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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May 29. 2020

시차 적응

시각의 차이도 좁힐 수 있다면

 예상보다 더 시차적응이 늦다. 밤엔 영 못 자고 아침과 초저녁에 잠이 쏟아진다. 격리 중 일정이 딱히 없다 보니 마음을 느긋하게 먹게 된다. 아마 평소보다 배 이상은 걸릴 것 같다.


 어려서 그런지 도준이는 이미 적응 완료다. 이삼일 헤롱대더니 바로 정상패턴으로 돌아왔다. 내가 밤새 못 자고 아침에 좀 눈을 붙일라치면 도준이가 일어나서 꺅꺅거린다. 올라타고 눈을 억지로 띄우고 일어나라고 아우성이다. 이번에 새로 산 장난감을 던져주고 잠을 청해보지만 그것도 오래 안 간다. 결국 지친 몸을 이끌고 일어나 놀아줘야 한다.


 한국과 남아공의 시간만 다른 게 아니라 도준이와 나의 시간도 다르다. 우리 둘 간의 시차는 또 다른 긴장을 만들어 낸다. 평소엔 귀엽게 보이던 도준이 장난이 그렇게 못마땅하다. 신경이 날카로워져서 사소한 거 하나하나에 예민하게 반응하게 된다. 말을 조금만 안 들으면 쉽게 소리가 높아진다.


 아빠가 강하게 나오면 도준이도 만만치 않게 반응한다. 전보다 더 많이 때리거나 깨물고, 무슨 말만 하면 싫어요, 아니요부터 나온다. 모든 말 앞에 "안" 자를 붙여서 부정을 만든다. '밥 먹어' 하면 '밥 안 먹어', '정리해' 하면 '정리 안 해'가 반사적으로 나온다. 어제는 자꾸 때려서 '아빠 괴롭히지 마' 했더니 아빠 괴롭 안 피지마' 이런다. 그냥 습관이다.


 이렇게 기싸움을 한참 하다 보면 서로 폭발한다. 도준이는 결국 울고불고 엄마를 찾고 아빠는 될 대로 되라 하고 방에 들어간다. 그렇게 들어가서 잠깐 있으면 내가 애 데리고 뭘 하고 있나 싶다.


 생각해보면 도준이도 나름대로 고충이 있다. 남아공에선 집 앞 주차장이라도 나가 뛸 수 있었는데 여기선 집 밖으로 한 발짝도 못 나간다. 층간소음 때문에 집 안에서 뛰는 것도 조심스럽다. 에너지를 주체 못 하고 뛸라치면 엄마아빠가 학을 떼고 막아서니 자기도 답답할 거다.


 아기 눈엔 모든 게 장난감인데 엄마아빠는 규율만 강조하니 그것도 얼마나 스트레스일까. 밥도 깨끗이 먹어야 하고 잠도 정해진 데서 자야 하고 심지어 장난감도 규칙대로 가지고 놀아야 한다니 숨이 막힐 것 같다.

 아이의 시각으로 세상을 보니 화냈던 게 조금은 미안해진다. 울다가도 금방 풀려서 놀고 있는 도준이에게 다가가 소심하게 사과를 전한다.


"도준아, 아빠도 도준이 힘든 거 알아. 아빠가 더 이해해볼게. 자꾸 짜증 내서 미안해."


아빠 말을 알아듣는 건지 도준이도 배시시 웃는다.


 시차(時差: 시간의 차이)에서 시작한 생각이 시차(視差: 시각의 차이)로 확장된다. 시간의 차이는 얼마 지나면 저절로 사라지겠지만 시각의 차이를 극복하는 데엔 노력이 필요하다. 아이는 세상을 어떻게 보는지, 지금 아이의 상태는 어떤지, 아이가 왜 화가 났는지 생각하면 나도 화가 가라앉고 이해하는 마음이 생긴다. 그렇게 아이를 보듬어주면 아이도 아빠에게 더 잘하게 된다.


 육아의 성패는 결국 부모와 아이의 시차를 어떻게 줄이느냐에 달려 있지 않나 싶다. 아이의 시각을 먼저 배려해 줄 만큼 성숙한 인격을 갖추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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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 육아만 그럴까? 위안부 문제, 검찰개혁 문제, 등교 문제 등등 각종 사회 이슈에 대해 각자의 시각이 다름을 인정하면 조금 덜 싸울 수 있을 거 같다. 배 아파 나은 도준이 하나 이해하기도 어려운데 누굴 이해할 수 있을까 싶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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