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셋째는 4년 전쯤 남편이 데리고 온 고양이다. 나는 동물을 그리 좋아하지도 않고, 냄새며 털이며 배변치우기 등등 각종 귀찮은 일들이 늘어나는 것이 너무 싫어 반려동물 키우는 건 절.대.반.대. 입장이었다. 반대로 아이들과 남편은 강아지든 고양이든 반려동물을 키우고 싶어 했지만 내 눈치를 보며 말을 꺼내지도 못하고 있었다. 나는 귀찮은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한 생명을 더 키운다는 게 자신이 없었다. 우리 품에 들어오면 죽을 때까지 함께 해야 할 생명인데, 말도 안 통하는 동물을 내가 잘 보살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처럼 사랑하는 마음이 생길까도 의문이었다. 보통 반려동물을 키우는 주인들이 자기들을 00이 엄마니 아빠니 하면서 동물을 자식처럼 생각하듯이 말이다.
그런데 어느 설날연휴가 시작되는 전날, 남편이 회사에서 돌보던 엄마 잃은 길고양이가 중성화수술 후 연휴 동안 돌봐줄 사람이 없다며 데리고 왔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우리 집에서 잠시 요양을 하게 되었고, 그 며칠 동안 우리 아이들의 마음을 홀딱 빼앗아 갔다. 남편은 이미 회사에서 정이 많이 들어 있었고 고양이도 남편 무릎에 올라갈 정도로 친해졌던 모양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나도 그 며칠 동안 마음이 약해진 건지 그 고양이에게 사람을 홀리는 어떤 매력이 있었던 건지, 아이들이 적극적으로 보살피겠다는 약속을 받고 우리 집에서 키우는 것을 허락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구석에 숨어만 있던 고양이가 서서히 우리 곁에 앉아 있기 시작했고, 어느 정도 친해지고 나서는 냥냥거리는 말도 많아지고 나와 남편 무릎 위에 앉으며 치대는 것을 좋아했다. 그리고 퇴근하면 강아지처럼 문 앞에 앉아 기다리고 있는 것이 너무 신기했다. 남편은 원래 정이 들어 있기도 했었고 군기반장이라서 그런지 말을 잘 들었으며, 내가 주로 밥을 줘서 그런지 나에게도 대들지는 않았다. 그런데 아이들은 고양이의 눈에도 자기와 동급이나 더 아래라고생각되는지 곁에 잘 가지도 않고, 예쁘다고 만져도 기분이 안 좋을 땐 발톱으로 할퀴기도 했다. 그러면 잠시 무서워하면서도 고양이의 사랑을 받고 싶어서 화장실도 열심히 치우고 좋아하는 간식도 주고 틈틈이 쓰다듬어주며 예쁘다 사랑한다 마음을 전하려고 애썼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자 첫째 아들의 무릎에도 슬며시 올라가게 되었다. 그러자 오빠는 의기양양해져서 부러워하는 여동생이 고양이를 만지거나 안으려고 하면 '너는 싫어한다'며 놀리기도 했다. 그러자 더 속상해진 딸내미의 소원은 고양이가 스스로 자기 무릎에 앉아 잠을 자는 것이 되었다. 같이 있을 때 내 무릎에 앉은 고양이를 딸 무릎 위에 살짝 올려보았으나 냉큼 내려가 버리곤 했다. 나는 좀 의야했다. 저렇게 잘해주고 예뻐하는데 왜 딸에게는 마음을 아직 안 여는 것일까? 말이 안 통하니 물어볼 수도 없었다. ㅎㅎ
그러던 어느 날, 방학이라 집에 있는데 오빠도 나가고 딸이 혼자 고양이와 있는 날이 있었다. 그전에는 그렇게 혼자 있어도 고양이는 자기 곁으로 와서 치대지 않는다고 섭섭해했었다. 그런데 그날 출근해 일을 하고 있는 나에게 폰으로 다급한 메시지가 왔다.
" 엄마! 나순이가 내 무릎에 앉아 있어요!!"
그 메시지를 보자 내 얼굴에도 미소가 피어올랐다. 드디어 마음을 연 것이다. 퇴근해서 집에 가니 기쁜 얼굴로 재잘재잘 당시 상황을 설명하며 고양이가 그렇게 자는 게 너무 귀여웠다고 말하는 딸에게, 엄마는 네가 더 귀엽다고 말하며 뽀뽀를 쪽쪽 퍼부었다. 그 이후로도 가끔 딸이 혼자 있을 때 고양이가 무릎에 올라갔고, 그러면 그것을 사진 찍어 나에게 보내주곤 했다. 아직도 고양이를 품에 안는 건 싫어하지만 내가 서서 안고 있을 때 자기한테 한 번만 안기게 해 주면 안 되냐고 부탁한다. 그러면 잠시 3초도 안되어 싫어서 응응 소리를 내며 발버둥 치지만, 그 3초의 느낌만으로 아이는 너무 행복해한다. 우리 집은 반려동물을 키우면서 사랑을 주는 방법은 물론, 내가 원하는 사랑을 얻기도 여간 쉬운 일이 아니며 끈기와 노력과 진심이 필요하다는 것을 배우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