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배지 논란에 대해
며칠 전 성남의 한 행사에서 어떤 남성이 김일성배지를 가슴에 달고 무대에 올랐다. 마이크를 잡고 있는 걸 보니 무슨 공연을 하는 것 같다.
이 기회를 놓칠 수구세력들이 아니다. 국가보안법 운운하며 해당 행사를 맹렬히 비난한다. 예산을 지원한 성남시와 사노맹 활동 경력을 가진 은수미 시장에 대한 공세도 더해졌다. 급기야 한 단체는 은 시장과 행사 주최자를 국보법 위반으로 고발하겠다고 나섰다.
그런데 조금 들여다보니 정말 말도 안 되는 공세다.
공연은 북에 있는 아들이 남에 있는 어머니를 생각하며 쓴 시를 낭송하고, 어머니는 그에 답을 하는 형식이다. 아들이 북한에 거주한다는 사실을 표현하기 위해 김일성배지를 소품으로 활용했다. 북한 체제나 김일성을 찬양하는 내용은 전혀 없으므로 국보법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낭송한 시 내용은 아래 첨부).
이것조차도 문제가 된다는 사람이 있지만 난 좀 이해가 안 된다. 북한을 배경으로 하는 수많은 영화와 공연이 있다. 공동경비구역 JSA나 공조 같은 영화에 등장하는 북한 사람이 김일성배지를 달고 나왔다고 문제를 삼는다면, 아예 북한을 주제로 영화를 만들어선 안 된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백번 양보해서 김일성배지라는 소품이 국민정서상(?) 문제가 된다고 치자. 그러면 성남시장이 공연을 중지시켜야 했나?
예술의 가치는 금기를 건드리는 데서 나올 때가 많다. 예술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무시한 채 단지 정치적으로 이익이 안된다는 이유로 특정 작품을 검열, 금지시키는 것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입맛에 안 맞는 공연을 못하게 하는 건 딱 북한이 하는 짓이다. 나는 오히려 은수미 시장이 이 공연을 중지시켰다면 빨갱이라 불려도 할 말이 없다고 생각한다.
김수영 시인은 60년 전에 이미 "김일성 만세"라는 표현을 할 수 있어야 진정한 자유민주주의를 이루는 것이라 일갈했는데 우리 사회는 아직도 김일성배지 하나 가지고 왕왕거린다. 전쟁이 끝나지 않았고 국가보안법이 엄연히 있으니 북한 체제를 옹호하고 찬양, 고무하는 거 조심하자는 주장까지는 좋다. 근데 북한 사회를 표현하는 소품 하나 마음대로 못 쓰게 하는 건 좀 아닌 것 같다. 은수미 시장 표현대로, 철 지난 색깔공세이다.
그런데 참 신기하다. 이런 반민주주의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다 헌법의 수호자이며 자유민주주의의 선봉인 양 행세한다. 이건 진짜 이해가 안 된다.
참고 기사 및 사진 출처 https://www.edaily.co.kr/news/read?newsId=02118886622682768&mediaCodeNo=257
덧. 김일성배지를 단 사람이 낭독한 오영재 시인의 <아, 나의 어머니> 일부. 김일성배지에 분노하기 전에 분단의 현실을 아파할 순 없을까.
<늙지 마시라>
늙지 마시라
더 늙지 마시라,어머니여
세월아, 가지 말라
통일되여
우리 만나는 그날까지라도
이날까지 늙으신 것만도
이 가슴이 아픈데
세월아,섰거라
통일되여
우리 만나는 그날까지라도
너 기어이 가야만 한다면
어머니 앞으로 흐르는 세월을
나에게 다오
내 어머니 몫까지
한 해에 두살씩 먹으리
검은빛 한 오리 없이
내 백발 서둘러 온 대도
어린 날의 그때처럼
어머니 품에 얼굴을 묻을 수 있다면
그 다음에
그 다음엔
내 죽어도 유한이 없으리니
어머니 찾아가는 통일의 그 길에선
가시밭에 피흘려도 아프지 않으리
어머니여
더 늙질 마시라
세월아,가지 마라
통일되여
우리 서로 만나는 그날까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