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oung Mar 07. 2020

Business as usual

국난(國難) 극복과 자유주의


 며칠 전 영국 수상 보리스 존슨의 CoVID-19 관련 기자회견이 있었다. 내용을 거칠게 요약하면 (1) 감염자 대부분이 경증이며 금방 회복되지만, (2)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으며 영국 확진자도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3) 정부는 이미 준비를 마쳤고 전염병 통제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4) 손 잘 씻어라 이 정도이다.

기자회견 말미에 수상은 이렇게 덧붙인다.


 "For the vast majority of the people of this country, we should be going about our BUSINESS AS USUAL." 

 (여러분 중 대다수는 동요하지 않고 일상을 살아가면 됩니다)


 이어진 전문가 질의응답에서도 낮은 수준의 대응을 시사한다. 때가 되면 "사회적 거리두기" 전략을 시행하겠지만 현재 단계에서 학교를 닫을 필요 없고, 여행제한은 무의미하며, 식료품을 사재기할 필요 없다. 의료 수준이 낮은 곳이 아닌 이상 휴가도 가고 싶으면 가라. 등등.


 기자회견을 보며 '참 영국스럽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Business as usual"은 1차 세계 대전 당시 유명해진 영국의 슬로건이다. 영국은 1차 대전 초기 군인의 역할과 민간인의 역할을 엄격히 구분하여 민간 경제가 받는 영향을 최소화하려 했다. 또한 전쟁 상황에도 국경을 닫지 않고 기업의 생산과 무역에 대한 개입과 동원을 자제했다. 실제 동원 수준은 1916년 총력전(Total War)으로 넘어가기 전까지 다른 참전국에 비해 크지 않았으며 전쟁 관련 지출 증가는 매우 느리게 이루어졌다(자세한 내용은 아래 논문 참조).


 전쟁의 상황에도 민간이 일상적인 경제활동을 영위할 수 있게 놓아둔 배경에는 영국의 오랜 자유주의 전통이 있다. '전쟁의 성공적 수행을 위한 모든 사적 이해관계의 희생'과 '개인의 자유로운 일상생활에 대한 최소한의 개입'이라는 두 가치가 충돌할 때 후자에 우선순위를 두는 것이다. 국가가 공동의 목표를 위해 개인의 희생을 요구할 때에는 반드시 확실한 명분이 있어야 하고 그에 따르는 보상이 있어야 한다.


 영국 정부가 이번에 Business as usual을 강조한 이유는 현 코로나19 상황이 개인의 희생을 요구해야 할 만큼 중대한 사안으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이 국면을 극복하기 위해 여행을 제한할 때 여행객과 여행사가 보는 유무형의 손해, 학교를 닫을 경우 부모가 져야 하는 보육의 부담, 마스크나 식료품 가격을 통제할 때 시장에 발생하는 비효율 등을 감수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변종의 가능성이 있지만 현재까지 밝혀진 코로나19의 특성을 봤을 때 영국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고 본다. 전파력이 높을 뿐 증상이 경미한 경우가 많고 젊고 건강한 사람은 사망에 이를 가능성이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높은 전염성 역시 손을 자주 씻고 감염자와 일정 거리를 유지할 경우 어느 정도 통제가 가능하다. 확진자가 늘어나는 상황에 겁먹을 필요 없다. 의료진과 방역당국은 자신의 역할을 하고, 일반인들은 약간의 조심성을 가지고 일상을 살아가면 된다.




 우리나라에도 시사점이 있다. 발생 초기 바이러스에 대한 정보가 부족할 때에는 최대한의 통제 정책으로 관리하는 것이 맞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실체가 밝혀졌다. 감염을 막기 위한 대응책도 비교적 명확하게 정리가 되었다. 이 상황에서 전염병을 막기 위해 개인의 희생을 계속해서 요구하는 것이 옳은지 고민해야 한다. 여행을 제한하고 각종 모임을 폐지하고 학교 개학을 연기하며 발생하는 손해를 계속 묵과해서는 안된다.


 나는 이번 코로나19 상황이 우리나라의 전체성을 명확히 드러낸다고 본다. 개인이 질병의 위험을 평가해서 어느 정도 감수할지 결정하면 되는 일을 모두가 같은 행동을 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비난이 가해진다. 정당한 비판도 있지만 과한 비난도 많다. 특히 국가가 나서서 개인을 비판하는 것은, 심지어 공권력을 통해 제재를 가할 때는 지금보다 훨씬 더 신중해야 한다.


 신천지 얘기를 안 할 수 없다(이만희 개**. 인증 완료). 신천지 신자들과 모임을 통해 전염이 가속화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환자를 비난할 수는 없다. 이 질병은 감염 초기 바이러스 배출량이 많아서 증상이 약한 경우에도 전염성이 크다고 알려졌다. 감염자가 본인의 증상을 심각하게 판단 안 하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병을 옮기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특히 질병이 잘 안 알려졌던 초기에 다수의 사람을 만나며 전파자가 된 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할 수는 없다.


 환자에게 비난이 집중되는 이 때에 신천지 신도들의 명단을 다 공개하라고 압박하는 것 역시 개인의 자유에 대한 심각한 침해로 보인다. 신천지가 협조를 잘 안 한다고 몰아가며 몇몇 정치인들은 심지어 이만희를 검찰에 고발하고 법무장관은 압수수색을 공개적으로(!) 지시한다. 이건 자유주의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검찰의 무리한 수사를 저지하겠다는 문재인 정부가 할 일은 더더욱 아니다.


 입국 제한도 마찬가지. 중국에 대한 입국 제한을 최소한으로 하며 상황을 잘 관리해 왔던 정부가 유독 일본에 대해서만은 상호주의를 내세운다. 국제공조를 통한 방역 효율성의 극대화라는 원칙을 세웠고 지금껏 욕먹으면서도 잘 지켜왔으면, 일본이든 영국이든 누가 우리 국민에 대한 입국 제한 조치를 가해도 우리는 일관적인 원칙을 지키며 설득해갔어야 한다. 정보의 투명한 공개와 각국 방역 당국 간의 긴밀한 협조, WHO를 통한 공동 방역이 이 난국을 타개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아니었나? 일본과의 외교적 수싸움이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우선할 수는 없다.




 Business as usual이라는 구호 아래 연합국은 물론 중립국들과의 자유무역을 지속했던 영국은 결국 전쟁에서 승자가 된다. 경제적 역량이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전면전 상황에서 영국은 일정수준의 생산성을 유지한 동시에 외부에서 지속인 공급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영국은 개인과 기업이 일상적인 경제활동을 계속할 수 있게 함으로써 전쟁이 국가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했다. 그리고 자유주의의 원칙을 지키는 게 국난을 극복하는 데에도 도움이 됐다.


 지금 코로나19 국면도 같은 상황이 아닐까 싶다. 의료진과 방역당국은 그들의 역할을 하게 하고, 일반인은 각자 생활영역에서 조심하되 불필요한 희생을 요구받아선 안 될 것이다. 국가가 희생을 강요할 때 제일 먼저 나락으로 떨어지는 건 벼랑 끝에 서있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모든 개인의 생명은 소중하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Business as usual 이다.


---


 덧. 전 개인적으로 남아공에서도 한국뉴스만 보는 국가주의자이자 민족주의자고, 신천지의 행태와 일본의 행태에 오랫동안 분노해온 평범한 시민입니다. 하지만 제 주변에 자유주의의 목소리를 찾아보기 어려운 이때에, 신천지 때리고 검찰 때리고 일본 때리는 사람들이 진보라 불리는 이때에 제가 침묵하면 부끄러움을 견디지 못할 것 같아 한마디 더합니다. 부족한 부분에 대한 지적은 언제나처럼 환영입니다.



표지그림 출처: https://www.manchestereveningnews.co.uk/in-your-area/gallery/eight-fascinating-first-world-war-7838538 


보리스 존슨 기자회견 영상 링크: https://www.bbc.com/news/av/uk-51717746/pm-uk-well-prepared-on-coronavirus 

기자회견 전문 및 질의응답 요약: https://news.sky.com/story/live-boris-johnson-set-out-governments-coronavirus-plans-11948423


출처 1. Broadberry, S. and Howlett, P., 2005. The United Kingdom During World War I: Business as Usual?. The Economics of World War I, pp.206-234.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