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이칸런(圍看人)과 훈수(訓手)꾼

by Morpheus

고색(古色)이 찬연한 최씨네 종가의 고래등 같은 기와집 뒤편에는 몇 백년의 세월을 지켜 온 고목들이 하늘을 찌를듯이 병풍처럼 둘러 쳐 있고, 그 중 가장 굵고 높은 나무 아래에 넓다란 반석이 놓여있다.

어렸을 때에는 그 반석에 누워 낮잠을 자기도 하고 동무들과 꼰*을 두곤 했다. 그런데 그 반석을 차지하기가 쉽지 않았다. 왜냐하면 대개는 어른들이 종일 바둑이나 장기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주위를 빙빙돌다 말등처럼 굽은 물포구나무에 올라 놀았다. 장기를 두는 어른들 주위에는 사람들이 모여 여간 시끄럽지가 않았다. 훈수꾼들 때문이다.

차(车)로 밀어버려야 한다니, 포(包)를 떼야 한다니 하며 여간 난리가 아니다. 장기를 두는 사람들 보다 훈수꾼의 목소리는 항상 더 높았다. 그리고는 나중에 편들었던 사람이 지게되면 훈수꾼과 싸움이 벌어진다. 쓸데없이 훈수를 두었다고...

훈수꾼이 훈수를 두는 까닭은, 장기판이 끝나면 진 사람이 막걸리를 사야하는데, 장기에 이긴 사람에게 훈수를 둔 사람은 막걸리 한 잔이라도 얻어 마시기에 덜 미안하다. 장기판에 이긴 사람은 기고만장 하다. 훈수꾼은 자기가 훈수를 잘 두어 이겼 다고 생때를 쓰지만 할 말이 길지 못하다. 막걸리 한 잔을 얻어 마시면 "훈수의 보상"은 충분하다. 모내기 판에도 동네 영감님들이 나와 훈수를 둔다. 못줄이 비뚫어졌다니, 논에 물이 많다느니 하며 잔소리를 보텐다. 다 이유가 있다. 새참* 때 막걸리 한 잔이라도 얻어 걸치기에 덜 미안하기 때문이다.

중국에도 훈수꾼과 비슷한 말이 있다. 소위 "웨이칸런(圍看人)"이다. 자동차 사고나 화재 현장, 아니면 싸움판이 벌어지면 주위에 둘러서서 구경하는 사람들이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그렇지만, 중국인들은 구경하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 최고의 구경꺼리는 불구경 과 싸움구경이라든가? 물론 당사자가 아닌 경우다. 그런데 웨이칸런(圍看人)들은 철저 하게 제삼자(第三者)의 입장을 견지한다. 이해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고 현장 에 공안(公安)이 출동하면 당사자들 보다 먼저 웨이칸런(圍看人)에게 사건의 경위(泾渭)를 들어본다. 사건의 당사자들의 주장보다 이해 관계가 없는 제삼자의 시각과 견해를 듣기 위함이다. 어쩌면 공평한 처사일지도 모르겠 다.

요즘은 세상살이가 너무 각박하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고 지낸다. 지하철에서 너무 시끄럽다고 말하는 노인에게 욕설을 하며 대드는 젊은애들이 있어도 아무도 관심이 없다. 모두가 데면데면하다. 막걸리 한 잔이면 충분했던 훈수꾼들의 목소리가 그리워지는 시대를 살고있다.

*꼰: 고누의 방언. 경상 충청 제주지방 등
*새참: 일하다 잠시 쉬면서 먹는 음식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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