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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Oct 16. 2020

기류 변화

방역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

1. 차단의


 1년 반 정도 소셜미디어를 이용하면서 차단한 사람이 딱 한 명 있다. 어디 외국에서 일하신다는 의사 선생님이다.


 로나가 대구경북에 막 퍼지기 시작할 때였다. 이 분은 정부가 중국인을 안 막았다느니, 우리 쓸 마스크도 없는데 중국에 수출했다느니, 치사율이 5-10%는 되는데 속이고 있다느니 하며 문재인을 대차게 욕하던 분이었다. 전문가를 자처하며 사실과 다른 얘기를 해서 몇 개 바로 잡았더니 그때부터 내가 대깨문이니 문빠니 건방지게 전문가 말에 토를 단다느니 포스팅마다 따라다니며 욕을 해댔다.


 악플 달린 게 한두 번도 아니고 거기까진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국내에서 첫 사망자가 나오자 본인 예상이 맞았다며 나에게 '속이 시원하냐'말한 건 참을 수 없었다. 이 분은 마치 사망자가 생기길 기다린 것 같았다. '국민의 안전과 생명'이 가장 소중한데 국가가 지키지 못했다며 열을 내는 분에게서 정작 죽은 사람에 대한 예의는 전혀 찾아볼 수가 없어 차단했다.


 그게 지난 2월이다. 그 의사 선생님이 조금 거칠긴 했지만 당시 사회는 거의 이런 분위기였다. 특히 신천지 발 감염 확산이 시작되면서 수백 명 단위 확진자가 나오기 시작하자 그야말로 패닉이었다. 하루 두 번씩 확진자 수가 발표될 때마다 정부가 잘못했니 중국이 잘못했니 걸린 사람이 잘못했니 손가락질이 난무했다.


 중국인 입국을 막지 않은 게 문제라는 사람들, 사망자가 나온 시각에 대통령이 짜파구리를 먹었다며 욕하는 사람들, 확진자 동선과 신원까지 공개하라는 사람들, 공개된 개인정보를 두고 이러쿵저러쿵 뒷말하는 사람들, 중국 눈치 보느라 '우한폐렴'이라는 말도 못 쓴다는 사람들, 사망자 유족들과 '우한폐렴 피해자 단체'를 만들어 보상을 요구하는 사람들, 정부가 마스크도 제대로 공급 못하냐더니 공급을 통제하기 시작하자 사회주의라고 비난하던 사람들.... 다양했다.


 그렇게 한동안 혼란이 있었지만 그래도 한국은 잘 막아냈다. 투덜대면서도 할 건 다 하는 게 우리 국민들이다. 의료진과 공무원들의 헌신, 당국의 투명한 정보공개, 시민들의 자발적인 희생과 협조가 빛났다. 입국 금지를 최소화하고 강제적 이동제한도 없이 방역과 일상의 균형점을 비교적 성공적으로 찾아갔다.


 그 와중에 유럽과 미국에 무서운 속도로 감염이 확산되고 사망자가 무더기로 나오며 우리는 안전한 나라에 사는 것에 안도했다. 경제에 심각한 타격이 있었지만 다른 나라에 비하면 우리 경제는 선방했다. 경제와 안전을 동시에 잡은 K-방역은 세계적인 브랜드가 되었다. 문재인을 욕하는 사람은 더 이상 다수가 아니었고, 민주당은 총선에서 압승을 거두었다.



2. 방역 도그마


 그렇게 우리가 코로나19 확산을 성공적으로 막아내자, 이제 방역은 도그마로 변했다. 곳곳에 "Stay Home" 구호가 넘치고 나가서 밥을 먹거나 붐비는 장소에서 놀거나 여행을 가는 것은 숨어서 몰래하는 행동이 되었다. 마스크를 안 쓴 사람은 교양 없는 사람이 되었고, 개인정보보호나 개인의 자유, 기본권을 입에 올리는 사람은 생명을 존중하지 않는 무뢰배 혹은 자영업자들의 고통은 안중에도 없는 부르주아 취급을 받아야 했다.


 통계나 볼 줄 알지 공감능력은 떨어지는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코로나의 위험은 2월이나 5월이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았다. 높은 전파력, 비말 감염, 고령/기저질환자 외에 낮은 치사율 - 나라마다 초기 정부 대응, 문화, 면역체계, 인구구성 등에 차이가 있어 피해 정도가 달랐지만 병원체는 그대로였다.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대처하면 되는데 나라마다 양 극단을 오갔다.


과한 것 같을 땐 과하다고, 모자란 것 같을 땐 모자라다고 말하는 나는 박쥐 같은 사람이 되었다. 각자 상황에 맞게 위험을 평가하고 일상을 살자는 말도, 비용에 비해 효과가 적은 기본권 침해는 최소화하자는 말도, 확진자 비난은 그만하자는 말도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었다(아마도 이때부터 좋아요 수가 줄기 시작했...).


 요 며칠 스웨덴이 자국 방역정책에 반론을 제기하는 과학자들을 억압했다며 "60년대 소련 분위기"라는 사람도 있는데, 솔직히 전세계적으로 봉쇄에 반발하는 사람이 더 억압당하면 당했지 그 반대는 아니었다. 나만해도 집에 머물자 손 씻자 마스크 쓰자 말하는  부담이 없었어도 인권이니 일상이니 자유니 말할 땐 용기가 필요했다.



3. 기류 변화


 그런데 최근 다시 기류가 변한 걸 느낀다. 이대론 못 살겠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일상과 방역의 균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힘을 얻기 시작하는 것 같다. 집단면역(whatever this means)이 다시 주목받고 스웨덴 모델이 재평가된다. 없던 목소리가 새로 생긴 게 아니라 그 목소리를 듣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진 것이다. 오명돈 교수나 이덕희 교수 등의 대안적 주장이 언론에 소개되어 호응을 얻는다.


 아이러니는 이 대안적 주장의 전파가 정파적 필요에 의해 이뤄진다는 것이다. 차단해서 그 의사 분이 지금 어떤 생각인지 모르지만, 당시 중국인 입국금지를 외쳤던 이른바 봉쇄교 신도들이 이제는 자유의 투사가 되어 집단면역을 외친다. 문 정부가 하면 다 잘못이라는 사람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보수 정치인, 보수 언론은 앞다투어 대안을 제공한다.


상황이 바뀌면 대처도 바뀔 수 있지만 달라진 상황이랄 게 없다. 코로나의 특성도 그대로고 백신/치료제도 여전히 없다. 이렇게 오래갈지 처음부터 다들 알고 있었다. 중환자실과 장비가 충분히 확보된 것 같지도 않다. 이론으로만 알던 사실을 이제야 사람들이 경험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게 아닌가 싶다. 정파성은 발화를 더 쉽게 하도록 거들뿐이다.


이유가 뭐가 됐든 사회 분위기가 서서히 변해간다. 사회적 합의가 방역 대응 결정에 중요한 요소라면 앞으로 정책 기조에도 변화가 있을 게 분명하다. 적어도 확진자와 사망자 수가 웬만큼 많아지기 전까지 통제 수준을 올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4. 양가감정


 친구들이 잘알듯 나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입장 변화가 없다. 일정 정도의 사회적 거리두기와 철저한 고위험군 보호를 전제로 각자 평가한 위험에 따라 일상으로 복귀하자, 그 과정의 피해는 함께 감당하자는 입장이다. 내가 잘못 생각한 건 없나 계속 정보를 업데이트해봐도 판단을 뒤집을만한 증거는 못 찾았다.


 예전에 비해 같은 목소리 내는 사람이 많아져서 내가 마음이 편해졌냐 하면 또 꼭 그렇지만은 않다(약간 부담을 덜은 정도). 완화정책을 가열차게 비난하던 저 진영 사람들의 태세 전환도 못마땅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오히려 이제는 '코로나 음모론자'들에게 불필요한 안도감을 심어줄까 두렵다. 비난을 위한 비난이 목적인 자들에게 근거를 제공하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다 부질없는 생각이다. 몇몇 극단적인 예가 두드러져서 그렇지 대부분의 사람은 어느 정도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합리와 지성을 갖추고 있다. 진영의 이익을 위해 뻔뻔하게 태세를 바꾸는 사람은 극소수고 보통은 각자 나름의 정보와 경험을 토대로 합리적인 판단을 내린다. 그 사이 의견의 차이는 소통하며 조율해 가고, 서로 다른 결론에 도달해도 당연한 일로 여기고 넘어가면 된다.


 양가감정을 뒤로 하고, 앞으로도 스스로 떳떳한 주장은 자유롭게 이 공간에 남길 예정이다. 언제나처럼 부족한 점에 대한 지적은 대환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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