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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Apr 16. 2021

백신 접종: 해외 사례 비교 시 주의할 점

각 국가의 특수한 맥락을 살펴야 정확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0. 해외 사례가 언론에 맥락 없이 소개되는 부분은 늘 걱정거리입니다. 백신의 안전성과 효과를 과장하거나 축소하고, 감염 상황, 생산 물량, 수급 여건, 백신 종류를 고려하지 않고 줄 세우기 식으로 백신 접종률을 비교하며, 우리나라 상황을 살피지 않고 해외에서 일어나는 단편적인 사건을 좋다/나쁘다 이분법으로 평가합니다. 언론과 여론이 상호작용하여 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현실을 감안하면 부정확한 해외 사례 인용으로 인해 우리 정책이 흔들리는 패착이 나오지 않을까 염려됩니다. 그런 우려를 바탕으로, 발표를 준비하면서 정리한 자료 몇가지 공유합니다.




1. 백신 접종률과 감염 규모 간의 관계


백신 접종 비율과 감염규모 간의 관계. 왼쪽은 세계 127개 국 포함, 오른쪽은 인구대비 확진자 0.5% 미만만 포함.


현재 우리나라에선 140만 명가량이 1차 접종을 완료하여 현재 인구 대비 백신 접종률 2.5%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접종률만 따지면 세계에서 110위 권 정도입니다(총 접종자 수로 따지면 40위 권입니다).


이 수치를 조금 더 정확히 이해하려면 감염 규모와 비교하여 따져봐야 합니다. 감염 상황이 심각한 국가일수록 백신 접종을 서두를 유인이 크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한 명 이상 접종을 받은 전 세계 127개국의 데이터를 보면 확진자 수와 백신 접종률 간의 상관관계가 명확히 나타납니다(왼쪽 그림). 인구 당 확진자가 많을수록 1차 이상 접종 비율이 높고, 이스라엘, 영국, 미국 등이 눈에 띕니다.


감염 규모가 작은 나라일수록 접종률이 떨어지는 경향이 명확히 보입니다. 전체 그림에는 잘 안 보여서 인구 대비 확진자 0.5퍼센트 미만인 나라들만 따로 모아서 봤습니다(오른쪽 그림). 확진자가 거의 없는 대만, 베트남은 접종도 거의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대표적인 방역 성공 국가 뉴질랜드, 호주, 태국도 백신 접종률이 낮습니다. 일본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나라는 이 나라들보다는 접종이 좀 더 많이 이뤄진 편이지만, 지금 상황에서 큰 의미는 없습니다.


(주. 이 중에선 캄보디아가 유독 높은데 중국과 인도의 전략적인 백신 외교 덕으로 시노백과 SII의 백신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KIEP 보고서 [인도와 중국의 코로나19 백신 개발 및 외교 동향과 시사점] 참고.)


몇번이나 반복해서 말했지만, 감염 규모가 작으니 백신 접종이 늦어도 상관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가 감염을 통제하기 위해 얼마나 큰 희생은 치러왔는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다만 수요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백신 공급을 둘러싸고 세계 각국의쟁탈전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에, 더 급한 나라가 더 많은 노력을 투입하는 건 피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EU가 수출 제한을 한다면서도 유일하게 막은 물량이 호주로 가는 AZ 백신이었습니다. 호주는 감염 상황을 통제하고 있다는 이유에서였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노력을 다해 백신 접종률을 끌어올릴 필요가 있지만, 현실은 현실로 인정하고 장기적인 전략을 요구하는 지혜도 필요한 시점입니다.




2. 백신 맞고 일상을 회복?


그런데 그렇게 백신을 맞으면 과연 빠른 시일 내에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언론을 통해 백신을 많이 맞은 몇몇 나라가 일상을 회복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집니다. 조선일보는 영국의 공원 사진을 보며 "부럽다"라고 말했고 중앙일보는 이스라엘 현지 상황을 전하며 "백신의 축복"이라는 말을 썼더군요.


접종률이 제일 높은 축에 속하는 이스라엘(57%), 영국(49%)과 미국(38%)의 감염 확산 정도를 한국과 비교해봤습니다(아래 그림). 이 세 나라는 모두 12월 중 백신 접종을 시작했는데, 그 직후 감염자와 사망자가 급증하는 경험을 했습니다. 이후 서서히 확진자 규모가 줄지만 같은 기간 락다운 등의 조치가 있었던 점, 이미 감염 후 회복한 사람 규모가 크다는 점도 확산 통제에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온전히 백신의 영향으로만 보기 어렵습니다. 


(왼쪽) 인구 100만 명당 확진자 규모, (오른쪽) 인구 100만 명당 사망자 규모: 12월 1일~4월 15일


접종률이 50% 가까이 되어야 백신의 효과가 분명해집니다. 이스라엘과 영국은 감염자 수가 급감했고, 특히 사망자 수는 유행 피크에 비하면 정말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습니다. 미국의 경우 확진자 수가 다시 증가하는 편이지만 사망자 수는 크게 늘지 않습니다. 고령층 상당수가 접종을 마쳤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현재 접종률 30%를 넘은 다른 나라들을 보면 역시나 유행 통제가 어려운 상황입니다(아래 그림). 바레인(39%), 칠레(39.8%), 헝가리(31.6%), UAE(50% 이상) 등의 7일 평균 확진자 수, 사망자 수가 모두 한국보다 높고, 특히 바레인, 칠레, 헝가리는 지난 유행보다 더 많은 확진자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칠레와 바레인의 사망자 수가 급증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역시 백신 접종과 감염 후 회복으로 인한 면역 획득 인구가 많아져서인 것으로 보입니다.


접종률 30% 이상 7개 국가와 한국 비교. 왼쪽은 최근 7일 간 100만 명 당 확진자 평균, 오른쪽은 사망자 평균



하지만 이 효과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같이 갈 때 극대화됩니다. 백신 접종이 일부 진행됐다고 성급하게 조치를 걷어내면 오히려 감염과 사망이 급증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만 봐도 엄격한 추적 격리와 자발적 거리두기로 백신을 맞는 나라보다 더 잘 유행을 통제하고 있습니다. "빨리 맞고 빨리 마스크 벗자"라는 태도가 위험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겠습니다.




3. "우리도 화이자 갖고 와라"의 문제점


마지막으로 백신 수급 문제입니다. AZ백신에 이어 얀센까지 희귀부작용 발생으로 혼란이 일자 우리나라도 '더 안전한' 화이자, 모더나 백신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는 것 같습니다. 이에 더해 EU가 내후년에 쓸 화이자 물량까지 챙겨놓고, 미국이 mRNA 백신을 자국에서 먼저 소모하겠다고 공언하며 더 불안이 커졌습니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요구는 생산적이지 않을 뿐 아니라 유행 통제에도 안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란 우려가 듭니다.


첫째, AZ 백신은 여전히 안전하고 효과적입니다. 드문 부작용은 분명 주의를 기울여야 하지만, 관리 가능한 것으로 보이고 접종의 이득을 생각할 때 감수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 특히나 고령층에선 접종의 (개인적인) 이득이 드문 부작용의 위험보다 더 큽니다. 유럽에서도 몇몇 나라를 제외하곤 AZ 백신의 고령층 접종을 계속 진행 중이고, 보도에 따르면 오늘 독일 메르켈 총리(66세)도 AZ백신을 맞을 예정이라고 합니다.


백신 접종의 첫 번째 목적이 중증 및 사망 예방임을 생각하면, AZ 백신을 통한 고령층 보호는 꼭 필요한 일입니다. 지금 해야 할 일은 위험의 정확한 평가를 통해 두려움을 극복하고 접종을 계속하는 것입니다. AZ 못 믿겠으니 화이자 가지고 오라고 소리높이는 건 불안만 증폭시키지 실제 유행 통제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행동으로 보입니다. 크고 작은 부작용은 화이자 백신에서도 발생합니다.


둘째, 백신 민족주의의 가속화로 인해 더 큰 피해를 입을 수 있습니다. 유럽과 미국이 자국우선주의에 몰두하여 더 많은 백신을 당겨 쓰는 것이 환호를 받을만한 일인지 전 잘 모르겠습니다. 고소득국가에서 더 많은 백신을 차지할수록 중저소득국가의 몫은 줄어들고 전 세계적인 유행 통제는 더 늦춰집니다. 보건 상의 피해도 지대하겠지만, 상품-서비스-자본-노동의 촘촘한 가치사슬로 서로 연결된 경제 역시 회복이 더뎌집니다.


물론 제가 모든 백신을 공평히 나누자고 말할 정도로 순진하진 않습니다. 각국 정부가 인도주의적 가치를 위해 자국의 이익을 포기하는 게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핵심은 생산입니다. 제약회사들이 더 많은 생산을 할 수 있게 지원해주는 것이 지금 가장 필요한 일입니다. 우리나라 기업이 생산 및 개발에 기여할 수 있으면 더 좋습니다. 정부가 미숙한 커뮤니케이션으로 논란을 자초한 부분이 있지만 현재 생산에 초점을 맞추어 대책을 마련하는 모습은 높이 평가할 만합니다. 이어 WTO의 무역 관련 지적재산권(TRIPS) 협정 적용 유예 논의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전 세계적으로 생산량을 늘리는 방향을 찾아야 합니다(KIEP 보고서 [WTO 협상의 최근 동향과 전망] 참고. 관련하여 다양한 논의가 있지만 여기선 생략).


현재 계약한 물량을 조기에 받을 수 있게 노력하는 것까진 좋지만, 이미 가지고 있는 백신을 무용지물로 만드는 것과 자국우선주의의 이전투구에 무분별하게 뛰어드는 것은 각별히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4. 나가며


여러차례 얘기했듯 접종을 둘러싼 초기 혼란과 수급 문제는 이미 예상된 문제였습니다. 유행을 (비교적) 성공적으로 통제하는 국가일수록 백신 접종이 늦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 역시 계속 언급해왔습니다. 상황이 단기간에 달라지지 않는 게 자명하다면, 조금 더 장기적인 호흡으로 지금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확진자 수가 급증하지 않도록 긴장을 유지하되 일부가 너무 큰 짐을 지지 않도록 방역 대책을 조율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악의 상황이 일어날 것을 대비해 의료체계를 지속 보강해야 합니다.


해외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그 사회의 상황과 맥락이 반영된 결과입니다. 성급하게 평가하기보다 자세히 분석해야 하고, 입맛에 맞게 가져다 쓰기보다 우리 상황에 얻을 수 있는 교훈이 뭐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물론 제 생각이 다 맞다는 건 아닙니다. 피드백은 늘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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