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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Oct 02. 2020

위정자, 두번째 보고서, 코로나.

메시지는 어떻게 전달되는가



 1. 위정자(爲政者), 위정자(僞政者)

어제 페이스북에 나훈아 씨 발언 관련 포스팅을 올렸다가 흥미로운 사실을 알았다. 사전적으로 정치인과 같은 의미로 쓰이는 '위정자'란 단어를 위선적인 정치인으로 이해하는 사람이 꽤 있다는 것이다. 한자 조합 상으로 뜻이 안 통하는 건 아니지만, 난 사전에 등재되지 않은 단어는 안 쓰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소통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위정자는 정치하는 사람이란 뜻이다.




비슷한 또 다른 예는 '부동층'이다. 투표 시 지지 정당 없이 이리저리 떠다니는(浮動) 사람들이란 뜻인데 대신 부동(不動)이란 한자를 쓰면 '움직이지 않는'이라는 완전히 다른 뜻이 된다. 사전에는 전자만 올라와있고, 만약 후자도 자주 쓰이는 용례가 된다면 그야말로 대혼란이 올 것이다.

하지만 나훈아 씨의 말은 사전적 정의의 엄밀함과 무관하게 울림이 있었다. 사람들은 국민이 힘이 있으면 나쁜 정치인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알아서 받아들였고 누가 '위(僞)'정자인지 묻기 시작했다. 단어 사용의 엄밀함을 따지는 시도는 오히려 비웃음거리가 된다.

최대한 정확한 개념과 사실관계를 파악해야 한다는 나의 신념이 어떨 땐 소통을 방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사안에 대한 이해가 나와 다른 사람을 만났을 때 '너가 틀렸어'라고 말하는 건 별 도움이 안 된다. 생각이 다른 걸 디폴트로 깔고 소통의 방향을 고민하는 게 더 효과적인 방법이다.



2. 두번째 보고서

입사 후 두번째 보고서가 나왔다. 유럽에서 시행 중인 유럽그린딜과 우리 그린뉴딜을 비교하여 시사점을 찾아보았다. 중요한 이슈라 우리 팀 베테랑 연구원 님들이 거의 다 만들어놓은 작품에 공부하는 마음으로 숟가락만 얹었다.  


유럽에 비해 환경에 대한 인식도 약하고 자원도 덜 투입되는 우리나라 정책엔 아무래도 부족한 점이 많다. 그린뉴딜은 특히나 코로나 위기 상황에 부랴부랴 내놓은 정책이라 급조한 티가 난다. 보고서 발간 전 정부에 제출한 내부자료에는 이런저런 지적사항을 꽤 적나라하게 적었었다.

문제는 같은 내용을 외부에 공개할 때다. 국책연구원이다 보니 정부 비판의 강도를 적절히 조절해야 혼란이 덜하다. 공개 보고서는 주장의 내용뿐 아니라 톤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조세연 지역화폐 보고서처럼 이슈되면 득이 없음).

그래서 검독이라는 과정을 거친다. 팀장-실장-소장-원장님까지 한 번씩 읽어보고 수정사항을 내주시는데, 초보자인 내가 톤 조절을 잘못했는지 고칠 게 너무 많았다. 특히 원장님은 손 많이 가는 애기 보는 마냥 문구 하나하나 지도해주셨다. 거의 마지막 순간까지 고치느라 편집하시는 분이 고생 꽤나 하셨다.

마지막에 원장님이 해주신 말씀이 있다.

 "좋은 내용만으로는 사람을 설득할 수 없어요. 부정적인 말보다 긍정적인 말을 많이 써서 사람들을 살살 꼬셔야 해요."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내용을 욱여넣어봤자 상대는 다 튕겨내버리고 만다. 메시지의 내용을 정교하게 하는 데 더해 그 전달 방식을 고민하는 것은 언제나 필수적이다.




3. 코로나19 재평가

나만 이런 고민을 하는 건 아닌 것 같다. 유행 초기부터 참고했던 오명돈 교수님이 최근 인터뷰에서 비슷한 고민을 내비치셨다.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2944




인터뷰는 코로나19의 위험을 연령과 건강상태에 따라 재평가하고 그에 따라 방역 전략도 조절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이다. 학자로서 연구결과를 건조하게 말씀하시는 편인데 최근엔 코로나19의 위험이 과장되었다는 의견을 주로 내신다. 과한 대응을 주문하는 몇몇 전문가들의 주장과 배치된다.

하지만 인터뷰 내내 본인 메시지의 파급효과에 신경 쓰신다는 느낌이다. 혹시나 본인 의견으로 인해 사람들 마음이 필요 이상으로 느슨해지면 그 여파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이유다. 그래서 예정됐던 공식 기자회견도 취소했고, 인터뷰에서도 내내 커뮤니케이션에 오류가 있을까 걱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옳은 내용을 전달해도 듣는 사람들은 각자의 필터대로 받아들인다. 청자의 상황과 이해력을 고려하여 메시지의 전달 방식을 고민하는 것은, 한 분야의 최고 전문가도 피해 갈 수 없다.

(그나저나 인터뷰 내용 정말 좋다. 코로나 전문가가 이재갑, 강양구만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오명돈 교수님 인터뷰를 꼭 참고하길.)



4. 대화의 기술

소셜미디어를 활발히 하다 보면 가슴이 답답해질 때가 있다. 내가 관심 있게 들여다본 주제에서 다른 사람이 틀린 얘기(관점이 다른 의견 말고 객관적인 사실관계가 틀린 얘기)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이게 답답할 일은 아니다. 사람마다 관심사가 다르고 정보 습득의 통로가 다른데 모두가 같은 배경을 가지고 대화할 순 없는 노릇이다. 답답해 할 게 아니라 겸손하게 각자 익힌 다른 정보를 서로 교환하면 된다.

이때 필요한 것도 역시 대화의 기술이 아닌가 싶다. 나는 상대의 배경을 고려하여 내 지식을 전달하는 법을 더 배울 필요가 있다. 간결하게 말하면서도 필요한 내용을 다 담을 수 있는, 그런 내공이 생기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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