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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Jul 07. 2020

내게로 오라

차별금지법을 바라보는 기독교인의 자세


* 이 글은 기독교인 분들을 염두에 두고 썼습니다. 기독교인이 아닌 분들께는 익숙지 않은 언어가 있을 수 있음을 양해 부탁드립니다(웬만하면 스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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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의 잡힐 듯했던 코로나19가 지난 5월 초 이태원 클럽 확진 이후 지속적으로 늘고 있습니다. 유럽이나 미국 등지에서 처럼 폭발적인 사망자 증가는 없습니다만, 수도권 위주로 200건 이상의 클럽 발 연쇄 감염이 확인됐고 지금은 여러 고리를 타고 전국으로 퍼져나가고 있어 안심하기 이른 단계입니다.


 첫 확진자가 나왔을 때 가장 큰 우려는 감염자들이 검사를 받지 않고 숨어드는 것이었습니다. 가뜩이나 코로나 감염자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은 상황에 게이클럽, 수면방 등 민감한 사생활이 주목받으면서 잠재감염자들이 검사받는 것을 꺼리게 될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신상과 동선의 노출은 편견 가운데 오래 살아온 소수자들에게 가장 두려운 일이 아닐까 짐작해봅니다.


 방역의 관점에서 감염자를 조기에 발견하여 격리, 치료하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태원 클럽을 고리로 감염된 사람들이 검사를 거부하면 전염병 전파를 효율적으로 차단하기 어렵습니다.


 다행히 인권단체들을 중심으로 신상노출을 최소화하기 위한 다양한 대책이 나왔고, 방역당국은 "특정 커뮤니티에 대한 비난은 방역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혐오 여론에 제동을 걸었습니다. 또한 익명검사를 도입하는 등 발빠르게 대처하여 사안을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자신을 숨기지 않고 방역에 협조한 클럽 방문자들의 역할 역시 주요했습니다.



클럽 확진 직후 결성된 '코로나19 성소수자 긴급 대책본부'의 포스터 (출처: www.queer-action-against-covid19.org)



  감염자가 남에게 질병을 퍼뜨리지 않고 스스로도 치료받기 위해선 반드시 선별진료소로 나와 검사를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모두가 나서서 감염자를 비난하면 누가 검사를 받으려 할까요? 실제로 연구에 의하면 사람들은 코로나 감염 자체보다 주변으로부터 받을 비난을 더 두려워한다고 합니다(참고기사 링크).


 잠재감염자들이 최대한 많이 치료를 받게 하려면 감염의 원인을 개인에게 돌리지 않으며 감염자의 신상정보를 철저히 보호하는 분위기가 필요합니다. 감염자에 대한 혐오는 비단 인권의 관점에서 뿐 아니라 의료 및 방역의 관점에서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감염자들에게 '너의 잘못이 아니야, 나와서 검진받자'라고 이야기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



  

 제가 가진 종교관으론 동성애가 하나님의 창조질서에서 벗어난 상태입니다. 하지만 동성애라고 유난히 특별한 것은 아닙니다. 타락한 인류는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그 누구도 창조된 모습 그대로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절도, 폭력, 살인 등 명백한 범법 행위부터, 거짓말, 험담, 미움, 음란 등 비도덕적인 행위와 생각, 그리고 질병이나 장애 등 바람직하지 않은 상태까지 모두 창조의 원형(原形)에서 벗어났다고 이야기합니다. 정상적인 기독교인이라면 죄에 대해 엄격한 기준을 가지고 있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이렇게 망가진 세상에서 죄인으로 살 수밖에 없는 인간이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으로 인해 구원을 얻었다는 것이 제가 이해하는 기독교 복음의 핵심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와 그 모든 죄를 지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고 그 결과 인류는 죄에서 자유로워졌습니다. 이 땅에서 여전히 죄 많은 옷을 입고 살지만, 예수께서 다시 오셔서 창조의 원형을 회복하실 때 우리는 모두 예전의 완전한 모습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복음을 받아들이고 믿음을 가지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예수님의 조건 없는 사랑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내가 이전에 어떤 죄를 지었던지, 현재 어떤 상태에 있던지, 얼마나 자주 넘어지던지 상관없이 매번 '그래도 사랑한다'라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음성에 항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가 성별, 장애, 나이, 언어, 출신국가, 출신민족, 인종, 국적, 피부색, 출신지역, 신체조건, 혼인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 및 가구의 형태와 상황, 종교,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전과,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학력, 고용형태, 병력 또는 건강상태, 사회적 신분 등을 이유로 차별하여 부과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죄인일수록 더 '내게로 오라'고 하십니다. 죄를 더 깊이 깨달을수록 더 큰 사랑을 알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조건 없는 사랑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먼저 '내게로 오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야 합니다. 감염자가 선별진료소에 나와 검진을 받아야 치료를 받을 수 있듯, 죄인인 인간은 예수님께 나와야 자기의 상태를 정확히 깨닫고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직접 찍은 선별진료소.




  저는 이 시점에 교회의 역할을 고민합니다. '동성애는 죄다', '창조질서에 어긋난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소수자들이 일상에서 부당한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보호하는 차별금지법을 결사적으로 막아서는 것이 이 시대 교회에 주어진 사명일까요?


 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코로나19 확진자에 대한 과도한 비난이 오히려 잠재감염자를 숨게 하듯 인간의 죄성을 고발하며 배제하면 죄인은 오히려 더 숨어듭니다. 성도가 '동성애는 죄'라고 광장에서 선포하는 것이 자신의 확고한 믿음에 따른 행위라고 칩시다. 그 말을 들은 성소수자들이 과연 교회에 가려 할까요? 그들이 예수님의 사랑 앞에 나아가게 될까요? 오히려 교회에 대한 반감이 더 커지고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사랑과 용서를 거부하게 되진 않을까요?


 성적 지향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고 전 그중에서도 가장 보수적인 의견을 지지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차별금지법은 성적 지향에 대한 개개인의 입장과는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인간의 존엄성이 그 어떤 이유로도 부정당하지 않게 돕는 법, 그간 소수자들이 받아온 무신경한 혐오와 차별에 제동을 거는 법, 가장 소외된 사람까지도 사회가 돌보겠다고 선언하는 법이 제가 이해하는 차별금지법입니다.


 저는 차별금지법이 기독교의 핵심인 "사랑의 정신"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기독교인일수록 차별금지법 제정에 더 힘을 모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더 많은 죄인이 예수님께 나아와 치유받고 구원받을 수 있게 안내하는 것이 기독교인의 제 1 사명이라면, 우리는 더더욱 이웃을 차별하거나 배제해서는 안됩니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조건 없고 차별 없는 예수의 사랑을 전하는 것입니다.


 나머지는 예수님께서 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교만과 아집, 편견과 제한된 경험에 갇혀 그분이 하실 일을 막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물론 저 스스로 하는 다짐이기도 합니다.




덧1.  차별금지법에 대한 오해가 건전한 논의를 일정 부분 막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법안 전문을 읽어본 결과 차별금지법 제정으로 제 신앙을 마음껏 고백하지 못하게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봅니다. 만약 그런 세상이 온다면 제가 제일 앞장서서 싸우겠습니다.


덧2. 굳이 여기까지 읽으신 비기독교인 분들께. '동성애는 죄'라고 외친다고 성소수자들이 바뀌지 않듯 '기독교는 혐오 종교'라고 외친다고 기독교인들이 바뀌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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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용:

 

법안 전문: http://likms.assembly.go.kr/bill/billDetail.do?billId=PRC_N2K0Y0Y6O2J9K1Y0N4I2J2X1D0Y0A5  


팩트체크 뉴스: https://www.bbc.com/korean/features-53245361

                         http://news.jtbc.joins.com/article/article.aspx?news_id=NB119574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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