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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Jun 20. 2020

비온 뒤 맑음

성찰의 힘


제주 도착 후 삼일 내내 폭우가 쏟아지다 어제 오후 돼서야 잠깐 해가 났다. 이른 장마라나.

비바람이 칠 땐 집에 있는 게 상책이다. 공연히 나서서 이리저리 치일 이유가 없다.

그래도 꼭 나갈 일이 있다면 풍우에 휩쓸리지 않도록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시야가 좁아진 상태에서 길을 더듬다 보면 목적지를 잃고 표류하기 십상이다. 초행길일수록 더 조심해야 한다.

길을 잃었을 때, 내가 어디쯤 와있는지는 날이 개어야 알 수 있다. 해가 나고 바람이 잠잠해져서 시계가 트이면 다시 목적지를 찾아가야 한다.

...

내가 브런치에 글을 올린 지 일년이 좀 넘었다. 그 사이 몇번의 굵직한 이슈가 지나갔다. 조국, 검찰개혁, 입시개혁, 코로나, 총선, 윤미향, 북한... 그야말로 만성풍우, 저마다 한 마디씩 더하는 통에 신경을 안 쓸래야 안 쓸 수 없었다.

폭풍우가 칠 때는 밖에 안 나가는 게 최선이다. 과열된 상태에서 제한된 정보로 내린 판단은 틀리기 십상이다. 최초의 발언은 이후의 판단을 옭아맨다. 말을 아끼는 게 언제나 최상책이다.

그래도 꼭 나서야겠다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시야를 최대한 넓히고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으려 노력해야 한다. 아는 데까지만 얘기하고 모르는 건 모른다고 인정해야 한다.

광풍이 지나가고 날이 개면 반드시 되물어야 한다.  길을 잃진 않았는지, 헤매다가 너무 멀리 오진 않았는지, 애초에 내가 나선 목적을 달성했는지 돌아봐야 한다.

...

 나는 내가 언제나 정확한 판단을 내린다고 과신하지 않는다. 폭풍우가 칠 때 과감히 한 발을 내딛으면서도 오히려 내가 틀릴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조심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다시 돌아본다. 내 판단이 옳았는지. 균형을 잃지 않았는지. 번복해야 하는 발언은 없는지.

스스로의 부족함을 늘 자책하지만, 성찰하는 능력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든다는 믿음에 위안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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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사진은 비온 뒤 게 갠 제주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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