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살에 갈겨버린 사직서와 선택적 백수 이야기

30대 중반 백수 일기

by 정진

만 32.5세, 한국 나이로는 34세가 되었다.

일생을 두고 보면 아직도 한창인 나이지만,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그리 어리게만은 느껴지지 않는 어중간하고 애매한 시기.


이제는 어느정도 안정된 소속과 하나의 직무에 대한 경력이 있어야 할 것 같지만, 오히려 나는 이런저런 회사와 직무를 떠돌다가

얼마 전 사직서를 낸 뒤 유학을 알아보고 있는 격변의 시기이며, 이 변화무쌍함을 온몸으로 온전히 맞닥뜨리고 있다.



간단하게 나의 지난 서사를 말하자면

22살. 운이 좋게도 삼성그룹 공채에 합격하여 20대 내내 잘 다니다가, 어려운 환경 속에 처해진 아이들을 돕겠다는 사명감 하나로, 신의 직장이었던 내 첫 직장에 사직서를 제출한다.


그렇게 31살에 사회복지학 대학에 다시 입학하여 학위와 사회복지사 1급 자격증을 취득하고

아동복지 전문재단과 아동심리상담센터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하며 몸과 마음의 치유가 필요한 아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했다.


하지만 대한민국 사회에서 사회복지란 내가 생각한 사회복지와는 거리감이 꽤 있었고,

사랑이 컸던 만큼 작은 부조리함들에 더욱 크게 실망하며 한걸음 물러서게 된다.


사회복지 업을 존경하는,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유지하면서도 그 친구들을 더 크게 도우려면

현장에서 일하는 것보다 기부자나 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신의 직장을 과감히 그만두고 도전했던 아동복지는 3년도 채 되지 않아 빠르게 마무리하였다.


물론 후회는 하지 않는다. 어차피 한번 사는 인생, 후회 없이 살자는 주의라.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이루기 위해 늘 최선의 선택을 했던 거니까.



뭐 그러다. 여차저차 운이 좋게 괜찮은 스타트업에 지원했다가 합격을 했다.

그게 작년 가을.


하지만 웬걸. 입사 후 만난 팀장은 폭언과 욕설이 일상인 남성이었고,

유년기부터 청소년기까지 아버지의 폭력성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나는

어린 시절 복합적 트라우마가 발동하며 인생이 통째로 흔들릴 정도로 급속도로 위축되었다.


나는 이러한 환경으로부터 나를 지켜내야만 했다.

정확히 말하면, 어린 시절 당시의 마음으로 돌아간 나를 몸만 성인이 된 내가 지켜줘야 했다.



글이 길어졌다.

여하튼, 팀장은 잘리지 않았고 팀장이 남아있다면 내가 나가야 나를 보호할 수 있었기에 입사한 지 두 달도 채 되지 않은 상태로 또 사직서를 갈겼다. (이번엔 제출이 아니라 갈긴 것임)


고등학생 때부터 쉬지 않고 일을 해와서 지친건지.

어린 시절 트라우마가 아직도 치유되지 않았음을 깨달아서 충격을 받은건지 모르겠지만

나는 현재 바닥에 주저앉아있다.



34살이라는 나이가 조급하니 다시 얼른 일을 잡을 것인가

아니면, 인생 전체를 보고 아직 어린것임을 알고 견문을 더 넓혀볼 것인가

고민을 하다가,

올해는 좀 쉬면서 나의 인생을 되돌아보고 가다듬어 보기로 했다.


특별한 전문성이라곤 없는 34살 돌싱 여성의 백수 생활이, 한국 사회에서는 충분히 불안해질 수 있는 시기이지만

까짓거 한번 사는 인생, 살고 싶은 대로 후회 없이 살아보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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