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쑤 Feb 17. 2016

산티아고 순례길, 길의 시작

Camino de Santiago #1 순례길 걷기를 다짐한 이유

                                                           

고등학교 때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를 읽었다.

아니, 사실 한참 더 전에 읽었지만 나에게 이 책이 비로소 와 닿은 게 고등학교 때라고 해야 맞을 거다. 그래서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나 <11분> 같은 그의 유명작들을 사서 보기 시작했다. 코엘료의 책이 참 좋아졌다. 아끼는 친구 생일 날 선물로 주기도 하고 그랬으니까.

그러다가 파울로 코엘료가 Camino de Santiago, 즉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나서 이 모든 책을 썼다는 걸 알게 되었다.

책상에 앉아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던 고등학교 시절이다. 순례길에 대한 호기심이 마구 생기기 시작했다.

뭐가 코엘료에게 영감을 준 걸까, 코엘료는 800km라는 긴 길을 걸으며 무슨 생각을 한 걸까, 나도 뭔가를 그 길에서 찾을 수 있을까 등등. 그게 약 6년 전이니, 2010년 쯤 되겠다. 그때 순례길에 대한 자료를 찾으려했으나 지금처럼 순례길이 한국인들에게 인기가 많은 시절이 아니라 많은게 나오지는 않았다. 그래서 블로그에 순례길을 완주했다고 올리셨던 한 분께 쪽지까지 보내서 이것저것 물어봤던 기억이 난다.

중요한 건 나도 걷고 싶어졌다는 사실이었다.

운동이라고는 고등학교에 들어오면서 담을 쌓고 지냈지만, 그냥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자습실에서 공부를 하며 혼자 종종 스페인 어딘가의 잔디에 누워 일광욕도 하고, 낮잠도 자고, 그렇게 천천히 길을 걷는 상상을 했다. 매일매일이 치열했던 내 고등학교 시절에는 순례길을 걷는다는 꿈이 그렇게 간절할 수 없었다.

하지만 수능이 끝나고, 대학에 들어가고, 점점 이 간절함을 잊고 살게 됐다.
수능이 끝나고는 힘들게 공부했으니까 좀 놀자는 생각에 매일 놀러만 다녔고, 대학에 와서도 그 보상심리가 쭉 이어졌다.






그러다 정신이 든 게 대학교 2학년이 되어서였다.


고등학교 때는 '내가 목표가 생기면 이렇게까지 노력할 줄 아는 사람이다.'라고 자부했었다. 열심히 노력한 결과 원하는 대학교에 입학했다.합격통지서를 받았을 때의 그 기분은 절대 잊을 수 없을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문득 되돌아본 나의 대학 생활은 한 때 내가 생각했던 내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던 것 같다.

'내가 노력이라는 걸 할 줄 알았던가? 그때 그렇게 간절했던 순례길은'

계속되는 술자리, 새로운 사람들과의 끝없는 만남, 이 모든게 신기했던 20살 무렵의 나는 옛날의 나를 잊고 있었다.


상황이 바뀌었다고 그 시절의 내 감정들, 간절함을 잊고 살기가 싫었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졸업을 하고 직장을 가지게 되면 정말 순례길을 걷기가 힘들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정말 산티아고 순례길을 가기로 결심. 정보들을 천천히 모으기 시작했다.





여행의 큰 틀을 세웠다.

1. 스페인은 여름방학, 겨울방학 기간에는 걷기에 너무 덥고 춥다. 사람이 길에 너무 많기도 하니, 휴학을 하고 순례길을 갈 것.

2 .가는 김에 또 다른 버킷리스트였던 사막도 갈 것.

3 .휴학하는 김에 최대한 오래 여행을 할 것.

4 .순례길을 걷는 30일 간은 철저하게 혼자가 되어볼 것.

5. 내 욕심에 휴학하고 여행까지 하는데, 여행 경비는 엄마에게 손 벌리지 말 것.


그렇게 21살이 되고, 1년 간 여행 경비로   돈을 모았다.

과외를 하며 매달 50만원씩 학기 중에도 적금을 넣었고, 방학 때는 더 열심히 벌었다.


비행기를 타고 나서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순례길을 걷고싶다'로 시작한, 93일간의 여행이 시작되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버지였던 피에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