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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Sep 11. 2019

귀를 막고 살 수는 없으니까

확증편향에서 벗어나보기

 오랜만에 도준이 얘기(를 가장한 내 얘기).


 요새 도준이가 말을 조금씩 하기 시작한다. 발음도 제법 정확해지고 두 단어씩 연결해서 말하기도 한다. 오늘 도준이와 외출하려 문을 열었는데 생각보다 날씨가 추웠다. "아 도준아 춥다. 들어와서 옷 입자." 했더니 도준이가 들어오면서 "추워. 입어. 추워. 입어." 한다 (완전 심쿵. 인스타 스토리에 24시간만 공개ㅋ).


 도준이가 말이 빠른 편은 아니다. 22개월 쯤 되면 문장도 말하기 시작한다는데 도준이는 이제 한두 마디씩 따라 하는 수준이다. 계속 해외에 있어서 한국어를 접하는 통로가 부모 둘 밖에 없으니 말이 느린 게 당연하다. 한국 사람이 많이 없는 곳에 살아서 아쉬운 점 중 하나이다. 플레이그룹 가서 배웠는지 영어를 조금 섞어 쓰긴 하는데 여기서 학교까지 다닐 건 아니어서 나중에 도움이 될 것 같진 않다. 


 근데 눈치가 빠른 건지 말은 또 기가 막히게 알아듣는다. 뭐 갖고 오라고 하면 갖고 오고 치우라고 하면 치운다. 퇴근하고 와서 오늘 뭐했는지 물어보면 손짓발짓 하며 다 표현한다. 말도 잘 못하는 애가 엄마아빠 말 알아듣고 반응하는 거 보면 진짜 신기하다. 


 웃긴 건 얘가 뭘 안다고 듣고 싶은 것만 골라서 듣는다는 거다. 자기가 좋아하는 장난감을 가지고 놀 때는 아무리 자러 가자고 해도 모른척하고 계속 논다. 그러다가 엄마가 "그럼 우리 케잌 먹을까?" 하면 금세 "네 엄마"하고 달려온다. 지난번엔 뭘 잘못해서 아빠가 살짝 목소리를 깔고 혼내려 했더니 갑자기 귀를 막고 안 들으려 한다. 그러고선 자기도 민망한지 배시시 웃는다. 




  두 살 애기만 듣고 싶은 걸 골라 듣는 게 아니다 (내 글 자주 읽는 분은 알겠지만 이제 내 얘기 나올 타이밍). 나도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 이번에 소위 "조국 사태"가 일어나면서 내가 가장 당황스러웠던 것은, 나한테도 확증편향이 심하게 있다는 것이다. 


 조국이라는 분은 잘 몰랐지만 문재인 정부가 성공하길 바라는 사람으로서 연이어 제기되는 의혹이 사실이 아니길 바랐다. 의혹이 심각하다 싶으면 왠지 마음이 불편해지면서 반론이 있는지 샅샅이 뒤진다. 의혹을 반박하는 설득력 있는 글을 읽으면 반대로 안도감이 들며 검색을 멈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제기된 반론에 문제가 있는데도 읽는 당시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박사 하면서 자기비판을 충분히 연습했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믿고 싶은 대로 믿어버리는 나를 발견했다. 


 나름 노력을 안 한 것은 아니다. 다행히 페이스북 안에서 조 신임장관을 아주 설득력 있게 비판해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그분들 글을 주기적으로 찾아보며 한 사안을 여러 각도에서 바라보려고 꽤나 노력했다. (아내에게 또 한 소리 들었지만) 마치 연구주제를 파고들듯 찬반을 검토하고 근거를 재보았다. 그리고 나름 균형을 잡으려 애를 썼다. 


 한편으론 내가 그간 닿을 수 없다고 느꼈던 훌륭한 분들도 어느 정도 확증편향에 빠져있는 걸 보고 묘한 안도감을 느꼈다. 정말 치열하게 근거들을 비교해보고 결론 내리는 분들도 있지만 그냥 덮어놓고 자기편에 유리한 정보만 주구장창 공유하는 분들도 있었다. 아, 인간이 원래 그렇구나. 그냥 한계를 인정하고 할 수 있는 만큼만 노력하면 되겠구나 싶었다. 


 물론 본받아야겠다고 생각한 분들도 많이 계셨다. 아무리 상황이 급박해도 거칠게 표현하거나 비아냥거리지 않고 겸손하게 자기 의사를 표현하시는 분들이 돋보였다. 본인 의견에 제기된 반론을 차분히 반박하고, 반론이 타당할 경우 기꺼이 수용하는 모습은 정말 배우고 싶었다. 확증편향에 빠지지 않기 위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소통을 활용하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반면 아무리 분석이 날카로워도 비꼬거나, 쉽게 비난하거나, 예단하거나, 조심스럽지 않으면 아무래도 다시 찾아볼 마음이 안 생겼다. 이런 분들은 보통 반론도 무시하거나 거칠게 반박한다. 자신의 가치를 추구하는 각자의 방법을 존중하지만, 아무래도 이런게 내 스타일은 아닌 것 같다. 




 어쨌든, 이번 법무장관 임명을 둘러싼 여러 상황이 나한테도 개인적으로 성숙의 계기가 될 것 같다. 두 살 도준이야 듣기 싫은 말에 귀를 막아버리는 게 귀여워 보이지만 그게 얼마나 갈까. 요새 글과 삶이 일치하지 않아 지탄을 받는 사람이 많아 계속 나만 정의로운 척 글을 써내기가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다. 하지만 내 한계를 극복하는데 소통이 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글쓰기를 멈출 수도 없다. 언제까지나 두살짜리 수준에 머물러 있을 순 없을 테니 말이다. 





덧1. 중간에 나오는 포스팅 평가는 글쓰기를 업으로 삼으시는 분들만 대상으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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