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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냥냥별 May 30. 2024

자꾸 묻지 마세요

연애는 조용히 하고 싶습니다.



자꾸 묻지 마세요     




있으면 어떻고

없으면 어떤데     


내 사랑은 내가 알아서 하는데

수시로 낚싯줄 던지는 엄마

질투인가 걱정인가    

 

너무 애쓰지 마세요

나는 안 걸리니까  

   

자꾸 묻지 마세요

자꾸 거짓말해야 되니까    





  내 연애는 좋을 때도 있고 힘들 때도 있고 뭔가 결정을 해야 해서 골치 아프기도 하지만, 남의 연애사 듣는 건 참 재밌다. 어릴 땐, 학교에서 누구랑 누구랑 사귄데~ 쟤가 옆반의 누구한테 고백했데~라는 이야기들이 오고 가고, 직장에서도 누가 누구에게 관심이 있는지 하트가 날아가는 모습을 동료들과 추측하며 웃기도 한다. 우리 주변의 사람뿐만이 아니다. 사람들은 멋진 연예인들의 러브 스토리, 비밀연애 등에도 관심이 많아 열애설이 한 번 터지면 그다음 날 누가 아깝니 안 아깝니 설전이 벌어지기도 한다.


  아이를 키우다 보니, 난 아이들의 연애사도 참 재미있더라. 그래서 엄마는 건전한 이성교제는 찬성이며, 언제든지 의논하라며 자리를 깔아놓고, 한 번씩 넌지시 연애 근황을 물어보곤 한다. 요즘 아이들은 연애를 참 빨리 하는 것 같다. 우리가 '요즘 아이들'일 시절에는 또 우리 부모님 세대보다 더 빨랐을 것이다. 내 경우를 생각해 보면, 난 그리 인기 있는 아이가 아니었는데도 불구하고 처음 남자친구를 사귄 것이 중학교 3학년때였다. 그전까지는 지독한 '짝사랑'이었다. 너무 수줍고, 자신감도 없어서 고백도 제대로 못하는 아이였다.


  우리 아이들에게서 고백 이야기를 처음 들은 건 어린이집 다닐 때였다. 아장아장 걷던 아기들이 기저귀도 떼고 말도 잘하게 되며 어떤 사람이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인지도 알아가다 보니, 친구를 좋아하는 감정도 표현하나 보다 했다. 그때는 단순히 '나, 너 좋아해'라고 알리는 정도이고 사귀자고 하는 수준은 아니었다. 그래도 우리 아이들이 고백을 받아오니 내심 기분은 좋았다.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다는 것은 교우관계도 좋고 선생님께 늘 혼나는 아니도 아니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가장 순수한 시절의 고백이기도 했지만, 표현이 매우 적극적인 아이도 있었다. 뽀뽀를 쪽 하고 갔다는 말에 귀여워 웃음이 나왔다.


  초등학생이 되고 나서는 친구 누구랑 누가 사귄다는 소식도 종종 들었다. 그래서 '너는 좋아하는 친구가 없니?'라고 물으면 둘 다 늘 없다고 대답했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은 이성에 눈을 늦게 뜨나 보다 하고 생각했다. 특히 아들은 친구들이 자기를 잘생겼다고 하더라는 말은 자주 자랑처럼 말하면서, 사귀는 아이도 좋아하는 여자친구도 없다고 했다. 그런데 한참 뒤에 진실을 알게 되었다. 사실은 이미 1~2명을 사귀었다 헤어졌는데 나에게 시치미를 떼고 있었던 것이다. 3번째 여자친구를 사귈 무렵 다 털어놓었는데 숨긴 이유를 들어보니, 엄마가 알면 이것저것 자꾸 물어보는 게 귀찮기도 하고 조금 부끄럽기도 해서였던 것 같다. 여자 친구를 알고 난 뒤 학교 공개수업에 갔을 때, 어떤 아이인지 보고 싶었는데 부끄러운지 소개해주지는 않더라. 그 이후로도 아들은 조. 용. 히. 연애를 종종 이어가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아직은 진심으로 가슴앓이 하는 수준은 아닌 것 같다. 즉, 완전히 이성에 눈을 뜬 건 아니고 그저 좀 더 친한 친구 정도인 듯하다. 본인이 먼저 좋아서 매달린 적은 한 번도 없기 때문이다.


  딸내미도 남자친구가 생겼다는 소식을 수줍게 알려주기 시작했다. 그런데 항상 오빠랑 아빠한테는 비밀이라고 했다. 두 남자가 알면 놀릴까 봐 그런가 보다. 요즘 아이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휴대폰이 있으니까 서로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얼마나 꽁냥꽁냥거릴까? ㅎㅎ 아이들이 연애를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자꾸 묻고 싶어 진다. 만나서 뭐 하고 노는지, 편지 같은 건 주는지, 선물은 뭘 사주는 지 등등. 그런데 귀찮은 엄마가 아닌 쿨한 엄마가 되고 싶어서 먼저 말해줄 때까지 참고 또 참는다. 그래야 앞으로도 숨기지 않고 엄마에게 말해줄 테니까. ㅎㅎ


  이제는 기억도 잘 안 나는 나의 순수했던 시절 사랑을 한 번씩 떠올려본다. 아직도 버리지 않고 모아 놓은 연애편지들을 언젠가 한 번 열어서 다시 읽어봤는데 손발이 오그라들더라. 하지만 그때는 진심이었고 진지한 사랑이었다. 그리고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조용히 짝사랑만 하며 모태솔로가 될 것 같았던 소심한 아이가 이젠 애 둘 낳고 아직도 남편과 연애하듯 잘 살고 있다. 우리 아이들도 다양한 사랑을 하며 좀 더 성숙해지고 진짜 나에게 잘 맞는 사람을 알아볼 수 있는 눈을 키웠으면 좋겠다. 단, 어른이 되기까지는 건. 전. 한. 이성교제를 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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