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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Feb 29. 2020

위험지역에 계신 분들께 드리는 편지

질병보다 무서운 것은 미지의 위험에 대한 공포입니다.

 한국에 계신 가족과 친구들을 생각하며 쓴 편지글입니다. 부족한 부분에 대한 지적은 언제나 감사히 받겠습니다. 사안이 사안인만큼 비판을 위한 비판은 자제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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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하는 친구들에게


 "안녕하세요?"로 편지를 시작했다가 급히 지웠습니다. 연일 한국에서 코로나19 감염자와 사망자 소식이 들려오는 이때, 남아공에 피해 있으면서 안녕하시냐고 묻기가 송구스럽습니다.


 멀리 있는 제가 이 문제를 언급하는 게 옳은지 계속 고민했습니다. 감염 분야에 대한 지식도 부족하고 실제 아픔을 겪는 당사자도 아니어서 제 발언이 괜히 불쾌감만 더하는 건 아닐지 두렵습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공포에서 한발짝 물러서 있는 제가, 오히려 더 객관적으로 정보를 선별하고 취합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용기를 내보았습니다. 제가 연구하고 가르치는 분야와 관련된 부분 위주로 적었습니다. 한국에 계신 분들의 판단과 대처에 작은 도움이라도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1. 확진자 통계의 진실 - 모르거나, 안 알리거나.


  2월 29일 현재 한국의 코로나19 확진자는 2,931명, 사망자는 16명입니다. 확진자 수로 따졌을 때 중국 (78,832명) 다음으로 2위, 사망자 수는 중국(2,788명), 이란 (34명), 이탈리아 (21명)에 이은 4위입니다.


 지난 2월 18일 31번째 확진자가 나온 이후 열흘만에 약 3,000명의 새로운 환자가 나왔습니다. 초기 수십 명 수준에서 종식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에 환자 수 급증은 더 큰 우려로 다가옵니다.


 전염병의 감염자 숫자는 여러가지 요인에 의해 결정됩니다. 우선 질병의 전염성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그 외에도 전파되는 지역의 기후, 내국인 면역체계, 발원지와의 거리, 교역량, 여행자 수, 교민 수 등등을 따져보아야 합니다.


 이번 코로나19의 경우 전염성이 꽤 높은 축에 속합니다. 메르스나 신종플루, 일반 계절성 독감보다 월등히 높고 사스와 비슷하거나 약간 더 높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림 1). 높은 전염성을 지니는 질병일수록 지리적으로 가깝고 교류가 많은 나라에 더 빠르게 전파됩니다.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고, 같은 기후대에 있으며, 경제규모가 커서 중국과 관광 및 비즈니스 목적의 인구교류가 많은 우리나라에 확진자 수가 많이 나오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닙니다. 참고로 멕시코에서 발원한 신종플루는 2009년 한해 간 한국인 75만명을 감염시켰습니다.


그림 1. 코로나19 전파율 (출처: swissinfo.ch)


 이에 더하여 각국에서 나오는 확진자/사망자 통계가 각각 다른 기준으로 수집되고 발표되는 점을 고려해야 합니다. 저 같은 경제사학자들은 통계가 잘 안 갖춰진 과거를 연구하기 때문에 항상 정확한 통계를 "모르거나", 통계는 있으나 어떤 이유로 "안 알려졌을" 가능성을 염두에 둡니다.


 첫번째, 확진자 수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을 수 있습니다. 


 지금 저는 남아공의 두 지역 사망자 통계를 분석하여 "스페인독감"과 연관된 사망자 수를 추정하는 연구를 진행 중입니다. 남아공에 스페인독감이 가장 심했던 1918년 9월부터 12월까지의 일 사망원인 통계가 아래 그림 2와 같이 나옵니다. 특이한 것은 "스페인독감"이 10월 한달간 일평균 14명의 사망원인으로 지목되는 한편, 일반 독감 환자 역시 일평균 15명으로 급증했다는 것입니다. 의사들은 스페인독감 증상이 없는 환자의 병명을 일반 독감으로 진단했습니다.


그림 2. 사망원인 통계. 본인 연구.


 하지만 전년 동기 독감으로 사망한 사람은 채 5명이 되지 않았습니다. 의사들이 일반 독감으로 진단한 455명은 스페인독감이었을 확률이 높습니다. 하지만 실제 통계에는 426명만 스페인독감 사망자로 기록됩니다. 통계가 현실을 절반밖에 반영하지 못한 예입니다.


 현재에도 이를 적용해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28일 현재 누적 검사 수가 7만 건에 이르고 일일 최대 검사수를 1만 5000건으로 늘렸습니다. 각국 누적검사 수를 보면 이탈리아 9,500 여건(26일 기준), 일본 2,058건 (27일 기준), 미국은 445건 (26일 기준)입니다(참고 1). 확진자 수가 실제로 적은 건지 걸린 사람을 제대로 못 잡아내는 건지 불명확합니다.


 사망자 수를 보면 이 나라들의 실제 확진자 수가 보고된 것보다 더 클 것이라 추론해볼 수 있습니다. 이탈리아의 확진자는 29일 현재 889명인데 비해 사망자는 21명입니다. 단순 치사율을 계산해봐도 2.4%로 우한이 포함된 후베이 성(4.1%)보다 낮지만 후베이성을 제외한 중국 (0.8%) 혹은 한국 (0.6%) 보다 월등히 높은 수치입니다. 확진자 수가 더 클 것이라 추정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일본 본토 치사율 역시 2.2%로 높은 편으로, 승객 다수를 검사, 확진한 프린세스 다이아몬드 호의 치사율(0.7%)과 비교해보면 본토의 확진자 수가 과소평가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일본이 중증 환자를 중심으로 검사를 진행하는 사실로 봤을 때 무리한 추정은 아닙니다.

 

 제일 심각한 건 이란입니다. 현재 확진자 388명에 사망자 34명으로 치사율이 8.8%입니다. 실제 치사율을 2% 라고 가정하고 역산하면 확진자 수가 1,700명에 달할 것이라 추정해볼 수 있습니다. 전체 확진자의 4분의 1도 못 검사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지요.



 두번째, 확진자 수를 알고도 숨기거나 축소한 경우입니다.


 스페인독감은 스페인에서 처음 발병하지 않았습니다. 미국 혹은 프랑스가 첫 발원지로 지목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페인독감"으로 널리 알려진 이유는 1918년 당시 국제정세와 관련이 있습니다. 1차 세계대전 참전국들이 언론을 엄격하게 통제하는 사이, 중립이었던 스페인의 신문에서만 연일 새로운 전염병 상황이 보도되었습니다 (참고 2). 당시 스페인 국왕 알폰소 12세와 국무총리도 이 독감에 걸려서 더 대중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참전국에서는 언론을 통제하고 전염병으로 인한 사상자 발생 상황을 부인하였습니다. 정확한 사망자 통계 역시 발표되지 않았습니다. 현재까지도 스페인독감으로 사망한 인원을 정확히 추정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입니다.


 이번 코로나19도 같은 상황으로 보입니다. 중국의 통계를 믿기 어렵다는 이야기는 발병 초기부터 꾸준히 나왔습니다 (참고2). 북한 역시 공식적으로 확진자가 없으나 이미 광범위하게 퍼져있으며 사망자도 나왔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습니다 (참고3). 이란도 마찬가지로, 이란 정부가 코로나19 사망자 수를 속이고 있다는 주장이 여러 매체에 보도되었습니다 (참고4). 어젯밤에는 이란의 코로나19 사망자가 210명에 이를 것이라는 내부관계자의 주장이 BBC 속보를 통해 보도되었습니다 (참고5). 여기에 치사율 2%를 적용하면 추정 확진자 수는 10,500명입니다.


 그러므로 보고된 확진자 수로만 각국의 상황을 정확히 판단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 추정치를 통해 전염성이 높은 이번 코로나바이러스는 중국과 교류가 많은 나라를 중심으로 이미 퍼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는 발병 초기부터 여러 전문가들이 예측해 왔던 상황입니다 (참고 6, 7).

 

 한국에 확진자가 많이 나오는 현재 상황은 1)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전파력, 2) 한중 간 지리적 경제적 근접성, 3) 한국의 검사 역량, 4) 확진자를 모두 공개하는 투명성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확진자의 동선을 일일이 추적하고 의심환자를 전부 진단하는 것은 방역당국의 지원과 관계자 분들의 헌신으로만 가능한 일이었겠지요. 수고에 감사를 드립니다. (하지만 여기에 긍정적인 면만 있지는 않습니다. 섹션 3에서 다룹니다).





2. 자기실현적 예언: 질병보다 더 무서운 건 위험의 불확실성


 높은 전염성에도 불구하고 저는 발병 초기부터 코로나19가 정말 치명적인 병인가에 대한 의문이 있었습니다. 현재 사망자 수로 단순 계산한 치사율을 보면 후베이성이 4%로 상당히 높지만 중국의 그 외 지역이나 다른 나라의 치사율은 1.5%로 더 낮은 편입니다. 앞서 말한 몇몇 의심 가는 나라들을 제외하면 0.5%까지 떨어집니다.

 

 우리나라의 현재 치사율 역시 0.5%입니다. 29일 현재 사망자 16명 중 7명은 이미 면역력이 약해졌고 기저질환이 있었던 청도 대남병원 환자였다는 점을 미루어 볼 때,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치사율은 더 낮을 것으로 조심스레 예상해봅니다 (물론 정확한 건 앞으로 추이를 봐야겠습니다).


 최근 발표된 논문에서 분석한 중국 케이스를 보면 확진자의 80프로 이상이 경증 혹은 무증상을 보입니다. 중증 환자는 14%, 심각 단계의 환자는 5%입니다 (참고 6). 이중 심각 단계 환자 증 절반 가량이 실제 사망합니다. 경증 환자는 3-5일 사이에 자연스럽게 치유되며 중증환자 역시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금방 회복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물론 연령과 기저질환 여부에 따라 치사율이 다르기 때문에 고령자 분들과 질병이 있으신 분들은 각별히 유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80세 이상 확진자의 치사율이 15%, 70세-79세는 8%로 상당히 높은 편입니다. 다만 9세 이하 어린아이의 경우 확진자 수도 1% 미만으로 적지만 사망자 역시 단 한명도 안 나왔다는 점에서 아이들은 비교적 안전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림 3).


그림3. 중국 환자 대상 연령별 치사율


 상기 결과는 우한 사례이기 때문에 우리나라 치사율은 이보다 더 낮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28일 현재 2,500여 명의 확진자 중 중증으로 분류된 사람은 16명이며, 그중 심각 단계는 10명으로 알려집니다. 즉 대다수의 확진자들은 생명에 지장이 없다는 뜻입니다.


 현재까지 나온 증거를 따져보았을 때 코로나19는 전염성이 높아 전파가 빠를 뿐 실제 60대 미만 건강한 사람에겐 큰 위험이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가 사람들에게 주는 공포감과 실제 생활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큽니다.

 

 

 저는 이 시점에 경제위기를 설명하는 이론 중 하나인 자기실현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sy)을 떠올립니다. 위기, 특히 금융위기는 종종 건전한 경제상황에서 일어나곤 합니다. 예를 들어 실제 재무건전성에 문제가 없는 은행에 대한 안 좋은 루머가 돌기 시작하면, 예금자들은 다른 사람이 예금을 다 찾아가기 전에 자기 예금을 인출하려 합니다. 이 은행에 모든 예금자들이 앞다투어 달려와 자기의 예금을 인출해가면(bank run), 건전했던 은행에 실제로 유동성의 문제가 생기고 결국 도산하고 맙니다. 은행의 건전성에 대한 사람들의 의심이 실제 문제를 만들어낸 자기실현적 위기입니다. 1930년 대공황도,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도 이런 자기실현적 측면이 있습니다 (참고7). 경제펀더멘털에 이상징후가 없는데도 위기가 발생하는 것은 시장참여자의 불안에서 기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번 코로나19도 비슷한 양상입니다. 실제로 증상이 심각하지 않은 경우 입원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공포로 인해 모든 의심증상자가 병원에 달려오수용능력에 한계가 있는 병원에선 나중에 오는 환자를 못받게 됩니다. 우리나라 예에서도 볼 수 있듯 중증환자는 필요한 치료를 못받고 사망하기도 합니다. 현재 자원으로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질병임에도 사람들의 공포가 끼어들면 자기실현적으로 더 위험한 질병이 되어 버립니다.


 질병 경제 미치는 영향도 유사합니다. 실제 질병의 치명률을 따져보면 사람들의 경제활동에 영향을 미칠 만큼 위험하지 않습니다 (독감 등 다른 질병과 비교해봐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바이러스에 대한 두려움은 위험을 과대평가하게 하고,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소비와 생산을 포기하면 실제로 경제상황은 나빠지게 됩니다. 질병의 위험성에 대한 예상이 실제 위험을 만들어내는 또다른 예입니다.


 이 자기실현적 위기를 막기 위해선 정확한 정보로 위험의 크기를 있는 그대로 평가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은행이 재무건전성을 유지할 것이라는 사실에 대한 정확한 판단이 있다면 루머가 떠돌아도 예금주들은 예금을 인출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루머는 실현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코로나19의 위험성에 대한 정확한 판단이 있다면 어느정도까지 조심하고 어느정도까지 일상을 영위할지 결정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공포의 자기실현을 막을 수 있습니다.


 물론 생명은 소중하기 때문에 과도한 대응이 더 낫다는 주장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보면 우리가 일상을 위해 얼마나 많은 생명의 위협을 감수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교통사고의 위험을 무릅쓰고 를 몰며 길을 건넙니다. 전염병이 있을지 모르는 사람과 악수를 하고 밥을 먹습니다. 미세먼지가 있어도 외출을 하고 야외데이트를 합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우리가 하는 행동의 위험을 평가하고, 행동의 효용이 그 위험보다 더 클 경우 위험을 무시합니다. 예를 들어 2018년 독감으로 직접 사망한 사람의 수는 720명, 간접사망까지 합하면 1,500명 정도 될 것이라고 추정합니다 (참고 11). 우리는 독감을 조심하면서도 독감의 위험 때문에 출근을 하지 않거나 모임 참석을 미루지 않습니다. 코로나19의 치명률이 독감보다 크고 아직 치료제와 백신이 없는 것이 사실이나, 현재까지 발생한 사례와 당국의 관리 현황을 볼 때 실제 이상의 두려움으로 위축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3. 누구의 책임인가: 증거를 기반으로 한 평가


 첫번째 섹션에서 확진자 통계를 읽는 법을, 두번째 섹션에서 위험의 정확한 평가를 얘기했습니다. 지금까지의 결론은 1) 지역사회 감염은 예정된 수순이었으며 우리나라에 확진자가 많이 나오는 상황은 불가피한 것이다, 2) 코로나19는 전염성이 높지만 치명률은 비교적 낮은 편이며, 기저질환이 없는 젊은 사람에게는 큰 위험이 없다 입니다.


 이 두가지 결론은 자연스럽게 방역당국의 책임 여부를 따지는 기준으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단순히 확진자 수가 많다는 이유로 방역이 실패했다고 결론 내리는 것은 질병의 특성과 우리나라와 중국의 관계, 그리고 검사 역량과 투명성을 무시한 부적절한 평가입니다. 결과적으로 발생한 확진자 수보다는 이미 발병한 환자를 잘 관리했는지, 각종 의사결정을 내리는 과정에 문제가 있었는지, 필요한 인력과 자원은 충분히 공급이 되었는지를 봐야 합니다. 게다가 상황은 아직 진행 중이므로 지금은 종합적인 평가를 내리기 이른 시기라고 봅니다.


 야당과 일부 전문가 집단에선 중국인 입국을 초기에 막지 못한 것이 확진자 증가의 가장 큰 원인이라 지적하지만 여러 증거를 따져봤을 때 신뢰가 가지 않는 주장입니다 (참고 12). 높은 전파력과 한중간 교류 수준을 생각하면 입국 금지로는 확산을 막을 수 없었을 것이라는 의견이 더 신빙성이 있습니다. 뒤돌아 봤을 때 그나마 효과가 있었을 조치는 중국발 한국인을 완전히 통제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국민 입국을 완전히 막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또한 일단 입국한 자국민은 외국인에 비해 관리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실례로 중국인보다는 중국을 다녀온 우리 국민들을 통해 전파가 빠르게 일어난 것을 볼 수 있습니다(이분들을 탓하는 것은 아님을 분명히 밝힙니다 - 반복하지만 코로나19의 확산은 불가피한 것).

 

 그리고 비용의 측면을 생각 안 할 수 없습니다. 중국과의 무역과 중국인 관광객이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큽니다. 효과가 크지 않은 중국인 입국금지 조치로 경제적, 외교적 손해를 입는 것은 현명한 결정이 아닙니다. 국민의 안전보다 경제가 중요하냐는 주장이 있지만 잘 생각해보면 경제도 생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현재까지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는 16명이고 독감으로 죽는 인원이 한해 1500명 정도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2018년 생활고로 인해 자살한 사람의 숫자는 3,390명에 달합니다 (참고 13). 즉 경제적 타격이 생명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는 것입니다. 중국과의 교역이 끊겨 도산하는 기업이 많아지고 관광객이 들어오지 않아 자영업자들이 손해를 입는 것은 전염병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느 정책과 마찬가지로 중국인 입국금지 조치도 비용과 효과를 따져 결정했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제가 판단하기에 정부 대처 중 치명적인 실수는 너무 빨리 낙관한 것입니다. 확진자 증가가 며칠간 소강상태에 이르자 대통령이 성급하게도 코로나 종식을 언급하며 일상으로 돌아갈 것을 권유했습니다. 이는 지역사회 확산을 경고한 전문가들을 무시한 경솔한 대처였습니다. 전염성이 높다는 질병의 특성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탓입니다. 초기부터 질병의 확산은 막기 어려움 인정하고 그에 맞춰 대응을 수립하였으면 어땠을까 아쉬움이 남습니다.


 새로운 바이러스이기 때문에 정보가 부족한 상태에서 잘못된 판단을 내린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계속 업데이트되는 정보를 어떻게 정책에 반영하는지가 중요할 것입니다. 여러 전문가 분들의 의견을 참고한 결과 지금부터 가장 중요한 것은 감염자 확산 차단 중심의 ‘봉쇄 정책'에서 중증 감염자 치료에 집중하는 ‘완화 정책’으로 이전해 가는 것입니다 (참고 14). 제한된 인력과 설비를 감염자의 중증도에 따라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정책이 지금 무엇보다 중요할 것 같습니다.


 더 필요한 곳에 자원을 보내기 위해서는 이전까지 해오던 고강도 봉쇄정책은 어느정도 포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확진자 동선을 일일이 파악해 근방 의심환자를 전부다 검사하는 대처가 얼마나 지속가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경증 환자까지 검사해서 입원시키면 더 치료가 필요한 중증 환자들에게 순서가 돌아가지 않고 사망률이 증가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검사 결과를 기다리다가 사망하신 분들이 몇 분 나왔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일본이 의심환자를 충분히 검사하지 않는 것이 확진자 수를 늘리지 않기 위한 조치라고 폄하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엔 일본 역시 제한된 자원을 중증 환자 검사와 치료에 집중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말했듯 코로나 감염자의 80%는 경증환자이며 독감보다 더 약하게 지나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일정 조건 하에선 코로나19라고 해서 더 위험하게 생각할 필요도, 더 특별히 치료할 필요도 없습니다. 따라서 일본의 선택과 집중 전략이 꼭 나쁘다고 볼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탈리아에서는 경증 환자까지 검사해서 확진하는 바람에 불필요한 공포가 커졌다며 검사범위를 제한하려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참고 15). 우리나라에도 시사점이 있습니다.


 이미 정은경 본부장을 비롯한 전문가들이 완화정책으로의 이행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완화정책은 경증 환자를 방치하는 모양새가 되기 때문에 정치적 부담이 있습니다. 제가 이 글을 쓴 가장 큰 목적도 이것입니다. 코로나 19의 특성상 완화정책을 써도 위험이 크지 않다는 것을 알려 친구들이 안심하고 일상을 영위할 수 있게 도움을 주고 싶었습니다. 정치적 부담을 극복하지 못하고 봉쇄정책을 계속 고집한다면 오히려 더 많은 사망자가 나올 것입니다.




 이제 긴 편지를 마무리하겠습니다. 저는 남아공에 있어서 코로나19의 공포를 실제로 경험하지 못합니다. 언론을 통해, 친구들의 소식을 통해 그 크기를 가늠해볼 뿐입니다.


 하지만 저는 '미지'의 위험이 주는 공포가 위험에 대한 정보가 많아질수록 작아진다는 사실은 확실히 압니다. 저는 지난 몇년간 자료를 읽고, 선별하고, 취합해서 결론을 내리는 훈련을 받아왔습니다. 그리고 마침 역학과 관련된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제가 가진 작은 재능을 통해 미지의 영역을 줄이는 데 도움을 주고자 글을 적었습니다.


 오해를 덜기 위해 덧붙이자면, 제가 실제적 위험까지 간과해도 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전문가들의 조언을 따라 각자 잘 대비하시고 아무 일 없기를 바랍니다. 백신과 치료제 개발이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어 실제적 위험 역시 조만간 줄어들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시민의식을 발휘하고 소외된 사람을 돌아보는 분들께 존경을 표합니다. 방역 당국과 여러 시민들이 합심하여 대응하면 코로나19도 넉넉히 극복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저도 친구들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9년 2월 29일

남아공에서

장영욱 드림




출처 및 참고자료


그림 1 출처: https://www.swissinfo.ch/eng/covid-19_coronavirus--head-shaking-doctors-and-non-hand-shaking-workers/45580772

그림 3 출처: https://www.worldometers.info/coronavirus/coronavirus-age-sex-demographics/ 


참고 1. 한미일 검사 건수 https://www.asiae.co.kr/article/2020022811004319521

참고 2. Martini, M., Gazzaniga, V., Bragazzi, N. L., & Barberis, I. (2019). The Spanish Influenza Pandemic: a lesson from history 100 years after 1918. Journal of Preventive Medicine and Hygiene, 60(1)

참고 3. 중국 통계 신빙성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2002201583035574

참고 4. 북한 상황 https://news.v.daum.net/v/20200225225037523

참고 5. 이란 사망자 https://www.washingtonpost.com/opinions/2020/02/24/irans-government-is-lying-its-way-coronavirus-catastrophe/ 

참고 6. 이란 사망자 속보 https://www.bbc.com/news/world-middle-east-51673053

참고 7. Pandemic 가능성 https://www.theatlantic.com/health/archive/2020/02/covid-vaccine/607000/

참고 8. 전문가 예측 http://www.donga.com/news/article/all/20200227/99896391/1

참고 9. 중국 사례 분석 https://jamanetwork.com/journals/jama/fullarticle/2762130

참고 10. 자기실현적 위기 논문. Radelet, S., Sachs, J. D., Cooper, R. N., & Bosworth, B. P. (1998). The East Asian financial crisis: diagnosis, remedies, prospects. Brookings papers on Economic activity, 1998(1), 1-90.

참고 11. 사망원인 통계 국가통계포털: http://kosis.kr/search/search.do?query=%EC%82%AC%EB%A7%9D%EC%9B%90%EC%9D%B8

참고 12. 중국인 입국금지 반박 http://h21.hani.co.kr/arti/cover/cover_general/48313.html?fbclid=IwAR31Y5tljbwqQ3bbxeYSvO8Y_m7--26XVvGOn4THdMrFOsnf5J0epYi4e-M

참고 13. 자살원인 통계 https://www.mk.co.kr/news/society/view/2019/12/1059626/

참고 14. 완화정책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2002242208028416

참고 15. 이탈리아 검사제한. https://www.yna.co.kr/view/AKR20200228091300009


확진자 통계 1) https://www.worldometers.info/coronavirus/

                    2) https://gisanddata.maps.arcgis.com/apps/opsdashboard/index.html#/bda7594740fd40299423467b48e9ecf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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