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적인 C 유형이 타인을 인정하는 법
나는 마흔 살, 육아휴직 중인 두 아이(7세, 4세)의 엄마다. 회사에서는 늘 내 루틴대로, 논리대로 움직이는 것이 익숙했고 그 안에서 안정감을 찾았다. 하지만 육아휴직이라는 인생의 공백은 나에게 새로운 숙제를 안겨줬다. 바로 나를 제대로 아는 것이었다.
MBTI도 겨우 익숙해졌는데, 얼마 전 나는 DISC 행동 유형 검사를 처음 해봤다. 그리고 나의 성향이 'C(Conscientiousness: 신중함, 분석가)'라는 것을 확인했다. 아, 내가 그렇게까지 까다롭고 분석적인 사람이었구나, 하고 새삼 나를 객관화할 수 있었다.
'C'의 딜레마: 왜 내 논리를 이해 못 하지?
'C' 성향의 핵심은 정확성과 논리다. 나는 모든 일에 높은 기준을 적용하며, 실수를 용납하지 않으려 애쓴다. 어떤 결정을 내릴 때도 감정보다는 데이터와 논리적 근거를 꼼꼼히 따져봐야 직성이 풀린다.
이러한 분석적인 성향은 나에게 큰 강점이 되기도 했지만, 동시에 인간관계에서 깊은 괴로움을 안겨줬다.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나는 이런 의도로 논리적으로 이야기했는데, 상대방은 그것을 전혀 다른 의도로, 때로는 감정적으로 받아들일 때"였다.
'내 이야기가 왜곡됐어.' '왜 내 명확한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는 거지?'
나는 늘 모든 상황이 통제 가능하고 예측 가능하길 바라는 'C'였기에, 상대방의 반응까지도 내가 원하는 '논리적 정답'으로 나오기를 무의식적으로 기대했다. 내가 던진 완벽한 A가 상대방에게 B나 C로 돌아올 때, 나는 소통의 통제권을 잃은 듯한 깊은 좌절감에 빠졌다. 상대방의 그 다른 반응이 나를 향한 무시나 공격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나는 이렇게 나의 질서가 타인에게 함몰되거나 침범당하는 것을 가장 두려워했다. 나의 논리적 세계가 깨지는 것이 싫어서, 늘 나만의 틀 안에 머물렀다.
통제의 환상에서 벗어나, '수용'이라는 평화를 얻다
하지만 육아휴직을 하면서 만난 새로운 경험들은 나에게 뼈아픈 깨달음을 줬다.
상대방은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영역이라는, 지극히 당연하지만 인정하기 힘들었던 진실 말이다.
나는 이 사실을 철학적 수용의 관점에서 보기 시작했다. 상대방의 반응이 내가 원하는 그림이 아닐 때도, 그것이 나를 향한 평가가 아니라는 것을 분리해 낼 수 있게 된 것이다. 평가에서 자유로워졌다.
내가 원하는 반응이 나오지 않아도, 그것은 그 사람의 성향과 가치관, 살아온 맥락이 만들어낸 '그 사람의 그릇'인 거다. 이 다름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니 마음이 훨씬 편해졌다. 소통의 목적을 '상대방을 설득하거나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고유한 존재 방식을 이해하는 것'이었다. 더 이상 상대방의 반응을 내 논리의 잣대로 재단하지 않게 되었다.
요리 모임과 배드민턴 코트에서 만난 '타인의 그릇'
육아휴직 중 나는 내 성향과는 조금 다른 도전을 했다. 보통 혼자 일하고 내 성향대로 움직이던 내가, 새로운 그룹인 요리 모임과 배드민턴 모임에 참여한 것이다.
이 모임들은 나에게 다채로운 계층과 성향의 사람들을 만나는 창구가 되어줬다. 'C'인 나와 달리, 활발한 'I(사교형)', 단호한 'D(주도형)', 혹은 느긋한 'S(안정형)'의 사람들을.
물론 같은 취미(요리, 배드민턴)가 있었기에 나이 장벽은 쉽게 무너졌다. 하지만 내가 깨달은 진정한 장벽은 따로 있었다.
중요한 것은 나이가 아니라, 성향의 차이와 살아온 가치관의 차이, 즉 그릇의 차이였다.
어떤 사람은 즉흥적인 감으로 요리를 했고, 어떤 사람은 규칙에 얽매이지 않고 운동을 즐겼다. 과거의 나라면 속으로 그들의 방식에 점수를 매기고 '효율적이지 않다'고 평가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그들의 다름이 '틀림'이 아니라 '그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임을 보게 되었다. 그들의 '그릇'을 내가 가진 'C'의 잣대로 함부로 재단할 수 없다는 것을 겸허히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나의 '함몰'에 대한 두려움은 '타인의 고유함'에 대한 존중으로 바뀌었다.
'나'를 지키면서 '다름'을 존중하는 법
나의 이 여정의 최종 결론은 이것이다.
다름을 인정하는 것, 그리고 타인을 평가하지 않는 것.
이는 타인에게 나의 논리적 잣대를 들이대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나의 내면의 평화를 지키는 가장 성숙한 방법이었다.
40세의 육아휴직 기간은 나에게 단순히 아이를 돌보는 시간이 아니라, 엄격했던 분석가 'C'인 나의 마음의 그릇을 넓히고, '나'와 '타인'의 존재 방식을 재정의하는 철학적 휴가가 되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