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드는 날이면 장독대의 옹기들 뚜껑은 여지없이 열린다. 장독이 열려있지 않은 날이면 할머니의 잔소리가 길어진다. 장독들은 파란 모기장 그물이 씌여진다. 파리들이 쉬를 깐다고 할머니는 여간 신경을 쓰지않으신다. 장독에 물을 끼어얹고 닦고 또 닦으신다. 햇빛에 옹기들이 언제나 반들거렸다.
시골집에서 장독대는 엄중한 보호를 받았다. 집을 지을 때부터 장독대의 위치는 신성한 자리로 터를 잡는다. 뒷간에서 멀리 떨어진 우물가 양지바른 곳이 장독대의 명당이 된다. 높지않게 축대가 세워지고 냇가에 모나지 않은 돌맹이들이 축대에 깔린다. 그 위에 크고 작은 달덩이 같이 복스런 옹기들이 모셔진다.
장독대의 지위는 초가지붕의 용마루처럼 남다른 대우를 받는다. 장독대에는 온갖 신(神)들이 살고 있다. 삼신(三神)할머니도 살고 역신(疫神)과 두신(痘神)도 산다. 장독은 할머니의 정화수(井華水)의 진설대(陳設臺)가 된다. 할머니는 장독위에 맑은 우물물 한 사발을 진설하고 밤새 자손번창과 성공을 손이 닳도록 빌고 또 빌었다.
장독대는 대를 이어 내려간다. 할머니의 장독대가 어머니에게 이양(移讓)되고 다시 며느리가 받는다. 눈비를 맞으며 장독 속의 맛은 세월따라 발효(醱酵)되고 전수(傳受) 되며 익어간다. "모든 맛의 원천(源泉)은 장독대로부터 나온다"라는 옛 할머니의 선언(宣言)은 오늘날에도 유효한지 분명치가 않다.
도시화가 급속도로 발진(發進)하면서 장독대는 우물곁을 떠나 창고 위의 빈터로 올라갔다 다시 옥상으로 쫒겨갔다. 대가족제의 붕괴와 가족분화는 결국 옹기 대신 플라스틱을 선포하고 양지바른 장독대 대신 차가운 얼음 창고를 채택했다. 할머니의 "맛의 원천 선언"은 대기업의 소품종 대량생산으로 변천되며 맛의 다중화 (多衆化)가 대세가 되었다.
장독대가 사라지자 봉선화며 채송화 맨드라미가 피고지든 우물 옆 자그마한 화단도 자취를 감추었고, 장독 위에 호르르 날아와 재잘대던 참새며 뱁새도 간곳이 없다. 함박눈이 소복히 쌓였던 장독 위의 정겹던 겨울은 신년인사 카드에나 볼 수 있다. 옛것을 익혀 새것을 안다는 온고지신 (溫故知新)도 옛말이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