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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Apr 30. 2021

국민의 신뢰 얻기 위한, 유럽 국가들의 ‘잠시 멈춤’

유럽 AZ 백신 접종 중단 관련 기고

시사IN에 AZ 백신 접종 초기 논란에 대한 제 생각을 기고하였습니다. 현재 유럽의 백신 접종 및 감염 현황, 논란 상황, 그리고 유럽이 접종을 중단한 배경과 접종 주저 현상의 이유, 그리고 우리나라가 참고할 점을 담았습니다. 관심있는 분들의 일독을 권합니다. 


원문 링크: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4399





영국을 포함한 대부분의 유럽 국가는 코로나19로 극심한 피해를 입었다. 4월11일 기준, 인구 대비 코로나19 사망자가 가장 많이 나온 10개 나라가 모두 유럽에 속해 있다(인구 100만명 이하 제외). 체코, 헝가리, 슬로베니아 등 동유럽 국가의 피해가 유독 컸고 영국, 이탈리아, 프랑스 등 전통의 ‘선진국’들도 새로운 바이러스 앞에 맥을 못 추었다.


올봄 들어 그나마 반전을 이뤄낸 곳이 영국이다. 장기간의 봉쇄 조치에 더해 백신의 빠른 개발·확보·접종을 통해 유행병을 잡아가고 있다. 특히 하루 사망자 수가 50명 이하로 떨어졌는데, 유행의 절정기 당시에 하루 1500명 넘게 사망자가 발생했던 것에 비하면 엄청난 개선이다. 반면 다른 유럽 국가들은 여전히 위태위태하다. 봄철 환절기를 지나며 다시 급증한 감염 사례 때문에 곳곳에서 통제 강도를 높이고 있다. 프랑스,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벨기에, 포르투갈, 네덜란드 등이 전면 봉쇄(lockdown)를 포함한 거리두기 조치를 재도입하거나 연장했다.


아래 〈그림 1〉과 〈그림 2〉를 보면 영국과 유럽연합(EU) 27개국 사이의 차이가 선명히 나타난다. 영국에서 확진자와 사망자 추이가 모두 꾸준한 하향세를 보이는 데 비해 EU 국가에서는 3월부터 다시 상승세를 보인다.


현재 영국과 EU의 차이는 상당 부분 백신 접종률로 설명이 가능하다. 4월12일 기준 영국은 전 국민의 50% 가까운 인원이 한 번 이상 백신을 맞은 반면 EU 회원국 대부분은 1차 접종률이 20%에 못 미친다. EU 국가들의 접종 속도가 더딘 가장 큰 이유는 ‘공급 부족’이다. 화이자-바이오엔테크 백신(이하 화이자 백신)은 생산공장 증설 전까지 공급 물량이 달리고, 옥스퍼드-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이하 AZ 백신) 역시 생산 문제로 1분기 계약 물량의 절반도 못 받았다. 수급 문제로 아스트라제네카사와 EU 사이 신경전이 오가고 회원국 내 생산 물량의 해외 반출을 제한하는 등 백신을 제때 조달하기 위한 노력이 치열하다.




보건 당국은 멈출 필요가 있었다


이에 더해 EU 국가들에서는 백신의 효과와 안전성을 둘러싼 논란이 거세지며 접종 진행이 더 늦어졌다. 화이자도 초기 접종 후 사망에 대한 혼란이 있었는데 의문은 주로 AZ 백신에 제기되었다. EU 회원국의 의약품 규제를 총괄하는 유럽의약품청(EMA)은 모든 연령대에 대해 AZ 백신의 접종을 허가한 바 있다. 그러나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의 보건 당국은 고령층 대상 유효성 자료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65세 미만에게만 사용을 권고했다. 이후 영국에서 AZ 백신 접종 후 모든 연령층에서 감염 및 입원이 감소했다는 결과가 발표되자 다른 유럽 국가들도 고령층 접종을 시작했다.


조금 잠잠해지나 싶더니 3월 중순쯤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오스트리아, 독일, 노르웨이 등지에서 AZ 접종자 대상 혈전 관련 이상반응이 잇따라 보고되면서 또 한 차례 접종 중단 사태를 맞은 것이다. EMA는 정밀 조사를 거쳐 뇌정맥동 혈전증 등 혈소판 감소를 동반한 희귀 혈전증을 AZ 접종의 (매우 드문) 부작용 목록에 포함했다. EMA는 ‘여전히 백신접종의 이익이 위험을 상회한다’며 해당 이상반응에 주의할 것을 전제로 접종 속개를 권고했다. 그러나 독일, 프랑스 등 상당수 국가에서는 55~65세 이상에 대해서만 AZ 백신을 접종하기로 결정했다.


일련의 논란은 그 자체로 백신에 대한 수용성을 깎아먹었다. 접종 중단 사태 직후 여론조사기관 유고브(YouGov)가 시행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유럽 주요국에서 AZ 백신을 신뢰한다는 응답이 절반 아래로 떨어졌다(54쪽 〈그림 3〉 참조). 독일은 응답자의 32%, 프랑스는 23%만 ‘AZ 백신이 안전하다’고 답했다. 2월 조사에 비해 10%포인트 넘게 하락한 수치다. 이탈리아와 스페인에서도 비슷한 수준의 신뢰도 감소가 관측됐다. 같은 기간 화이자 백신에 대한 신뢰도가 상승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접종을 중단하지 않은 영국에서는 ‘AZ 백신이 안전하다’고 답한 사람의 비중(77%)이 화이자 백신(79%)과 별 차이가 없었다.




영미권은 물론 한국 전문가와 언론들도 EU 국가들의 AZ 백신 접종 중단 결정을 강도 높게 비난했다. EU 국가들이 EMA와 세계보건기구(WHO)의 권고를 무시하고 ‘아주 낮은 위험’을 과대평가했으며 그 결과 오히려 백신 수용성을 낮추는 역효과를 낳았다는 비판이다. 일부 평론가들은 EU 국가 정부들이 과학적 근거 없이 감정적이고 정치적인 동기에서 무책임한 결정을 내렸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유럽 정부의 AZ 백신 접종 중단은 유행이 다시 시작되는 절박한 위기 순간에, 어쩌면 살릴 수 있을 생명을 담보로 내린 위험한 결정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EU 국가의 결정을 이렇게 간단히 평가하기엔 상황이 복잡하다. 우선 포착된 위험의 크기가 초기 전문가들의 예상과 달리 무시할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혈전으로 인한 접종 중단 후 EMA, WHO, 영국의약품규제청, 아스트라제네카 본사의 논평은 모두 “AZ 접종자 중 발생한 혈전증의 빈도가 자연발생률보다 높지 않다”였다. 그러나 정밀 조사 결과, 아주 드물지만 실제 백신에 의해 야기됐을 가능성이 있는, 종종 치명적이기도 한 질환이 발견되었다. 참여자가 수만 명 단위인 임상시험에서는 10만~100만명 중 한두 명 발견되는 희귀 부작용을 발견하지 못했을 수 있다. 또한 주로 고령층 대상으로 접종이 진행된 영국 등에서는 젊은 층에 더 빈번히 발생하는 해당 부작용에 주목하지 않았다. 새로운 이상 사례는 65세 미만부터 접종을 시작한 나라에서 먼저 대두되었고, 각국 보건 당국은 이를 면밀히 조사할 의무가 있었다.


위험을 포착한 EU 주요국 정부들은 어려운 선택에 직면했다. 당면한 코로나19 위기 해결이 급박하니 일단 접종을 진행하면서 위험을 살필 것인가, 아니면 작은 위험이라도 무시하지 않고 명확한 결론이 나올 때까지 접종을 멈출 것인가. 몇몇 정부들은 여기에서 ‘예방 원칙(precautionary principle)’을 따르기로 결정했다. 잠재적 위험의 심각성과 불확실성이 큰 경우엔, 과학적 증거가 분명해질 때까지 시행을 중단하는 게 유럽에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예방 원칙의 개념이다. 드문 혈전 질환이 치명적인 결과로까지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보건 당국은 접종을 멈출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후 면밀한 조사를 통해 잠재 위험을 발견함으로써 의료진과 접종 대상자가 더 잘 대처할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과연 접종 중단이 전체 ‘백시네이션(대규모 예방접종)’ 관점에서 불리하기만 한지도 따져봐야 한다. 유럽은 전통적으로 다른 지역에 비해 백신접종 의향이 낮은 지역에 속해왔다. ‘백신접종 주저(vaccine hesitancy)’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그 이유로 ‘순전(純全·purity)’ ‘자유(liberty)’ ‘안전(safety)’ 세 가지를 꼽는다. 이 중 ‘순전’과 ‘자유’는 주로 문화적·종교적·정치적 선호와 연관된다. 자연 그대로의 상태를 선호하는 사람들은 인공의 약물을 몸에 주입하는 데 거부감을 느낀다(‘순전’). 이런 거부감이 자연요법이나 동종요법 등 대체의학이 인기를 얻는 경향과 결합하여 백신접종 주저가 증가했다. 이에 더해 정부가 약물을 통해 개인의 건강에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믿음 역시 백신에 대한 수용성을 낮추었다. 팬데믹 통제를 위해 백신접종을 강요하는 사회 분위기를 개인의 자유에 대한 침해로 느끼는 사람들이 접종을 기피한다. 또한 개인주의적이고 자유주의적인 경향이 강한 유럽인들은 ‘집단면역’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위해 백신을 접종하겠다는 의향이 그리 높지 않다.


이에 백신의 ‘안전’에 대한 우려가 역사적 경험을 통해 증폭되었다. 유럽에서도 특히 접종 의향이 떨어지는 프랑스 같은 경우, 1990년대 초 공격적으로 B형 간염 예방접종을 진행한 이후 다발성경화증이 접종의 부작용으로 지목되면서 논란이 일었다. 프랑스 보건 당국은 명확한 과학적 근거 없이 접종 프로그램을 중단했으나 이후 연구를 통해 해당 부작용이 B형 간염 백신과 연관성이 없다는 것을 밝혀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국의 성급한 결정에 따른 백신에 대한 불신은 오랫동안 치유되지 않았다. 그보다 앞선 1980년대엔 보건 당국이 혈우병 환자 치료에 사용된 혈액이 HIV(인체면역결핍 바이러스)에 오염되었을 가능성을 간과하여 수백 명이 사망한 사건도 있었다. 이 사건으로 보건장관까지 구속되면서 보건 당국에 대한 신뢰가 크게 낮아졌다.



3월29일 프랑스 생캉탱 국립사이클경기장에서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이루어지고 있다.ⓒAP Photo


접종 주저를 극복하는 방법  


이후 유럽에서는 보건 당국의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 매우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다. 접종 주저를 오랜 기간 연구해온 영국 런던 위생열대의학대학원의 하이디 라슨 교수는 “백신에 대한 수용성이 백신의 효과나 안전성보다 정부(또는 보건 당국)에 대한 신뢰에 더 많이 좌우된다”라고 말했다. 이미 접종 주저가 만연한 EU 국가들에서, 만약 보건 당국이 코로나19 백신의 잠재적인 부작용을 인지하고도 적절히 처리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면 지금보다 수용성을 더 많이 떨어뜨렸을 수도 있다. 차라리 정부가 ‘모든 위험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며 이를 관리하겠다’는 굳은 의지를 보여야 시민들에게 긍정적 신호를 줘서 수용성을 높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독일의 한 조사에선 접종 중단 결정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사람이 반을 넘기도 했다. 지금 당장 논란이 일더라도 보건 당국에 대한 신뢰를 유지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유리한 선택이다. 혹시 AZ 백신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게 되더라도 AZ 접종이 유럽의 유일한 선택지는 아니며, 팬데믹이 이번으로 끝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AZ 백신에 대한 논란은 한국에도 영향을 미쳤다. EMA가 희귀 혈전증의 연관성을 인정할 즈음 우리 보건 당국도 60세 미만 AZ 백신 접종을 보류했다가, 이후 이익-위험 평가를 통해 30세 이상 대상자에게 접종을 재개하기로 결정했다.


주로 젊은 접종자 사이에서 드물게 발견되는 혈전 이상반응은 분명 주의해서 지켜봐야 한다. 하지만 AZ 백신 자체의 효용성을 사라지게 할 만큼 중대한 문제는 아니다. 한국의 AZ 백신 주 접종 대상인 65세 이상 인구에겐 이런 문제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혹시 발생해도 조기에 발견하면 얼마든지 치료할 수 있으며, 접종을 받아야 감염 위험에서 보호받을 수 있으므로 AZ 백신 접종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견해다. 유럽에서 이 문제를 공론화한 덕분에 우리 질병관리청도 해당 부작용에 대해 더 철저히 대비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은 백신의 공급이 문제지만 생산이 곧 궤도에 오르면 ‘접종 주저’가 문제될 것이다. 특히 코로나19 감염 시 위험이 낮은 젊은 층일수록 백신을 맞을 유인이 떨어진다. 아무리 과학적으로 검증된 백신이라 하더라도 꽤 높은 빈도로 발생하는 경증 부작용과 아주 낮은 확률이지만 치명적일 수 있는 중증 부작용은 접종을 주저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백신접종의 사회경제적 이득은 지대하다. 더 많은 사람이 백신을 맞을수록 유행의 통제가 더 빨라질 것이다. 그리운 사람들의 얼굴을 보는 날도, 마스크 없이 마음껏 공기를 마시는 날도, 아이들이 걱정 없이 공교육의 혜택을 누리는 날도, 자영업자들이 눈치 보지 않고 영업할 수 있는 날도 금방 다가올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접종 주저를 극복하고 면역을 통해 자신과 타인을 보호할 수 있을까.


쉬운 길은 위험에 대한 정보를 감추고 (때때로 강압적인) 각종 유인책을 통해 접종률을 끌어올리는 것이지만, 한국 사회가 지향하는 가치가 그 정도 수준에 머물지는 않을 것이다. 모두가 함께 참여하는 민주적인 접종 독려가 필요하다. 부작용에 관한 정보를 충실히 공개하고, 그에 대한 우려에 충분히 공감하고, 정보 접근성이 떨어지는 사람을 배려하며, 위험을 어떻게 관리할지 대안을 제시하고, 적절한 보상을 제공하는 식의 접근이 필요하다. 이렇게 해서 백신접종이 조금 늦어진다 해도, 민주적인 접종 독려가 장기적으로 한국 사회를 위해 더욱 유익한 길이다. 유럽 국가들이 ‘잠시 멈춤’을 통해 무엇보다 중요한 신뢰를 얻으려 했다는 점을, 한국의 시민과 정부도 성찰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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