에 신나게 잘 달려온 기록이 너무 아까웠기 때문이다. 여기서 더 느려지만 내가 목표로 했던 기록을 달성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래서 악으로 깡으로 달려갔지만, 가면 갈수록 거리가 왜 그렇게 줄어들지 않는 건지... '끝'은 언제 오는지, 있기는 있는지 묻고 싶었다. 누구에게 물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ㅎㅎ



2km 남았을 무렵, 사람들의 응원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얼마 안 남았다고, 힘내라는 외침을 들으니 빠져나가려고 하던 정신이 다시 돌아오는 것 같았다. '그래, 조금만 참으면 된다, 다 왔다, 걷지만 말자!' 이 생각만 하며 달리고 또 달렸다. 그리고 드디어 출발했던 경기장이 보였다. 이제 진짜 다 왔는데, 갑자기 다리에 힘이 풀렸다. 간신히 경기장에 들어서니 드디어 피니쉬 라인이 보였다. 모여 있는 많은 사람들의 박수를 받으며 트랙을 달려, 그토록 보고 싶었던 마지막 라인을 힘차게 밟았다.


"끝났다!"


언제 끝날지 끝이 보이지 않던 그 길이 드디어 진짜 끝이 났다. 서브 4, 목표로 했던 4시간에 들어오는 것에 성공한 순간이었다. 눈물은 나지 않았다. 그저 너무너무 행복했다. 그리고 다시 한번 깨달았다. 나는 정말 독. 한. 여자구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