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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쑤 Feb 20. 2016

날 일으켜주는 것도 사람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만난 사람들 #2

                                                                                                                                              

컨디션 바닥


앞만 보고 걷다 보면 종종 힘들 때가 있다. 아무리 걸어도 오늘 내가 넘어야 할 산은 저 멀리에 있을 때, 감기 기운에 목이 타 들어갈 것 같은데 물이 없을 때, 해가 중천에서 점점 나를 죄어올 때. 4일 째였던 이 날이 그런 날이었다. 전 날 팜플로나까지 굉장히 적게 걸은 편이어서 오늘 많이 걸을 걸 각오했다지만, 많은 게 날 힘들게 했다. 어제 옷은 산만큼 버렸고, 불어난 짐이라고는 왠지 사야 할 것 같아서 아시아 마켓에서 사버린 짜파게티 하나였는데 며칠 만에 배낭이 이렇게 무겁게 느껴질 수가 없다. 어제는 그렇게나 발걸음이 가벼웠는데 하루 만에 이렇게 힘들어지다니. 


걷기 시작했을 즈음



종종 개와 함께 순례길을 걷는 사람들도 있다


걷다가 힘들어, 잠깐 고개를 내려서 바닥을 보고 걷기 시작했다. 평소에도 가끔 그저 묵묵히 내 바로 앞에 놓인 한 걸음 한 걸음을 뗄 때가 있었다. 천천히 한 걸음 씩, 이 걸음이 모이고 모여 오늘 걸을 27킬로가 될 것이다.


나를 더 힘들게 했던 것 한 가지. 걷는 도중에 이탈리아에서 온 아저씨가 자꾸 따라오고 말을 걸어서. 평소에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하지만, 이 아저씨는 느낌이 뭔가 안 좋았다. 혼자 가고 싶은 티를 팍팍 내는데도 중간에 마을에서 쉬자, 커피 먹자, 같이 다니자 그래서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밤에 부엌에서 요리를 하는데 은근슬쩍 허리를 감고 그런다. 슬쩍 빼고 하지 말라고 한소리 한 뒤 도망 나와 내일부터 피해 다녀야겠다 다짐했다. 순례길이라고 해서 꼭 좋은 사람들만 걷는 건 아니다.




그래도 만나게 되는 사람, 사람


'용서의 언덕(Alto del Perdon)'이다. 피레네 산맥의 봉우리가 보인다. 내가 걸어온 길도 한 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동시에, 용서를 빌면  용서받을 수 있다는 길이다. 혹여나 돌멩이를 밟고 삐끗할까 바닥만 보며 바삐 올라오느라 앞을 못 봤는데, 언덕에 올라 비로소 주위를 둘러봤다. 한참을 머물다 걸음을 멈추니 조금 추워져서 다시 내려오기 시작했다.

용서의 언덕에 있는 순례자 모형
용서의 언덕

언덕을 내려오며 필리핀에서 온 삼촌뻘의 친구를 만났다. 이름을 좀 적어둘걸. 정말 쉬운 이름이었는데 몇 달이 지나니 슬프게도 잊어버렸다. 내리막길이라 무릎이 쑤셨지만 이 친구와 차근차근 조금씩 내려갔던 기억이 난다. 난 22살이었는데, 심지어 외국 나이로는 아직도 21살인데 40대였던 친구와 신체 나이가 비슷했던 것 같다...


무언가를 얻으러도 오지만, 무언가를 버리기 위해 오기도 해


이 친구가 했던 말이다.

길을 걸으며 초반, 특히 이  4일째 되던 날에는 걷는 동안 무언가 생산적인 생각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순례길을 다 마칠 때까지 무언가를 얻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친구는 버리기 위해 순례길에 왔다고 한다. 자식들이 다 컸다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는데 마음으로 버리기가 힘들다며. 자꾸 자식들에게 집착하고, 그들이 젖먹이  때처럼 여전히 자신의 손길이 필요한 것처럼 취급해버린다고. 그래서 그런 마음들을 버리러 왔다고.


무언가를 버리기 위해 이 길을 올 수도 있구나.

사실 길을 걷다 보면 우리는 많은 걸 버린다. 배낭에 들어있는 물건들이 그렇다. 여벌의 옷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는 걸 깨닫는 순간 필요 없는 옷을 쓰레기통에 던진 후 단벌신사가 돼버리고, 먹을 것도 꼭 필요한 것만 싸들고 다닌다. 나도 그랬다. 팜플로나에서 여행 다니며 입었던  여름옷을 다 버렸고, 이 날 가방에 넣어 온 짜파게티도 숙소에 가자마자 먹어 치웠다. 길이 길어질수록 배낭은 가벼워진다. 나중에 산티아고에 도착해서 느낀 거지만, 나도 길을 걷는 동안 배낭에 든  물건뿐만이 아니라 많은 걸 버렸다. 이 친구도 전부는 아니더라도 버리고 싶었던 그 마음들을 조금은 털어버렸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이름을 잊어서 미안해요!



그리운 사람들이 이 날은 특히 많았다.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그런 걸 지도 모른다. 감기 기운에 목이 아프고, 잔뜩 조인 허리의  배낭끈 때문인지 골반이 너무 아팠다. 다리를 절뚝댈 정도였으니까. 피에르가 부엌에서 돌아다니는 날 보고 멀쩡한 거 맞냐고 걱정을 해줬다. 다른 친구들도 잇달아 배낭에서 온갖 약들을 꺼내기 시작했지만 내가 가져온 파스를 일단 붙여보겠다며 극구 사양했다. 아프고 힘들었지만 사람들 덕에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숙소에서 낮잠을 좀 자고 저녁 장을 보러 나섰다. 길 가는 길에 앙투안이라는 프랑스에서 온 순례자를 하나 만났다. 생장 훨씬 전부터 걷기 시작한 그는 벌써 걷는 것만 한 달 째라고 했다. 함께 마트를 가며 서로 부족한 영어로 대화를 하며 얼마나 즐거웠는지 모른다. 하루만 지나면 나에게 걷는 기계가 될 거라며 뜬금없이 로봇 흉내를 내지를 않나. 그에 맞춰서 길에서 함께 터미네이터, 매트릭스 흉내를 냈는데 생각해보니 남들이 보고 얼마나 웃겼을까 싶다. 앙투안은 나에게 절뚝대는 로봇이라며 웃어댔다.

담배를 말아피던 앙투안


프랑스에서는 뭘 했었냐는 질문에, 사뭇 진지한 눈빛으로 자기는 색을 다루는 아티스트라고 얘기를 하던 앙투안. 영어로 유창하게 설명하지 못했지만 단어 하나하나를 조합해서 자신의 일을 설명하는데 그가 얼마나 이 일을 사랑하고 열정을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그가 나에게 뭘 말하고 싶은지가 그대로 느껴졌다. 그때 언어라는 벽을 조금 허문 것 같다. 이제껏 의사소통이 불가능하면 많은 감정을 나눌 수 없다고 생각하고는 했었는데, 앙투안이 그런 내 편견을 없애주었다. 소통에 있어서 생각보다 언어가 차지하는 부분이 작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하게 됐다. 


몸 상태에, 힘든 길 때문에 잔뜩 짜증이 났던 4일 차였다. 설상가상으로 이탈리아 아저씨가 찝쩍거리고. 하지만 그래도 이런 짜증을 풀어주는 것도 역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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