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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Sep 29. 2019

언제 나설 것인가

검찰개혁 촉구 촛불집회를 지지하며

 사진 출처: 중앙일보


지난 일주일 간 글을 세 개 정도 쓰다가 중도에 그만두었다. 셋 다 검찰의 행보에 대한 비판을 내 전공과 연결시킨 글이다. 검찰개혁이 절실하다는 결론을 내릴 계획이었다.


 일반인의 법상식을 가진 나에게 검찰의 이런저런 행태들이 정상으로 보이지 않았다. "국민적 관심인 큰" 사안이기 때문에 조국 당시 후보자에 대한 전방위적 수사를 시작했다는 설명부터 석연치 않았다. 제기된 의혹들 중 범죄 혐의로 특정할 말한 사안은 없었음에도 수십 건의 압수수색이 진행되었다. 논문 저자 선정, 표절 의혹, 입시 문제 등 사법당국이 아닌 유관 기관에서 풀어 가야 할 문제도 다 법의 영역으로 끌어들였다. 그나마 불법 혐의가 될 만한 표창장 위조 건에서도 검찰은 미심쩍은 증언에 의지한 데다 피의자 소환조사도 없이 기소를 해버리는 무리수를 두었다.


 더 심각한 것은 기소 전 피의사실 유출이다. 내 기준에 정말 큰 문제가 될 가능성이 있는 사안은 사모펀드 건이다. 펀드 운용에 조국 장관 내외의 직접적인 개입이 있었다면 변명의 여지없는 범죄이며 법무부 장관으로서 자격 상실이다. 물론 아직 가정일 뿐 아무것도 명확하게 밝혀진 게 없다. 하지만 검찰은 마치 개입이 기정사실인 양 끊임없이 과장/왜곡된 피의사실을 언론에 흘리고, 언론은 자극적인 헤드라인을 달아 검찰의 시각을 유통시킨다. 무죄추정의 원칙이든 피의자의 변론권, 인권은 전혀 고려대상이 아니다.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서라는 그럴듯한 이유 역시 변명에 불과하다. 공식적인 수사 브리핑이 아니라 비밀리에 일부 기자에게만 선별적으로 피의사실을 흘리는 행위는 검찰에 유리하게 여론을 왜곡하여 오히려 알 권리를 침해한다.


  검찰 내부의 사건이나 다른 권력형 비리에 대해 보인 검찰의 소극적 태도를 생각하면, 조국 장관에 대한 과도한/부당한 수사는 그가 상징하는 검찰개혁에 대한 저항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독립성을 강조하며 직속 상사인 법무장관도 사정 봐주지 않고 수사하는 검찰이 왜 과거 보수정권에서는 정권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을까. 조직 자체의 보수성 때문인가 아니면 누가 지적했듯 자본의 영향을 받는 것인가. 어느 쪽이든 개혁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글을 끝내 마무리하지 못했다. 전문분야가 아닌지라 잠재적 반론에 대해 충분히 방어할 자신이 없었다. 매일 쏟아지는 정보들을 다 소화하지 못한 채 급하게 글을 쓴다는 느낌도 있었다. 검찰이 파악하고 있는 조국 장관의 혐의점이 실제 알려진 것보다 크다면 수사 범위와 강도가 과도한 게 아닐 수도 있다. 검찰총장이 오히려 외압을 견디며 의로운 싸움을 하고 있을 수도 있다.


 또 조국 장관이 내세우는 검찰개혁 방안이 백 퍼센트 옳다는 확신도 나에겐 없었다. 단편적인 정보들만 가지고 섣불리 지지 입장을 밝혔다가 도리어 개악에 일조하는 격이 돼버릴까 걱정이 되었다. 그리고 일단 말을 꺼내면 그 말의 덫에 걸려 생각과 글이 자유로워지지 않게 된다. 그래서 침묵이 가장 현명한 대안일 때가 많다.


 

 검찰개혁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시민의 참여가 필수라는 한 편의 생각과, 아직 행동에 나설만한 충분한 확신이 없다는 또 다른 편의 생각이 치열하게 싸우는 가운데 시간이 흘렀다. 그러던 중 이 사안에 대한 의견은 나와 다르지만 내가 신뢰하며 참고하는 김규항 선생님과의 대화가 중요한 힌트를 제공해주었다. 그분은 이번 사안을 기본적으로 리버럴 세력과 검찰-언론-수구야당 연합의 기득권 경쟁으로 보시며, 주로 조국 장관을 위시한 리버럴 세력의 위선을 드러내는데 집중해오셨다. 설령 리버럴을 비판하는 것이 수구세력과 이해를 같이 하는 행동이라 할 지라도 본인은 그렇게 역할 설정을 하셨다는 말씀을 주셨다. 리버럴의 위선에 속아 자발적으로 동원되는 "다수 인민"들을 향해 경고 메시지를 던지는 데 우선순위를 두신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와 생각은 다르지만 그 "역할 설정"이라는 단어가 나를 묘하게 안심시켰다. 각자 자기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영역을 정하고 그 안에서 역할을 해내면 되는구나, 내가 모든 걸 다 이해하고 모든 영역에 기여하려고 하는 것도 같잖은 욕심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해한 만큼 쓰고 또 틀린 건 수정해가자, 하지만 틀릴까 두려워 가만히 있지는 말자 하고 다짐하게 되었다. 역설적으로 들리지만 내가 안심하고 소리를 높일 수 있는 건 상대편에서 같이 소리를 높여 나를 견제해 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서로 부족한 걸 보완해가며 균형을 잡아가면 되지 않을까 싶었다.



 마침 대규모 촛불집회가 있어서 내 의사를 표시해야 하나 고민했는데, 이런저런 생각 끝에 검찰개혁을 촉구하는 쪽에 목소리를 보태기로 결정했다. 나는 조국만이 이 개혁의 적임자인지 확신할 수 없지만, 애초에 검찰개혁이 법무장관 혼자서 하는 건 아니기 때문에 그 부분은 크게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임기에 한계가 있는 법무장관의 흠보단 검찰의 독주가 사회에 끼칠 해악이 훨씬 크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검찰이라는 시스템을 바꾸는데 집중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미 검경 수사권 조정과 공수처 설치에 관한 법안이 패스트트랙에 올라 있으니 공은 국회로 넘어갔다. 촛불의 압박이 효과를 발할 수 있는 시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무쪼록 한국사회를 휩쓸고 있는 이 적극적 참여와 첨예한 대립이 최선의 결실로 이어지길, 멀리서나마 빌어본다.




덧1. 촛불집회의 모든 구호에 동의하진 않지만 "조국 수호"라는 구호에는 공감이 감. 권력의 정점에 있는 법무장관도 수사과정에서 인권을 보장받지 못한다면 평범한 사람은 어떨까? 흉악범죄 용의자의 인권도 보호하는 것이 법치이다. "조국 수호"는 나에게 법치의 보호를 수호하자는 의미로 다가온다.


덧2. 범죄자의 인권은 보호받을 필요가 없으며, 한 사람의 범죄자를 확실히 잡기 위해 몇몇 무고한 사람들이 피해를 보는 것은 어쩔 수 없다는 시각도 있는 걸로 알고 있다.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닌데 그런 주장을 하면서 1) 그게 법치주의니, 2) 본인이 "자유"민주주의자니 얘기하진 않았으면 좋겠다. 왜냐면 둘 다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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