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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Apr 10. 2020

권위는 어디에서 나오는가


 유학 나오기 전 한 2년 정도 작은 개척교회에 다닌 적이 있다. 이 교회에 종종 한 전도사님이 방문하곤 했다. 주변 기도원에서 살면서 매일 5번씩 기도회를 인도하는 분이었다. 작은 교회 격려하신다고 과일도 사오고 좋은 말씀도 많이 해주고 그랬었다. 


 이분의 독특한 말투가 유독 기억에 남는다. 살짝 쉰소리가 섞인 채 목소리를 낮게 깔고 끝을 길게 뽑는 말투였다. 가끔 이해할 수 없는 대목에서 화난 듯 소리를 높이기도 하신다. 늘 확신에 차있어서 왠지 모르게 신뢰가 가는 말투이다. 


 중요한 건 별 얘기 아닌데도 같은 말투로 하시고, 또 그게 그분 말씀의 설득력을 묘하게 높여준다는 것이다. 어느 날은 딸기 한 상자를 갖고 오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요 앞 과일 가게에서 딸기를 사왔어어(낮게). 딸기는 이 집이 제일 맛있다고오(끝을 살짝 올림)"


  목소리를 한껏 깔고 자뭇 엄숙하게 말씀하시는 그 말투에 권위가 묻어 나왔다. 확신에 찬 말투에 넘어가 딸기는 반드시 그 가게에서 사먹어야겠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동네 슈퍼들을 다 돌아보고 전수조사를 한 후 말씀하신 건 아니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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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제홍 형님의 소개로 어떤 사람의 유튜브 영상을 접했다. 한국에 코로나19가 퍼진 게 공산주의자인 문재인 대통령 책임이라며 이 사실을 널리 알려야 한다고 독려하는 내용이었다. 


 주장 자체도 근거가 빈약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이 사람이 반복적으로 하나님, 신앙, 교회, 창조질서 등을 언급하며 자신의 주장이 기독교 신앙에 근거한다는 메시지를 보낸다는 것이다. 자신의 신실함을 드러내듯 경건한 음악과 함께 성경구절로 영상을 마무리한다. 


 정치나 경제체제에 대한 오해를 "기도"나 "신앙", "성령께서 주시는 마음" 등의 잘못된 권위로 포장해 유통하는 사례를 찾기는 사실 어렵지 않다. 잊을만하면 터져 나오는 목사님들의 망언에 가까운 설교, 현지 상황에 대한 잘못된 해석을 담은 선교사의 편지, 기독 전문인의 발언을 근거로 하는 편향된 주장들... 진위와 상관없이 신실한 신앙인이 기도하며 주장했다는 이유로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주장의 권위는 발화자의 신앙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메신저의 신실함이 아니라 해당 주제에 대한 이해의 깊이와 근거의 진위, 논리의 타당함을 살펴서 메시지를 평가해야 한다. 


 믿거나 말거나 내가 브런치에 올리는 거의 모든 글은 내 기독교 가치관을 바탕으로 쓰였다. 하지만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나는 내 글에 내 신앙의 색채를 담으려 하지 않는다. 첫째로 기독교 가치관이 특정 사상과 이념을 배타적으로 지지하지 않기 때문이고, 둘째로 글을 읽는 기독교인 친구들이 내 신앙을 근거로 글에 권위를 부여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때문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진리의 스펙트럼은 우리의 편향되고 편협한 가치관보다 훨씬 더 넓고 깊다. 우리가 이해하는 수준의 "신앙" 안에 진리를 담으려는 시도는 거의 언제나 실패하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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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재인이 공산주의자라는 주장은 우리 개척교회를 찾아오신 전도사님께서 "딸기는 이 가게가 가장 맛있어어"라고 하는 주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아무리 목소리를 깔고 확신에 차서 말했더라도, 기도를 10시간 하고 내린 결론이라 해도 신앙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선호"에 따른 주장이다. 


 주장에 설득력을 더하려면 샘플을 뽑아서 당도 조사를 하든지 다른 전문가의 주장을 인용하든지 적절한 근거를 가지고 오면 된다. 내가 얼마나 신앙심이 좋은지 드러내고 창조질서를 들먹여 봤자 주장의 신빙성은 한치도 높아지지 않는다. 


 나는 내 기독교인 친구들이 이런 종류의 잘못된 권위에 속아 넘어가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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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기독교 일각에서 문재인은 공산주의자라는 주장이 많이 나오는데 이는 정치적 자유주의와 경제적 자유주의를 혼동하기 때문에 발생하지 않나 싶다. 자유방임을 표방하는 보수주의와 시장실패 교정을 위한 정부 개입을 허용하는 서구의 리버럴리즘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도 이유 중 하나... 총선 전에 한번 정리해볼까 생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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