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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쑤 Mar 05. 2016

곁에 없었어도 함께였던 친구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만난 사람들 #5


순례길을 걸으며 힘들 때가 없었다고 하면 그건 순전히 거짓말이다. 그럴 때마다 순례길을 걸으며 만난 사람들도 많은 힘을 주었지만, 그래도 가장 든든하게 기댈 수 있었던 건 비록 순간을 함께 하지 못하더라도 마음으로 날 응원해주던 지인들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이번에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기 전 얘기를 조금 해볼까 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순례길을 걷기 전 이탈리아를 함께 여행한, 대학 친구 서박이에 대한 이야기다. (서박이는 친구의 별명이다.)




생장으로 가기 전 날


나는 순례길을 걷기 전 날, 생장으로 가기 위해 한 달 간의 여행을 스위스에서 마무리하고 다시 파리로 향해야 했다. 이미 파리는 그 전에 여행을 했어서 잠깐 들르는 격이었다. 내가 파리를 다시 찾는다니까 기꺼이 나와준, 파리에 교환학생으로 가 있던 서박이. 서박이와 마지막으로 파리를 돌아보고 다녔다. 파리의 랜드마크 에펠탑 밑에서 수다를 떨기도 하고, 혼자서는 못 타봤던 바토 파리지앵을 탔다.



▲ 내가 오기 전 날까지는 춥고 흐렸다던 파리가 이렇게나 쾌청했다.




이때 서박이가 순례길을 안전하게 걷고 오라며 쪽지와 함께 초콜릿 과자+인공눈물을 선물로 줬다. 평소에도 굉장히 세심하고 남에 대한 배려심이 강한 친구기는 했지만, 내가 렌즈를 끼면서도 인공눈물 따위는 가지고 다니지 않는 것 까지 기억해줄 줄은 몰랐다. 가방 안에 서박이가 준 선물들을 챙겨 넣었다.




피레네 산맥에서 먹던 초코칩


순례길을 걷기 시작한 첫날, 피레네 산맥을 넘을 때였다. 비옷도 없는데 비가 오기 시작했다. 생장에서 비옷이 너무 비쌌던 탓에 다른 마을에서 싸구려 비옷을 사려했더니.. 첫날부터 비가 올 줄 몰랐다.


방수가 되는 바람막이라지만 계속해서 비를 맞은 탓에 온 몸이 젖기 시작했다. 추웠다. 끝없이 오르막은 계속됐다. 걸으면서 가장 많이 했던 생각은, ‘일정을 좀 줄일까’ 였던 것 같다. 빨리 안 오면 날 잊어버리겠다고 농담처럼 말하던 친구 생각도 났고, 내가 빨리 귀국하면 좋아하며 맛있는 닭볶음탕을 해줄 엄마 생각도 났다. 사람이란 이렇게 간사하다. 전 날 파리에서 서박이와 바토파리지앵 유람선을 탈 때만 해도 귀국하기 싫다고, 벌써 여행이 한 달이나 됐다고 징징거렸는데, 이렇게 몸이 조금 힘들다고 한국 생각을 하는 것이 또 우스웠다.
                                                                 

날 더욱 무기력하게 만들었던 건 배고픔이었다. 배가 고팠다. 준비성이 철저하지 못한 터라 먹을 걸 그다지 싸오지를 않았다. 바나나 몇 개면 충분할 줄 알았는데, 산을 오르느라 칼로리 소모를 많이 했는지 그 많던 바나나를 다 먹고도 계속 배가 고팠다.


파리에서 서박이가 준 비스킷이 떠올랐다. 한참 오르고 나서 나온 평지에서 더 이상 배고픔을 견딜 수가 없을 즈음, 비스킷을 꺼내 먹기 시작했다. 비를 맞으며 큰 돌덩이에 앉아 물과 비스킷을 먹는데 괜히 눈물이 핑 돌았다. 비참해서가 아니라 비스킷이 참 맛있어서. 내게 이런 친구가 없었다면? 산을 내려갈 때까지 힘들어서 첫날부터 잔뜩 자신감을 잃고 정말로 걷기를 그만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는 계속 주룩주룩 내렸다. 친구가 비스킷 상자에 붙여준 쪽지를 한참을 들여다보다가 핸드폰 케이스 안에 집어넣었다. 다 젖어서 쪼글쪼글해진 쪽지였지만, 난 그걸 여행이 끝날 때까지 빼지 않았다. 비스킷은 내가 먹어서 없어져버렸지만 힘들 때 그 쪽지를 보면 서박이가 응원해주는 것 같은 따뜻함을 느꼈던 것 같다.





함께 여행했던 이탈리아


생각해보면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함께 이탈리아를 여행하자고 결정하고 같이 다닐 때도 마찬가지였다. 힘들게 번 돈으로 여행을 온 탓도 있고, 여행을 얼마나 길게 할지 모르기 때문에 나는 최대한 돈을 아끼고 싶었다. 그리고 가장 내가 잘 절약할 수 있는 부분이 잠자리와 식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박이는 나와 같은 상황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내 사정에 전적으로 맞춰주었다.




여행 중반쯤, 베네치아의 작은 섬에서 본 섬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커다란 유람선 하나가 지나갔다. 우리는 그 안에 하나씩 선실을 차지하고 와인잔을 부딪히는 사람들이 있을 거라고 얘기하며, 좀 더 큰 어른이 되어 다시 이탈리아에 오자고 약속했다. 먼 훗날, 학생 신분이 아니라 어엿한 수입이 있는 어른이 되어 그때는 여기 말고 저 유람선 안에서 베네치아를 바라보자고.


하지만 그때는 분명 지금과는 또 다른 감상으로 유럽을 바라보겠지. 그래서 그런지 서박이와 함께 여행했던 시간들이 더 없이 소중하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내 22살, 대학생 신분으로 온 유럽을 누빈 이때 이토록 소중한 친구와 이렇게 아름다운 순간들을 함께했다는 것. 우리는 아마 평생 이 순간들을 기억하고, 추억하며 얘기를 나누겠지. 이 기억들을 함께 했다는 것만으로도 언제나 내게 소중한 사람일 것 같은 서박이.


함께 보던 유람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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