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쑤 Mar 26. 2016

레온의 밤하늘

2015년 10월 8일의 일기, 스페인 까미노 데 산티아고에서


까미노를 걸으며 가장 좋은 순간이 언제냐고 묻는다면 딱히 하나만 꼽을 수 없다. 깜깜한 아침에 나섰을 때 볼 수 있는 하늘을 가득히 메운 별들도 좋고, 조금 시간이 지나면 고개를 내미는 태양도 아름답다. 그리고 오늘처럼 깨끗하게 씻고 슬리퍼를 끌며 돌아다니다 저녁쯤 볼 수 있는 하늘도 좋다. 이렇게 남색으로 물드는 하늘을 한국에서 본 적 있었던가.

이런 저녁의 하늘은 해가 진 이후에도 해의 여운을 한참 동안 간직하고 있다. 완벽한 어둠도, 완벽한 밝음도 아닌 남색의 하늘. 그리고 태양의 행로를 따라 물감 번지듯 퍼지는 밝은 하늘색까지. 거리를 밝히는 주황빛 가로등까지 켜지면, 어떤 싸구려 사진기로 찍어도 작품이 나올 거다. 이런 남색 빛 하늘이 좋다. 평소에도, 여행을 다니면서는 한 번도 의식하지 못했던 하늘. 아니, 다른 관광할 것들에 가려 제대로 관찰할 의지조차 없었던 유럽의 하늘이 오늘따라 내게 더 가까이 다가온다.






매거진의 이전글 물집이 가득했던 두 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