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이 아닌, 아이의 '세계'를 짓는다는 것
나는 자타 공인 ‘이사 전문가’였다. 10년간 다섯 번의 이사를 했으니 말이다. 그때의 이사는 그저 생활의 변화, 혹은 더 나은 투자를 위한 ‘공간 이동’에 불과했다. 이삿짐센터와의 조율, 가구 배치, 새 동네 탐색 등은 마치 잘 짜인 프로젝트의 체크리스트를 지워가는 듯했다. 스트레스? 물론 있었지만, 통제 가능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여섯 번째 이사를 앞둔 지금, 마흔 살의 나는 크나큰 스트레스 앞에서 무너졌다. 두 딸, 일곱 살과 네 살의 엄마가 된 후의 이사는 차원이 달랐다. '크나큰 스트레스'라는 말로는 부족하다. 이것은 내 삶의 통제권을 잃을 것 같은 ‘예측 불가능성에서 오는 불안’이자, 아이들의 미래 환경을 완벽하게 세팅해 줘야 한다는 ‘책임감의 무게’였다.
40세 엄마의 '효율' 딜레마와 불안의 근원
스트레스의 근원은 명확했다. 고려할 변수가 하나 더 추가된 것이 아니라, 모든 변수의 최상위에 ‘아이의 학교’가 놓였기 때문이다.
현재 거주 중인 동네는 회사와 가까워 출퇴근은 편했으나, 학원이 없어 모든 교육 관련 활동을 ‘라이딩’으로 해결해야 했다. 매일 차 안에서 허비하는 시간, 기름값,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들의 피로. 나는 이 비효율을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새 집을 선택하는 기준은 명확했다. 아이의 초등학교가 가깝고, 학원들이 밀집된 동네, 이른바 ‘학세권’. 새로운 동네에 임장을 다니고 후기를 찾아보면서, 나는 무의식적으로 ‘효율’이라는 잣대를 들이댔다. 남편의 동선, 나의 라이딩 시간 절약, 그리고 자산의 가치... 이 모든 것이 마치 4인 가구 최적의 포지션을 찾아내는 경영학적 문제처럼 느껴졌다. 어떻게 하면 이 가족 구성원이 가장 적은 노력으로 최대의 성과를 낼 수 있을까.
이러한 접근은 심리학적으로는 나 자신의 ‘불안 회피 행동’이었다. 학세권을 찾아 아이에게 최상의 교육 환경을 제공한다는 확신을 갖는 것은, 사실 ‘나는 엄마로서 최선을 다했다’는 심리적 안도감을 확보하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이 노력이 아이들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불안한 나 자신을 위한 것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타인의 얼굴: 아이들의 '세계'를 마주하다
전세냐 매매냐, 일생일대의 가정 최대의 고민을 앞두고 나는 계속해서 ‘가족 구성원에 대해 생각’했다. “4식구가 어디를 위치해야 가장 효율적인가?” 나는 끝까지 성인 중심의 공리주의적 사고를 버리지 못했다.
며칠 밤을 잠 못 들고 고민하던 중, 문득 새로운 동네의 놀이터 벤치에 앉아있던 순간이 떠올랐다. 아이가 없는 이사는 집의 크기와 인프라를 봤지만, 아이와 함께하는 이사는 달랐다. 임장을 다니며 내가 보았던 것은 '평당 가격'이나 '학원 간판'이 아니라, '그 동네 아이들의 웃는 얼굴'이었다. 학교를 마치고 친구들과 왁자지껄 걸어가는 아이들, 놀이터에서 모래를 만지며 깔깔거리는 네댓 살 아이들의 모습.
그때, 머리를 망치로 맞은 듯했다. 효율? 최적화? 아니다. 이 집은 아이들의 ‘세계’가 될 곳이다. 일곱 살 첫째에게는 ‘첫 학교와 친구들의 기억’으로, 네 살 둘째에게는 ‘세상을 향한 호심’을 키울 놀이터로 남을 공간.
나는 마침내 어른의 세계에서 벗어나, 아이들의 실존(Existence)을 중심에 두기로 했다. 나의 계산과 효율성을 내려놓는 순간, 거대한 스트레스가 눈 녹듯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가족 구성원의 효율적인 위치’가 아니라, ‘아이들 각자의 행복과 성장’이 유일한 기준이 되어야 한다.
내가 찾아야 할 것은 완벽한 ‘학군’이 아니라, 아이들이 스스로 안정감과 소속감을 느끼며 스스로 자라날 수 있는 터전이었다.
새로운 기준이 만든 집
오늘 나는 부동산임장을 가려고 한다. 온라인 임장에서 얻을 수 있는 인사이트와 현장에서 보는 것은 다를 것이다. 그리고 매번 혼자했으나 남편과 함께 하려고 한다. 당신의 집은, 당신의 효율을 위한 공간인가요, 아니면 아이의 세계를 담아낼 그릇인가요? 육아휴직 40세 엄마의 여섯 번째 이사는 마침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