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최선을 다한 결과가 정신과 치료지만 그래도 괜찮아

by 정진

우선 제목에 적은 '평생'이란, 정말 내 삶의 한평생이란 세월을 뜻한다.

한평생의 시기인 태아기부터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간단히 해보려 한다.



나는 원치 않게 생긴 늦둥이 막내딸로, 나의 생물학적 부는 임신한 아내가 짐덩이였고(실제로 임신한 아내가 미워 종종 그녀를 폭행했다고 한다.) 생물학적 모 또한 또 하나의 자식을 낳아 키워야 한다는 현실에 뱃속에 있는 날 한없이 원망했다.


아주 어릴 때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그녀는 자주 내게 말했다.

"그때 너를 정말 낙태하고 싶었는데, 지울 돈이 없었어. 그래도 지웠어야 했는데, 이렇게 뒤늦게 너를 낳아서 내가 평생을 고생해. 너가 딱 몇 살만 더 많았어도 내가 이 고생은 안하면서 사는데.." 등등


이러한 말들은 나로 하여금 내 존재 자체를 거부하고 자책하게 만들었다.

'내가 있어서, 나를 키워야 해서 사랑하는 우리 엄마가 이렇게 뼈빠지게 고생해. 돈 버느라 바쁜 엄마 대신에 나를 키우느라 언니가 나를 싫어하는건 당연해.' 라며.


가난과 폭력으로 얼룩진 집안에서 원치 않게 만들어져, 어거지로 나를 키우느라 고생하는 부와 모의 눈치를 보면서 난,

아주 어릴 때부터 '착한 아이' 그리고 '애교' 라는 생존 전략을 택했다.


언제 폭력적으로 변할지 모르는 아버지의 칼날같이 날카로운 모습과 살얼음판 같은 집안 분위기를 풀기 위해(나의 불안감을 덜기 위해) 나는 한없이 말 잘 듣고 착한 딸이 되기로 선택했고, 수시로 애교를 부리며 아버지의 마음을 풀어드렸다. 그래야 그날 하루는 아무 일 없이 지나갈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선택해 왔던 생존 전략(착한 아이, 애교 많은 늦둥이 막내딸)은 자연스레 나의 인격이 되었고, 그 결과 30대 중반인 아직도 나는 말투에 애교가 섞여있다. 그리고 늘 타인에게 예쁨과 사랑을 받기 위해 내 감정을 억누르고 절제하며 착한 모습을 보인다.


성격만 억눌렀는가,

"안키워도 될 너를 이렇게나 고생해서 키우고 있으니, 성인이 된 후부터 네 인생은 네가 책임지며 살아야 한다. 돈벌이를 하기 시작하면 부모에게 생활비를 돌려주는 것은 당연하고 윤리이다." 라는 내 가슴에 화상자국처럼 깊게 심어진 말들은 내 인생을 잡초처럼 강하게 만들었다.



대학 시절에는 효율적으로 등록금을 구하기 위해, 매일 앞자리에서 공부하며 전액 장학금을 받았다.

그러다 보니 운이 좋게 삼성그룹에 공채로 입사했고, 또 운이 좋게 종종 상위 고과를 받으며 또래 친구들에 비해 꽤나 높은 연봉을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삼성에서 20대를 다 바치며 성실하게 일한 값의 최소 절반 이상은, 내 부모에게로 돌아갔다. 나는 나를 키우느라 고생한 부모에게 그렇게 빚을 갚는 것이 당연한 것인줄 알았다. 정말로.




30대가 되선, 어려운 환경에 처한 아이들이 조금 더 수월하게 살 수 있도록 돕고 싶다는 마음에, 사회복지사가 되기로 다짐한다. 그렇게 30살에 사회복지학 학위를 다시 취득하며 아동복지재단, 아동심리상담센터에서 3년을 더 일한다.


하지만 어찌저찌 사회복지는 일로써는 그만하게 되었고, 운이 좋게 꽤 괜찮은 스타트업에 또 이직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곳에서 아주 큰 예상외의 변수를 마주하게 된다.


바로 내가 만난 남성 팀장의 성정이 매우 폭력적이었다는 것이다. 그에게 폭언과 욕설은 일상이었고, 폭력적인 행동(고양이가 보이면 달려가서 고양이를 발로 차고, 말리는 나에게 죽여버린다 하거나, 음주운전을 하는 등)을 보이곤 했다.


딱 한 달이었다. 단 한 달이란 시간 만에 나의 정서 상태는 급속도로 위축되었고 극도로 불안해졌다. 그렇게 두 달도 채 버티지 못하고 나는 도망가듯 마지막 직장을 그만둔다. 어찌 보면 나를 위험 상황으로부터 최선을 다해 지켜낸 것이기도 하지만.




외에도 '25년에는 수많은 변수들(묻지마 폭행, 이혼, 4번의 이사, 2번의 퇴사 등)을 겪으며 나는 어느새 바닥에 내려앉게 되었다.


얼마 전 정신과에서 자율신경계 검사를 진행했고, 그 결과 최대치의 교감신경 점수와 최저치의(0점에 가까웠던) 부교감신경 점수를 받으며 의사 선생님께 "아직 환청과 망상 증세가 없냐. 정신병원에 입원한 이력이 없었냐"는 말을 듣게 된다.




아.. 정말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산 죄밖에 없는데..

평생 사람들에게 사랑받으려 착한아이 콤플렉스를 애써 지켜왔고,

어린 시절 학대로부터 내 몸 하나 건사하느라 최선을 다해 살아냈고,

성인이 돼서는 경제적으로 독립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일했고,

최선을 다해 부모를 부양했고, 아이들을 돕기 위해 최선을 다해 다시 공부했다.

나라도 좋은 가정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해 결혼생활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그 결과가 '이 상태로 정신병원에 입원한 적이 없었냐' 는 질문이라니.





지난 30여 년간 난 무얼 위해 이렇게 열심히 산걸까 하는 의구심,

내 몸과 마음을 직접 지니고 사는 내가, 정작 내 자신을 한순간도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끊임없이 닥쳐오는 고난들에 대한 원망 등.

다양한 감정이 든다.


하지만 아직 정말 다행인 건, 내 마음 한켠 작은 구석에서

'그래도 괜찮아. 매 순간 너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해왔을 뿐이잖아.' 라는 말이 들린다.


그래 괜찮아. 나는 정말 최선을 다해 부끄럽지 않게 살았어. 후회나 미련이 남는 것도 없어.

그렇다면 지금 상황이 어떻든 나는 정말 잘 살아온게 맞는거야.



지난날들을 간단히 정리하다 보니 조금 가슴이 쓰려오기도 하지만,

그래도 오늘 하루도 나를 보듬어주며 힘을 내본다. 괜찮다고, 애쓰며 사느라 정말 고생 많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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