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종을 앞두고 물어야 할 몇가지 질문들
(이 글은 이전에 쓴 '우리 정부 백신 도입 시기, 너무 늦었나?'의 후속편입니다.)
우리나라는 2월 말부터 순차적으로 코로나19 백신을 도입합니다. 접종 준비를 위해 정부는 1월 8일 '코로나19 예방접종 대응 추진단'을 출범했습니다. 추진단은 자원 도입과 접종을 총괄할 뿐 아니라 접종 인력 교육, 홍보, 피해보상 등을 담당합니다(링크 참고). 이와 별개로 식약처에선 도입 백신의 승인 절차를 진행 중입니다.
추진단 출범 이전부터 이미 접종 인프라 구축, 백신 배분 계획 수립, 접종 인력 모집 및 교육 등 여러 가지 준비가 진행되고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짧은 기간에 난이도 높은 백신 접종을 위해 여러 분들이 노력해주고 계셔서 감사한 마음입니다.
하지만 미흡해 보이는 부분이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또한 실제 접종을 받아야 할 시민들에게 필요한 정보가 잘 전달되지 않고 있다는 느낌이 강합니다. 온나라가 “질 좋은 백신 더 빨리 더 많이”, “백신추정주사 마루타” 같은 통탄할 구호에 정신이 팔려서 정작 긴급한 논의들은 뒷전으로 밀렸다고 생각합니다. 바쁜 시간을 쪼개어 급하게 이 글을 적는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크게 세 가지 꼭지로 이야기해보겠습니다.
1) 구체적인 접종 계획은 언제 나오나?
백신 도입이 두 달도 채 안 남은 상황에 아직도 구체적인 접종계획이 없습니다. 질병관리청은 지난해 말 “의료기관 종사자, 집단시설 생활자, 65세 이상, 성인 만성 질환자, 교육/보육시설 종사자, 경찰/소방 공무원/군인 등”을 우선 접종대상자로 분류한다고만 언급하고 실제 대상자 집단 별 인원과 접종 시기는 아직 확정 짓지 않았습니다. 이달 중으로 상세 접종 순서 및 인원을 발표할 계획이라고 하지만 늦은 감이 있습니다.
이미 접종을 시작한 미국, 영국, 유럽, 이스라엘, 사우디아라비아, 멕시코 등은 접종 이전부터 단계별 도입 물량에 따른 접종 그룹 및 인원이 상세히 발표되어 있었습니다. 대만, 뉴질랜드, 호주, 브라질 등 곧 접종이 시작되는 나라에서도 역시 우선순위를 정해놓고 언제까지 얼마나 접종할 수 있는지 공개해 놓았습니다.
실제 도입 물량은 생산 문제로 계획과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우선순위를 미리 정해놓는 과정은 접종 시 혼란을 줄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합니다. 요양시설 입소자 및 의료기관 종사자, 고령층, (부작용 위험이 없는) 기저질환자 등은 비교적 우선순위가 명확하여 논란의 여지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 다음엔 누가 먼저 맞아야 할까요?
전파의 위험이 높은 그룹과 실제 감염 시 위험이 높은 그룹 사이의 우선순위를 정해야 합니다. 집단감염으로 문제가 된 동부구치소 등 교정시설, 치료감호소, 군대, 비고령층 집단시설 등이 다음 후보입니다. 여기에 실제 감염 시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없는 사람들, 예컨대 주거환경이 열악한 미등록이주민(‘불법체류자’)이나 저소득층, 노숙자 등 무연고자도 접종 우선순위 대상자가 될 수 있습니다. 캐나다, 뉴질랜드와 브라질은 (소수민족이 된) 원주민 또는 이주민의 우선순위가 높은 반면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인을 접종 대상에서 제외하였습니다.
여기서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구치소에 있는 사람들이 일반 시민들보다 먼저 맞는 것을 사회가 허용할 것인가?', '이주민을 내국인보다 먼저 접종하는 데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은 없을까?' 등의 질문이 듭니다. ‘백신추정주사’ 등 백신 안전성에 대한 의심은 또 다른 종류의 문제점을 발생시킬 수 있습니다. “군대에 있는 우리 아이에게 강제로 백신을 맞춘 대요. 문제 있는 것 아닌가요?” 이런 질문을 본 적도 있습니다.
이에 더하여 접종 대상자가 받는 백신의 ‘종류’도 심각한 사회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너무나 안타깝게도 백신 사이에 계급이 생긴 것 같습니다. 싼 백신-비싼 백신, 찜찜한 백신-질 좋은 백신, 좌파백신-우파백신 이런 소모적인 논쟁으로 인해 실제 접종 현장에서 혼란이 가중될 것입니다. 왜 골라서 못 맞냐, 왜 누군 좋은 백신 맞고 누군 나쁜 백신 맞냐, ‘백신 사회주의’ 아니냐, 이런 논쟁들을 예상하면 제가 과한 것일까요?
백신 배분은 철저히 의학의 관점에서 연령별, 집단별 효과와 안전을 따져 이뤄짐을 명확히 하고, 우리가 도입한 모든 백신이 안전하고 효과적임을 지속적으로 강조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더이상 백신의 신뢰성을 훼손하는 시도는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정치인과 언론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합니다.
구체적인 접종 계획이 조속히 발표되어야 접종 전에 우선순위 및 접종 백신 종류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 혼란을 피할 수 있습니다. 이는 접종률을 높이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2) 정부는 백신 접종을 장려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
여러 전문가들이 백신 확보보다 중요한 것은 백신 접종(vaccination)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현재 우리 정부가 백신 접종률을 높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불분명합니다. 앞서 말했듯 오히려 백신의 신뢰성을 깎아내리는 발언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고, 실제로 접종 의향도 떨어졌다는 결과가 있어서 우려가 됩니다.
많은 전문가 분들께서 노력하고 계시니 우선 신뢰할 수 있는 목소리가 더 많이 들리게 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겠습니다. 우리가 도입하는 백신 중 임상결과가 안 나온 얀센을 제외하고는 모두 안전하고 효과적임이 어느 정도 보장되었습니다. 접종을 진행하고 있는 국가에서 발생하는 부작용도 예상했던 범위 내인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백신 접종의 이득이 그 비용을 훨씬 상회합니다. 날이 갈수록 나와 이웃에 가중되는 팬데믹의 고통을 끝내기 위해선 백신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지난 독감백신 때의 혼란상에서 보듯 서사는 과학적 근거를 압도합니다. 백신을 맞고 쓰러지는 간호사의 영상, 백신을 맞고 부풀어 오른 접종자의 얼굴 사진, 선후관계만 있지 인과관계는 불분명한 접종 후 사망 보도 등은 접종에 대한 거부감을 증폭시킵니다. 자극적인 내용이 경쟁적으로 보도/전파되는 것을 지양할 필요가 있지만 이는 쉽게 통제할 수 없는 요인입니다. 정부와 정치권도 도입 백신의 안전성에 대해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였으므로 누굴 탓할 자격은 없습니다.
그래서 또 다른 서사가 필요합니다. 누군가는 ‘쇼’ 정도로 치부할 수 있지만,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이나 파우치 박사, 이스라엘 네타냐후 총리, 싱가포르 리셴룽 총리 등 정치인 혹은 유명인들이 우선 접종하는 방식도 어느 정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크리스마스 점퍼를 입고 접종을 받은 영국의 최초 접종자 등의 이벤트들도 생각해볼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유인구조 설계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강제로 백신을 맞게 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개인이 자발적으로 접종을 선택하게 하되 접종의 외부효과(나의 접종이 타인 및 사회 전체에 미치는 이득)를 고려하여 인센티브를 제공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컨대 유럽에서 논의 중인 코로나 통행권이나 백신 여권 등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혹은 백신 접종 거부자의 이동 범위를 제한하는 등의 부정적인 인센티브를 도입할 수도 있습니다. 백신 관련 잘못된 정보를 통제할 수 있는 방안도 고려해볼 만합니다.
물론 각각의 방법에는 치명적인 부작용이 있을 수 있으므로 신중한 논의가 필요합니다. 다만 한발 앞선 논의 자체로 혼란을 줄이고 접종률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예방접종계획이 투명하게 공개되면 관련 논의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3) 애초 대응이 소극적이지 않았나?
사실 1), 2)의 문제는 정부의 소극적 대응의 필연적인 결과입니다. 이전 포스팅에서 저는 우리 정부의 백신 확보 및 접종 시기가 늦지 않았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하지만 이는 정부가 직면한 제약 하에 합리적인 선택을 했다는 의미이지 실제로 가장 이상적인 결과라는 뜻은 아닙니다.
백신 개발에는 막대한 비용이 따릅니다. 지금이야 예상보다 빠른 시기에 예상보다 높은 효능을 보이는 복수의 백신이 개발되어 쉽게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 개발이 시작되던 시기 이렇게 빨리 백신이 나올 것이라 예상한 전문가는 드물었습니다. 1차적으론 과학의 승리이고, 2차적으론 전 세계 정부 및 다국적 기업이 총력을 다해 지원한 협력과 연대의 승리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승리에 얼마나 지분이 있을까요?
선구매 계약은 우리가 쓸 백신을 미리 산다는 의미도 있지만 결과가 불투명한 백신 후보 물질에 투자하여 개발에 기여한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어느 백신이 성공할지 모르기 때문에 투자가 실패할 위험이 따릅니다. 실패할 경우를 대비해 포트폴리오를 다양하게 하면 그에 따른 비용도 늘어납니다.
실제로 미국, 영국, 유럽, 호주, 일본 다 미리부터 다양한 백신과의 선구매계약을 추진했습니다. 예산도 어마어마하게 쏟아부었습니다. 미국은 약 11조 원, 영국 17조 원, 일본 8조 원, 호주 1조 원의 예산을 백신 조달에 편성하였습니다. 또한 아세안 국가 최초로 화이자 백신을 구매한 말레이시아가 약 8000억 원, 싱가포르도 8000억 원, 멕시코도 약 2조 원을 백신 구매에 사용하였습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지난 9월 백신 예산 1700억 원을 편성한 데 그쳤고 11월 몇 개 후보의 3상 임상 결과가 발표된 후에야 부랴부랴 올해 예산에 1조 3000억 원을 편성했습니다. 물론 가을까지 상황이 나쁘지 않았기 때문에 임상 결과를 보고 계약을 진행한다는 합리적인 계산이 있었습니다. 무리하게 예산을 편성해 선구매 계약을 걸었다가 하나라도 실패할 경우 그에 대한 책임과 비난이 뒤따르기 때문에 섣불리 나서기도 어려웠습니다. 결과적으로 안전성이 어느 정도 보장된 백신 위주로 구매하여 예산을 아꼈고 뒤늦었지만 발 빠른 대처로 도입 시기도 아주 늦지는 않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거기까지입니다. 국내 백신 개발에 일부 예산을 편성했을 뿐 다국적 제약회사의 백신 개발에 대한 기여는 거의 없었습니다. CEPI를 통한 지원이 조금 있었는데 그 역시 소소한 수준에 그쳤고, 선진국의 사재기를 우려하면서 정작 우리는 코백스 프로그램에 100억 원 정도를 기부하는 데 그쳤습니다(cf. 영국 8000억 원, 캐나다 2100억 원, EU, 독일, 프랑스, 일본 등 각 1500억 원 기부).
담당자에게 면책 특권과 폭넓은 재량권을 부여함으로써 더 적극적이고 유연한 백신 예산 사용이 가능했다면, 세계 백신 개발에 우리 기여분이 올라갔을 뿐 아니라 미리부터 필요한 백신을 확보해놓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랬다면 불필요한 논란을 줄이고 접종 준비를 더 일찍 시작할 수 있었을 것이란 아쉬움이 남습니다. 물론 이는 예산 편성 여력에 더하여, 실패에 따른 낭비를 감수하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앞서 언급했듯 우리 정부는 당면한 제반 여건 하에 최선을 다해왔고 지금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연구자로서 정부가 합리적인 선택을 해왔고 그 결과도 나쁘지 않다고 평가합니다.
하지만 ‘좋은 정부’는 단지 주어진 제약 하에 최적의 선택을 할 뿐 아니라 그 제약 자체를 걷어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산 편성 및 지출의 경직성, 적대적인 여론, 백신 공급 물량 부족 등등 모든 악조건을 극복하고 최선의 결과를 보여달라고 요구하는 것 역시 시민들의 권리입니다. 대통령이 모더나 CEO와 직접 통화하여 확보 물량을 늘리고 공급시기를 앞당긴 것도 시민들의 요구와 정부의 노력이 조화를 이루어 만든 긍정적인 결과의 예가 아닌가 싶습니다.
백신 접종 뿐 아니라 유행 통제 자체에도 곳곳에 어려움이 발견되는 이때, 정부가 수많은 시민들의 요구를 종합하여 최선의 정책을 만들어 내기를 바랍니다. 거기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자는 마음으로 일반 시민으로서 몇 자 적어봤습니다. 이외에도 답해야 할 수많은 질문을 일일이 챙기고 계신 관계자 및 전문가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마음을 표합니다.
덧. 이 글은 직업 특성상 해외사례를 두루 본 한 연구자의 개인 의견이며, 예방의학 및 역학 전공자 분들의 의견을 보조하는 참고사항 정도로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신뢰할 만한 정보는 질병관리청에서 나온다는 점도 기억해주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