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 이혼 이야기. 그리고 대형 로펌의 배려
작년 가을, 연애 때부터 반복된 7년간의 시댁 스트레스와 전남편의 중재 부족 문제를 더이상 참지 못하고 집을 나왔다.
그래도 한때 법적으로는 가족이었던 시댁 여성분들(시어머님, 시누이, 시할머님, 시이모님들)을 흉보고 싶지 않으니 겪었던 일들을 이곳에 적지는 않겠지만, 아마 그녀들은 변변찮은 내 가정환경을 어느 정도 무시했음이 분명하다.
음.. 양가의 체급 차이를 굳이 따지자면 그리 차이가 나는 집안이 전혀 아닌데.. 내가 이런 대접을 받고 살 이유가 없었다. 원가정과 모두 절연하고 괜찮은 친척도 하나 없는 내게, 남편과 시댁은 말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소중한 가족이었고 난 그만큼 그들에게 사랑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인간이란 존재 자체가, 사랑의 비대칭성 원리에 따라 본인들이 우위에 있다는 판단을 하면 실제로 우월해지려고 하는 것인지
아니면 단지 시댁분들의 성정의 결이 나와는 달랐던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들은 어느새 자연스레 그리고 아주 당연하게 그들의 부족한 경제적인 문제를 우리의 의무로 돌렸다. 여기서 더욱 문제는, 겉으론 불효자 같아 보이던 아들이 실제로는 너무나 효자였다는 것이다.
(*저의 입장에서만 생각하여 작성하는 글이라 주관적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 주변 사람들은 다 제 편이긴 하네요. 하하..)
이후 집을 나와 당장 비상금도, 갈 곳도 없던 나는 3개월간 친구 집과 병원, 아주 작고 허름한 고시원, 지방의 한 아파트를 돌며 거처를 옮겨 다녔다.
그 사이에는 길을 가다가 정신병원을 나온 조현병 남성 환자에게 묻지마 폭행을 당해 경찰서도 다녔고, 발목 인대가 파열되어 보름 넘게 병원에 입원해 있기도 했다. 이후 목발을 짚고 이직한 지방의 한 회사에서는 폭력적인 성향의 팀장을 만나 입사 한 달 만에 퇴사를 했다. 그렇게 난 지금 또 서울로 올라와 작은 방 한칸에 머물고 있다.
사람이 이렇게까지 격변의 시기를 보낼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정신이 하나도 없는 이 와중에, 전남편이 보내온 재산분할합의서.
대기업에서 재무 업무를 오래 한 그가 무서울 만큼이나 자세하게 적어 보내온 합의서의 내용은 너무나 논리적으로 적혀있었지만 전혀 합리적이지는 않았다.
나는 지난 2년간 원가정과의 절연, 이혼, 이직, 이사, 두 번의 퇴사 등 끊임없이 지속된 대소사들로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고, 전남편과 다툴 힘도 전혀 남아있지 않은 정말 극도의 소진 상태였다. 그냥 이 더러워진 관계를 빠르고 깨끗하게 정리하고 싶은 마음만이 남았을 뿐.
그렇게 합의를 했고, 숙려기간을 거쳐 협의이혼 확정일이 며칠 남지 않은 어느 날이었다.
갑자기 내가 이상했다. 그냥 이렇게 끝내버리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무언가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힘이 생겨났다.
'이대로는 안돼.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봐야겠어. 내가 어떻게 살아온 인생인데, 돈까지 다 뺏기면 진짜 나에게 남는 건 없어.' 라는 잡초 같은 힘으로 찾아간 대형로펌.
나는 이혼 관련 전문 팀장님과 30분간 대화를 했고, 여성 팀장님께서는 끊임없이 나를 감탄? 칭찬? 해주셨다. "어떻게 이렇게 똑똑하고 씩씩하시죠? 어떻게 이렇게 말씀을 잘하시죠? 진심으로 도와드리고 싶어요. 비용 상담도 실장님 말고 저랑 하시죠. 제가 도와드릴게요."
그냥 해주시는 말씀인 줄 알았다. 그런데 정말 계약서의 조항을 직접 수정하시면서 내게 엄청난 배려해 주셨다. 그리곤 따스하지만 누구보다 강인한 눈빛으로 말씀하셨다. "끝까지 힘내셔야 해요. 그렇게 씩씩하게 사셔야 해요. 제가 도와드릴게요."
그녀는 말했다. (이혼한 사람에 한해서) 사람은 두 번 태어나고 그때마다 출발점이 다르다고.
첫 번째 인생은 어떤 부모에게서 태어났는지가 시작점을 결정하고, 두 번째 인생은 얼마나 이혼을 잘해서 남은 인생을 비교적 평탄하게 살 수 있는지가 또 다음 인생의 시작점이라고.
아. 이 얘기를 듣는 순간 머리가 번뜩이고 눈이 번쩍 떠졌다.
팀장님께 너무 감사드리기도 하지만, 스스로도 참으로 기특한 요즘이다. 끊임없이 고난들을 겪을 때마다 넘어지고 울고 다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툭툭 털고 일어나 다시금 씩씩하게 나아가는 내가 너무 기특하다.
씩씩하게 살면 이렇게 좋은 운들이 찾아온다. 좋은 사람들이 온 힘을 다해 나를 도와주고, 예상치 못한 행운들이 생기기도 한다.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각자의 전쟁을 치르며 힘겹게 사는 인생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믿고 씩씩하게 나아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