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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쑤 Oct 20. 2016

런던에서 집 구하기

영국 워킹홀리데이 #2 내 방을 찾아

영국에 도착, 처음 5일간 한인 민박에서 묵으며 오랫동안 지낼 장기 숙소를 찾기 시작했다. 집값이 비싼 런던에서 Studio(한국의 원룸 형태, 화장실과 부엌이 모두 딸려있는 방) 형태의 방은 나에게 사치였고, Flat share(방은 따로 쓰고 화장실, 부엌, 거실 등을 공유하는 형태) 형태의 방을 찾기 시작했다. 가격이 괜찮다 싶으면 일거리가 많은 런던 시내 중심부와 너무 멀거나 집 상태가 별로였고, 집이 좋다 싶으면 가격이 괜찮지 않았다. 런던에 대한 정보도 많이 없다 보니 어디가 안전한 곳이고, 위험한 곳인지에 대한 인식도 별로 없이 다녔다.





집을 보러 다니는 첫날에는 런던의 동과 서를 가로질렀고, 북쪽도 갔다. 개 중에 북동쪽에 위치한 아주 싼 가격에 나온 집은 집을 보러 가니 상태가 엄청났다. 그게 바로 내가 첫 번째로 보러 간 집이었다. 동네에 들어서자마자 침을 찍 뱉는 껄렁해 보이는 남자들이 날 뚫어져라 쳐다봤고, 비도 주룩주룩 내리기 시작해 동네가 한층 더 음산해 보였다. 1시까지 만나자던 부동산 업자는 10분이나 늦게 왔으며, 집으로 들어서자 쾌쾌한 담배 냄새가 났다. 부엌 식탁 위에는 재떨이가 있었음에도 담뱃재가 굴러다녔고, 욕실을 보러 갔더니 욕조에는 정체불명의 검은 물과 한강에서나 볼 법한 고체들이 둥둥 떠다녔다. 설상가상으로 남자 혼자 산다던 집이었는데 신발장에 웬 구두가 있어서 물어보니 부동산 업자는 황급히 그 남자의 여자 친구 신발인 것 같다고 둘러댔다. 이어 업자가 방 주인이 휴가에서 돌아온 지 얼마 안 되어서 방이 더러울 테니 그걸 감안하고 보라고 신신당부를 한 뒤 슬쩍 열어 보여준 방은, 남자 속옷, 담배, 슬리퍼와 온갖 음식물 찌꺼기들이 굴러 다니는 아수라장. 설상가상으로 방 크기도 내 몸 하나 뉘이면 끝나는 정도였다. 아무리 예산이 없다지만 여기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황급히 발길을 돌려 나왔고, ‘집이 어떠냐’는 부동산 업자의 말에 ‘다른 좋은 입주자를 찾길 바란다’고 마무리했다.



이 집과의 인연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이 부동산 업자와의 인연이라고 해야 할까. 이 부동산 업자는 저렇게 마무리 문자를 보낸 나에게 끊임없이 문자를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집 얘기는 안 할 테니, 우리 친구가 되자.’, ‘새로 영국에 왔는데 너 영어 잘한다, 감명 깊다.’로 시작했다. 그래서 고맙다고 답 했더니 ‘한국인 친구가 없는데, 너랑 친구하고 싶다.’고 말을 꺼냈다. 조금 의아해하던 차에 ‘오늘 런던 중심부에 가서 저녁 같이 하지 않겠냐, 물론 돈은 내가 낼 테니 걱정 말고.’라고 연이어 문자가 왔다. 그 뒤로는 바쁘다며 거절하고, 단 한 통도 답장하지 않았다. 새로운 사람에 대한 경계심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한가로이 저녁을 먹을 기분이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나의 답장 여부와는 상관없이 이 사람의 온갖 문자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아침, 점심, 저녁은 기본 그리고 자기가 심심한 듯 틈날 때마다. 심지어 문자는 갈수록 다정해지고, 연인 같아졌으며, ‘왜 답장하지 않느냐’고 까지 독촉해 나에게 무섭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4~5일쯤 계속되었을까, 처음에 만나자는 연락을 거절한 뒤 처음으로 답장을 했다. 이런 문자가 불편하니까 그만 보내주었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속 편하게 차단해버리면 그만 이었겠지만 까닭 없이 나와 사귀는 사이라도 되는 것처럼 행동하던 그의 문자들이 거북했고, 내가 거북하다면 상대도 그 이유를 알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그랬더니 바로 그에게서 답장이 왔다. ‘니가 불편하다면 그만 할게. 난 이상한 의도도 없었는데 너 혼자 오버하는구나. 나 이제 한국인이 어떤 부류인지 알겠어. 고마워 한국인이 어떤 사람들인지 알려줘서.’


순간 머리가 띵 해졌다. 나의 행동이 한국인에 대한 나쁜 인상을 심어줬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금 불편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문자들이 정말 아무런 의도가 없는 거였나. 아무리 여기가 다른 문화권이라고 해도 딱 한 번 본 사람에게, 거절당하고 응답이 없는데도 이렇게 자주 연락하는 건 여기서도 실례가 아닌가? 그의 행동은 나에게 그의 나라에 대한 나쁜 인상을 심어 주지는 않았나? 한창 집 구하는 것 때문에 지쳐있던 차에 받은 그의 문자에 머리가 더 지끈지끈 아파왔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뷰잉을 다닌 지 2~3일째가 되니까 매물이 올라온 사이트들에서 동네 이름만 봐도 어느 정도 어떤 곳에 위치해 있는지 감이 오기 시작했다. 직접 검색을 하거나 돌아다니며 파악한 동네들의 분위기도 느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며칠 동안 수 없이 많은 매물들을 보고, 연락하고, 직접 보러 가고 하다 보니 몸과 마음이 동시에 지치기 시작했고, 저 동산 업자의 문자를 받은 날 결국 스페룸의 얼리버드권을 결제했다. 스페룸이라는 사이트(혹은 어플)는 일찍 올라온 매물은 며칠 동안 얼리버드권을 구매하지 않으면 게시자에게 연락을 취할 수 없도록 해놨다. 그래서 그동안 내가 봤던 집은 매물을 올리고 며칠이 지나도 집이 안 나가서 남은 집들이 었다. 그리고 운 좋게도, 이렇게 얼리버드를 결제하자마자 집을 구할 수 있었다.


튜브 역
집 앞
내가 살게 된 집



지금 살고 있는 집의 부동산 업자는 상냥해 보이는 영국 할머니였다. 눈에는 철쭉 색 같은 붉은 섀도를 바르셨고, 나에게 집을 모두 보여준 뒤 계약을 하러 같이 들어간 사무실도 온통 분홍빛일 만큼 붉은색 계열을 좋아하셨다. 나쁘지 않은 가격에, 나쁘지 않은 방에, 시내 중심지까지 지하철로 20분이면 되는 거리. 마침 지쳐있던 내게 이만큼 좋은 집은 없어 보였고, 상냥하게 집에 대해서 설명해주시고, 계약이 성사됨을 기뻐하시던 할머니 덕에 한층 더 ‘집을 잘 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한 동안은 행복감에 젖어 런던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하지만 그녀는 나의 이사 날에도, 다음 집세 내는 날에도, 나와의 약속이 있는 그 어떤 날에도 단 한 번도 제시간에 나타나지 않았다. 계약서를 적고 나서의 일이었다. 이사 가는 날에는 20분이나 늦어 놓고 ‘미안하다’는말 한 마디 없이 ‘더운 날 서둘러서 좋을 게 없다’는 말 만 속 되풀이했다. 나중에 은행 계좌 얘기는 더 길게 할 테지만, 은행 계좌 문제 때문에 그녀에게 문자로 집 계약서에 대해 얘기를 꺼내자마자 전화가 와서 고래고래 나에게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그러고 다음 달 집세를 지불하는 날에 나에게 일은 구했냐고 슬쩍 물어보더니,‘거기서 일 하면 우리 집에서 더 오래 살 수 있겠네? 가깝고 좋잖아?’라고 천역 덕스럽게 다. 그 덕에 나는 다른 집을 구해봐야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사실 또다시 이사를 가려는 건 엄연히 따지면 이 부동산 업자 때문은 아니다. 급하게 마음을 결정한 이 집은 화장실 세면대에 배수가 잘 안되고, 1층 변기에서는 물이 새며, 냉장고엔 냉동고 칸이 없다. 와이파이까지 잘 안 되는 턱에 집에서 노트북을 쓰다가 종종 작동이 멈추기도 한다. 하지만 계약을 했던 주된 이유는 출근이 편하고 저렴하다는 점. 일 하는 곳부터 집까지 24시간 운행하는 버스가 다니고, 금요일과 토요일에는 지하철도 밤새 운행한다. 집에서 나와서 일 하는 곳까지 딱 30분이면 도착한다. 무엇보다도 이런 좋은 접근성을 고려했을 때 집 값이 굉장히 저렴한 편이다. 하지만 이사를 고려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화장실도, 냉장고 때문도 아닌 부동산 업자가 집세를 현금으로만 받으려고 한다는 사실 때문이다. 보통 집세를 낼 때는 은행에서 계좌 이체를 하고 증거를 남겨두는 것이 좋다. 하지만 이 업자는 그런 식으로 집세를 절대 받지 않는다고 했다. 현금으로 지불하면 영수증을 주는 식으로만 계약을 한다며. 나중에 집을 들어오고 알게 된 사실인데, 이런 식으로 현금으로만 집세를 받아 탈세를 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집 구하기의 고충을 앎에도 불구하고 이사를 생각하던 차에, 이러한 탈세 의혹과 부동산 업자의 능글맞은 웃음이 정말 이사를 결심하게 만들었다. 이런 의심이 일어난 이상, 알면서까지 이들의 탈세를 도와주고 싶지는 않았다.


‘집 구하는 것’ 하나도 집 구하기에서만 끝나는 문제가 아니었다. 주인과 세입자. 부동산업자와 세입자, 그리고 나아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문제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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