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테일이 차이
나는 괜찮은 '나'로 살고 있을까?
20대 회사를 다닐때 늘 최고의 것만 찾는 과장님 옆에서 일했다. "왜 백화점 화장품을 쓰세요? 10배나 비싼데." 내 질문에 과장님은 말했다. "10배가 비싸다고 10배의 효용가치를 하지는 않아. 하지만 2배 정도만 효과를 낸다고 해도 나는 그 비용을 기꺼이 지불해. 지금의 작은 차이가 시간이 흐르면 더 큰 차이를 만들거든."
그때 나는 그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미혼에 돈도 없었던 내게는 그저 사치로 보였다. 시험관 시술을 위해 가장 유명한 교수님을 찾아다니느라 잦은 조퇴를 하던 과장님을 보며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다.
30대가 되어 대치동에 사는 또 다른 과장님 옆에서 일했다. 일할 이모님을 구하는데 면접 시간을 내느라 골치 아프다고 했다. "면접 볼 때 택배 박스를 갖고 오는 분인지, 현관의 신발을 정리하는 분인지, 그런 사소한 데서 태도가 보여." 이모님을 채용한 뒤에도 오히려 이모님 비위를 맞추며 지낸다는 얘기도 이해되지 않았다. '본인이 편하려고 이모님을 불러놓고 왜 또 이모님 때문에 골치 아프다는 거지?'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아이의 동선에 맞춰 학원을 세팅하고, 점심을 배달 앱으로 주문하며 회사 밖에서 자주 통화하는 과장님을 보며 '그럴 거면 차라리 집에 있는 게 낫지 않나' 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집에 있으면 아이와 실랑이하다 둘 다 힘들어져"라고 말했다. 아이는 어린데도 엄마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때 나는 내 집 마련을 위해 고군분투 중이었는데, 과장님은 "화장실이라도 강남에 사"라고 조언했다. 당시에는 그저 허황된 말로 들렸다. 10년이 지난 지금, 그때 강남의 작은 평수를 살 수 있었던 돈으로 나는 아무 집도 가지지 못하고 있다. 두 과장님에게서 '가성비'에만 매달리는 삶이 얼마나 비싼 대가를 치르게 하는지를 이제야 깨달았다.
디테일이 쌓여 삶을 만든다
나는 여전히 집이 없고 부자가 되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의 삶은 '가성비'라는 가치에 매몰되지 않고, '본질'에 투자하는 삶이었다. 그들이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겉으로 보이는 가격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효율과 시간의 가치였다. 10배 비싼 화장품이 2배의 효과를 낸다면, 그들은 나머지 8배의 비용으로 '미래에 더 큰 차이를 만들 시간'을 사는 것이었다. 이모님을 고용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모님 비위를 맞춰가며 쓰는 '고통'의 비용을 지불하더라도, 아이와의 불필요한 마찰을 줄이고 자신의 시간을 확보하는 데 집중한 것이다.
'이 정도면 괜찮겠지'라고 생각했던 나의 삶은 결국 더 큰 비용과 노력을 초래했다. 아이를 키우며 더 절실하게 느낀다. "이번만 아이스크림 사줄게"라고 허용했던 그 순간은 '이번만'이 되지 않는다. 아이는 "그때는 되고 왜 지금은 안 되냐"고 말하며 논리적으로 맞선다. 일관되지 않은 태도는 결국 나와 아이 모두 힘들어지는 싸움이 된다.
이것은 나의 삶의 태도와도 같다. 목과 어깨가 항상 아파 병원에 가면 의사는 "30분에 한 번씩 스트레칭 하세요"라고 말한다. 나는 그 사소한 디테일을 일상에서 실천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 작은 습관이 쌓여 몸의 큰 차이를 만든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결국, 성공은 특별한 능력보다 꾸준한 성실성과 일관성에서 나온다.
어쩌면 우리가 경험이나 책에서 인사이트를 얻는 것은 남들이 보지 못한 디테일을 인지하고 매일 바로잡아가기 위함일 것이다. 나는 늘 많이 깨닫는다고 생각했지만, 기록하고 성찰하지 않으니 나의 삶에서 실제로 변하는 것이 없었다.
삶은 거대한 파도에 휩쓸리는 일이 아니라, 매일의 사소한 선택들이 쌓여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오늘 나는 다시 묻는다. 나는 '괜찮은 나'로 살고 있을까? 내 삶의 디테일을 채워가고 있는가?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고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