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oung Oct 25. 2019

입시제도 개편 관련 단상

입시 공정성이 문제가 아니라, 교육의 내용이 문제다.



1. 입시제도를 바꾸면 공정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은 환상에 불과하다고 본다. 이렇게 정부가 나서서 입시를 흔들 때마다 대박 나는 건 강남의 입시 컨설팅 업체들 뿐이다. 어떤 제도를 가지고 와도 그걸 가장 잘 활용하는 건 재력(=정보력)이 있는 계층이다. 



2. 입시를 공정하게 만드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좋은 대학과 안 좋은 대학을 갔을 때 얻는 이익의 격차를 줄이는 것이다. 학벌이 삶의 질에 미치는 영향이 클수록 더 좋은 학벌을 가지려는 경쟁이 치열해진다. 인서울대를 나오든 지방대를 나오든 누릴 수 있는 생활수준이 크게 다르지 않다면 기를 쓰고 좋은 대학에 가려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결과의 평등이 기회의 평등을 가지고 온다.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에 비해 학벌에 따른 임금 프리미엄이 특별히 높은 지는 확실치 않다. 교육 수준(예. 중졸-고졸-대졸)에 따른 임금 프리미엄은 OECD 평균보다 조금 높은 정도인데, 서울 상위권 대학과 지방대 출신의 임금도 비교해본 연구가 있는지 모르겠다. 자료 구하기가 쉽지 않을 듯. 



3. 어쨌든 결과의 평등은 장기적으로 해결할 문제고, 당장 불공정한 입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정시와 수시, 수능과 학종으로 봤을 때 개인적으론 수시와 학종이 더 공정한 대입제도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수시와 학종을 확대해온 지난 몇 년간 기회의 평등이 더 커졌다는 연구결과도 꽤 있다. 


 물론 이상적으로 운영될 때 얘기다. 최근 몇 달간 불거진 사례들로 미뤄보아 수시/학종이 비리의 온상이 된 것처럼 보인다.



4. 어차피 제도가 공정성을 담보하지 못한다면 논의의 방향을 "어떤 제도가 공정한가"에서 "무엇을 가르쳐야 하나"로 바꿔보면 어떨까 싶다. 문학 지문 달달 외워서 시험만 잘 치는 사람을 키울지 문학을 통해 이웃과 사회를 더 깊이 이해하고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을 키울지 고민해야 한다. 정답을 정해 놓고 일방적으로 주입하는 게 아니라 다양한 주장에 대한 다양한 근거를 비교하고 재어봐서 본인만의 결론에 이르게 하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지식의 크기로 친구들 사이에 등수를 매기는 게 아니라 서로 다른 경험과 배경, 각자의 장점과 단점을 인정하고 포용하는 가운데 배움을 넓히고 창의력을 키워나가야 한다. 


 각각의 과목마다 배움의 목적을 설정한 후 그 목적을 가장 잘 실현시켜줄 수 있는 평가의 방법을 도출해내고, 이 연장선상에서 대입 제도까지 고안하는 것이 더 필요할 것 같다. 그리고 수능이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한 최상의 평가 방법은 아닌 걸로 보인다. 



 5. 문재인 정부는 진보 정부가 아니다. 과거 민주화에 기여했고 극우 세력에 비해 더 왼쪽에 있을 뿐이지 진보 진영의 이상을 실현해 줄 정권은 결코 아니다. 나는 이 정부를 민주 정부라고 부른다. 여론을 보고 국민 중 다수가 찬성, 동의하는 정책은 적극적으로 밀고 나가되 그렇지 않은 사안에는 소극적이다. 교육정책뿐 아니라 노동정책, 검찰 및 사법개혁, 재벌정책, 각종 규제와 산업정책 관련해서도 국민 여론을 거슬려 무리하게 추진하는 사례를 본 기억이 별로 없다. 


 민주주의의 최대 강점이자 치명적인 약점이 이것이다. 정부 정책이 국민의 수준을 뛰어넘을 수 없다. 나는 개인적으로 수시/학종 비율을 유지한 채 정비해 가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정시 확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큰 상황에서 이에 반응한 정부의 결정을 이해한다. 솔직히 뭐가 정말 이상적인지는 알 수 없다. 그래서 서로 간 설득하고 타협하며 해결책을 찾아가는 민주적 절차를 지키는 게 유일한 정답일지도 모르겠다.




참고기사 및 사진 출처: https://news.v.daum.net/v/20191025142119264

매거진의 이전글 조국 사퇴, 그 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