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희망

- 희망봉 여행 후기(를 가장한 내 슬럼프 극복기)

by Young


한국에서 손님이 온 김에 우리도 오랜만에 관광객 모드가 됐다. 그간 안 가고 아껴놨던 곳들을 돌아보기로 했다. 첫번째는 희망봉(Cape of Good Hope), 아프리카 서남단에 위치한 바위 곶으로 유럽의 항해자들이 인도로 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했던 관문과도 같은 곳이다. 최초로 동방 항로를 개척한 기쁨이 이 작은 언덕에 희망찬 이름을 붙여주었다.


관광객들은 보통 케이프반도 다른 쪽 끝에 있는 케이프 포인트에 차를 대고 희망봉까지 도보로 이동한다. 이곳이 옛 항해자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녔다지만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더 인상적인 것은 하이킹 코스의 절경이다. 탁 트인 바다 위로 솟아오른 바위산의 모습은 감탄을 자아낸다.


육아 선배들은 잘 알다시피 어린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여행은 휴가가 아니다. 괜히 데리고 나와서 사투를 벌이느니 편하게 집에 있는 게 더 낫겠다고 생각할 정도이다. 이 친구가 나중에 기억해 줄 것 같지도 않다. 그래도 그간 고생한 아내에게 잠깐이라도 쉴 기회를 주기 위해 아기는 내가 거의 맡아서 보기로 했다.


아내와 일행들이 하이킹 코스를 따라 희망봉으로 내려오는 사이 나는 도준이를 차에 태워 돌면서 낮잠을 재웠다. 다행히 아기가 금방 잠들어줘서 희망봉 쪽에 먼저 도착해 차를 세웠다. 차에 잠든 아기를 놔두고 나갈 수가 없어 희망봉의 절경을 즐기는 대신 희망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로 했다 (한 30초쯤...하고 같이 잠듦).




희망. 앞으로 일어날 일을 기대하고 바라는 것. 이 말은 대부분 긍정적인 의미로 쓰이지만 그 부작용도 없지 않다.


흔히들 행복은 성취보다 기대에 달려 있다고 한다. 기대가 낮으면 별거 아닌 성과에도 만족하고 기대가 높으면 객관적으로 대단한 일을 이뤄냈어도 기쁨이 덜 하다. 이뤄지지 않을 일에 대한 막연한 기대는 오히려 현재의 처지를 비관하게 할 가능성이 크다. 또 희망으로 포장된 헛된 바람은 일찌감치 포기하고 다른 길을 찾아야 할 때에도 구질구질하게 매달리게 만든다.


객관적으로 평가하면 남아공에서 우리 삶은이 그렇게 어려운 상황은 아니다(내 얘기 시작). 재정이 빠듯해도 빚을 지는 형편은 아니고, 아기와 우리가 잔병치레를 좀 할 뿐이지 큰 병이 있거나 거동을 못할 만큼 다친 것도 아니다. 종종 불합리한 상황에 분통을 터트리지만 사는 데 지장을 끼칠만한 큰 불편은 없다. 정 힘들면 한국에 돌아가는 옵션도 있다. 주변에 우리보다 훨씬 더 어려운 조건에서도 평생을 이 땅에서 지내기로 헌신한 선교사님들도 많이 계신데 조금 힘들다고 징징댄 게 죄송하게 느껴질 정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곳에서 만족하며 살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가 가진 어떤 희망 때문이 아닐까 싶다. 여기 왔을 때 구체적인 계획은 없었지만 한 가지 기대가 있었다. 편안하고 안락한 환경을 포기하고 가치를 좇을 때 내면의 기쁨, 감사, 행복 등을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어릴 적부터 교회에서 자라면서 뜻을 따라 살기 위해 자기를 희생한 분들의 이야기를 많이 접해왔다. 나는 그 자기희생에 반드시 보상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게 아니면 그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오지에서 가난과 고난을 견디며 평생을 살았을까. 심지어 죽음까지 두려워 않는 신념은 그에 따르는 반대급부 없이는 설명할 수가 없다.


박사를 마치고 정식 직장을 구하기 전에, 이 희생 뒤에 얻는 게 무엇인지 직접 알아보고 싶었다. 적어도 그런 삶을 사는 분들을 가까이서 볼 수 있을 거란 기대가 있었다. 마침 여러 우연이 겹치며 남아공 쪽에 자리가 생겨 그 기회를 붙잡았다. 대우가 별로 안 좋고 커리어 상 큰 유익이 되지 않아도 내 오랜 고민의 답을 얻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아직 1년도 채 안 있었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경험한 바에 의하면 내가 가졌던 막연한 기대는 헛된 희망에 불과할지 모른다는 느낌이 든다. 당장 내 안에 이 선택으로 겪는 불편함을 뛰어넘을 만한 기쁨이 없다. 잠깐의 교제로 그 속까지 다 알 수는 없겠지만 주변에 계신 선교사님들을 봐도 힘들고 고생스러운 모습이 더 많이 보이지 마냥 행복해 보이지는 않는다.


차라리 기대가 없었으면 모를까, 객관적으로 그리 나쁘지 않은 처지임에도 우리가 이렇게 힘들어 하는건 그간 바라 왔던 것들이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



어쩌면 나의 희망이 잘못 됐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든다. 내가 가진 몇가지를 포기했다고 해서 그 반대급부로 바로 행복을 얻는다는 것은 헛된 바람에 불과할 수도 있다.


힘든 건 힘든 거고, 아픈 건 아픈 거다. 모든 고통을 한 번에 없애 줄 만병통치약 같은 선택은 없다. 우리는 끊임없이 위기를 맞닥뜨릴 것이고 그 가운데서 의미를 찾아야 한다. 오히려 고통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이 과정을 더 수월하게 견뎌낼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그러나 우리의 희망이 완전히 틀리지는 않았기를 기대해본다. 지금 당장 눈에 보이는 보상은 없더라도 고난을 통과해 우리 내면이 더 단단해지면 그 자체가 유익이 되기 때문이다. 어차피 삶이 고통의 연속이라면 그 고통을 이겨낼 견고함을 우리 안에 쌓아가는 것이 결코 손해는 아닐 것이다.


"우리는 환난을 자랑합니다. 우리가 알기로, 환난은 인내력을 낳고, 인내력은 단련된 인격을 낳고, 단련된 인격은 희망을 낳는 줄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희망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바울이 로마교회에 보내는 편지에 이렇게 쓴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하다. 우리의 희망은 늘 기쁘고 감사하고 행복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아파하고 괴로워하면서도 이 고통에 목적이 있음을 잊지 않는 것, 그 길의 끝에 상황과 환경이 빼앗아 갈 수 없는 기쁨이 있음을 아는 것이다.


희망봉의 원래 이름은 폭풍의 곶(Cape of Storms)이었다. 유럽인으로서 최초로 이곳에 도달한 바르톨로뮤 디아스는 이 주변의 거친 해풍에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겼다고 한다 (실제로 걸어 내려온 일행들은 바람이 너무 많이 불어서 날아갈 뻔했다고...). 희망봉을 도는 항해자들에겐 인도에서 얻을 부에 대한 막연한 환상보다 거기까지 가는 길에 도사린 위협을 인지하는 게 더 필요했다. 희망이 고문이 되지 않으려면 먼저 현실을 정확히 인식해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도 현실에 맞춰 처음 가졌던 기대를 수정하는 게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계속 이 과정을 겪다보면 언젠가 고난을 즐거워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그 내면의 견고함을 갖게 되길 희망해 본다.




덧. 자세한 여행후기를 기대하신 분들께는 죄송. 희망봉의 역사나 경관이 궁금하신 분은 위키피디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