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저의 오랜 고민과 개인적인 고백을 담은 글입니다. 제가 종종 쓰는, 부끄러움을 털어내기 위한 그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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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한국은 불평등, 불공정의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분노에 찬 글들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하지만 나는 화가 나지 않는다. 지난 국정농단 때와 같은 좌절과 분노, 실망 등의 감정이 일지 않는다. 왜 일까, 고민이다.
우선 제기된 의혹들은 철저히 규명할 문제이지 아직 확정할 단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위법, 탈법 행위의 명백한 증거는 내 판단에 아직은 없다. 예를 들어 후보자가 가족 관련 각종 특혜를 얻기 위해 청탁을 했다는 자백이나, 주위 사람의 증언, 통화내역, 현금흐름 등직접 증거는 전혀 제시된 것이 없는 것으로 안다 (국정농단 때와 다른 이유). 그저 사람이면 당연히 그랬을 거라는 느슨한 개연성만 가지고 화를 내기엔내가 좀 더 신중한 편인 듯하다.
하지만 명백히 드러난 사실만 가지고도 분노할 근거는 있다. 특히 기득권층의 지위를 통해 받은 딸의 교육, 입시 관련 특혜는 위법, 편법 여부와 상관없이 그 자체로 큰 문제이다. 이는 한국 사회의 불균형이 얼마나 심각한지 여실히 보여준다. 조국 후보자가 그간 보여온 진보적인 발언, 활동과 비교했을 때 표리부동하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래서 대학생들, 학부모들의 좌절과 분노도 어느 정도 이해는 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자신은 별로 화가 나지 않는다. 애초에 내가 문재인 정부를 진보로 보지 않는점도 한 몫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나에게 이런 불균형이 그리 새로운 일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고백하건대 나는 오히려 그 기득권층의 일부였다.
부모님은 나와 누나의 교육을 위해 강남에 아파트를 얻으셨다. 내가 중학교 졸업할 때 즈음 아버지가 대기업의 임원이 되시면서집에 금전적인 어려움은 없어졌던 것 같다. 부모님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방학 때마다 대치동서 학원도 다니고 과외도 종종 받았다. 덕분에 대학도 어렵지 않게 들어갔다. 대학시절 등록금이나 생활비 걱정도 해본 적 없고 영국 유학까지 다녀왔으니 꽤나 큰 특혜를 누렸다 할 수 있겠다 (결혼 전 첫번째 유학은 부모님 지원으로 다녀옴).
그렇다고 내가 받은 혜택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진 않았다. 나만 편하게 산다는 일종의 부채감 같은 걸 느끼며 내 방식으로 갚아 보려 나름 노력했었다. 대학 시절 서울의 열악한공단지역 관련 책을 읽고 무료 과외를 해주겠답시고 전단지를 붙이고 다니기도 했다. 실제로 형편이 어려운 학생 여럿을 돈 안 받고 가르친 적도 있다. 첫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서는 어릴 적부터 다니던 강남의 대형교회에서 퇴계원의 작은 교회로 옮겨갔다. 그곳에서 몇몇 아이들을 지도하며 서울-지방 간 격차를 새삼 느낄 기회도 있었다.
결혼 후 완전히 독립해서 학비와 생활비를 스스로 마련한 것, 편안한 환경을 포기하고 남아공에 온 것도 내가 그간 받은 혜택을 조금이나마 갚으려는 내 작은 몸부림이었다. 그런데 내가 이런 것들을 온전히 내 힘으로 이뤄냈다고 얘기할 수 있을까?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성실함과 책임감, 삶을 대하는 진지한 태도(a.k.a 문화자본)가 없었다면 유학 생활을 잘 마치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금전적 보상에 얽매이지 않을 수 있는 것도 사실, 내가 그럴만한 환경에 놓여있기 때문이라고 이전 글에서 언급한 적이 있다 (링크). 내 삶은 내가 받은 특혜와 분리해서 이해할 수 없다. 그리고 나는 이 특혜를 적극적으로 거부하며 살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기득권의 수혜자기 때문에 의사표현을 제한받아야 한다는 논리는 아무래도 용납하기 어렵다. 나는 학자의 의무 중 하나가 사회 참여라고 믿는다. 그런데 나는 내 삶의 궤적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주장은 전혀 할 수 없는 것일까? 예컨대 내가 강남에 살았기 때문에 부동산 개혁을 말할 수 없고, 사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교육 개혁을 말할 수 없다는 건 좀 말이 안 되는 것 아닌가? 이런 얘기는 시장에서물건을 산 적이 있는 사람은 자본주의를 비판할 자격이 없다는 말처럼 설득력이 없다. "내로남불"이 잘못 적용되는 지점이 너무 많아 보인다.
오히려 불평등은 언제나 존재하다고 인정하고, 그 불평등의 사다리 위로 올라간 사람이 더 큰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게 더 현실적인 해결책 같다. 입시제도를 어떻게 바꿔도 재력과 정보력이 있는 사람에게 유리할 수밖에 없다. 사교육을 완전히 없앤다고 해도 어릴 때부터 길러 온 학습태도, 독서, 언어능력, 자존감 등은 결코 같아질 수 없다. 또 인위적인 교육평준화는 자율과 경쟁의 장점을 사라지게 한다.
그래서 이 불균형한 구조 위에 혜택을 누린 사람들이 그로 인해 얻은 결과물을 어떻게 나눌지 고민하는 게 더 필요하다. 능력 없으면 니네 부모를 원망하라는 태도는 곤란하다. 복지 확대, 사회안전망 확충, 최저임금 인상, 양질의 공공서비스 제공, 공정거래 확립 등등 계층 간 (결과의) 격차를 줄이는 여러 개혁정책을 사용할 수 있다. 계층 간 격차가 줄어들면 계층 이동에 들이는 막대한 자원낭비도 줄일 수 있고 개개인이 자기가 선택한 삶 안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게 된다. 불균형이 있다는 걸 인정한 상태에서 그 결과를 사회가 고르게 나누는 것이 소위 리버럴들의 정책기조이고 나도 많은 부분 생각을 같이 한다.
정리하자면, 이번에 드러난교육 불평등의 문제는 나에겐 별로 새로울 게 없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이 불균형 속에서, 이 불균형 때문에, 개혁이 계속되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기득권을 가졌다는 사실 자체로 개혁의 자격을 잃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나에겐 기득권으로 얻은 결과를 얼마나 책임감 있게 나누려 하는지가 더 중요한 기준이다. 그렇지 않고는나 역시 학계든 사회에 뭔가를 기여할 수 있는 여지가 없어지기 때문이다.나는 내 배경과 상관없이 계속 더 발전한 사회를 꿈꿀 것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이 글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나에 대한 이야기다.
* 주. 그러나 진짜 심각한 불균형은 따로 있다. 조 후보자 딸은 더 유리한 위치에서 시작했을지언정 어쨌든 다른 사람과 함께 경쟁했다. 애초에 "평민"들과 경쟁할 필요가 없는 부류들이 있다. 건물이나 땅, 사업체, 그리고 교회까지 통째로 물려받을 수 있는 사람들은 고생해서 대학에 가거나 고시를 볼 필요가 없다. 요새 교사 친구들이 심심치 않게 들려주는 이야기다. 학습태도가 안 좋은 애들은 두 부류로 나뉜단다. 형편이 안 좋아서 부모가 신경을 못 써주는 경우, 아니면 굳이 공부할 필요가 없는 경우. 부모가 찾아와서 우리 앤 공부할 필요 없어요 스트레스 주지 마세요라고항의한 적도 있다고... 이게 더 심각한, 그리고 경제에도 득이 안 되는, 불균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