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에 시골에는 단것이 참 귀했다. 단것 중에 최고는 단연 꿀이었다. 그러나 꿀은 평소에 접할 수 있는 단것에 해당되지 않고 희귀한 약재급으로 취급되었다. 꿀단지는 항상 할아버지 방의 높은 시렁 위에 감춘 듯이 보관되기 때문에 할아버지 결재 없이는 감히 접근이 힘들었다.
결재의 조건 중에 한 가지는 목이 아프다거나 열이 날 때였다. 할머니가 곁에 계실 때면 할아버지의 처방전(處方箋)은 쉬이 발급 되었다. "아이고, 목이 많이 부었네" 이 한마디에 할아버지는 먼지가 뽀얗게 쌓인 시렁 위에 모셔둔 꿀단지를 내리신다. 먼지를 훅하고 불고 뚜껑을 열면 창호지가 칡끈으로 동여매여진 단지 속에 진갈색의 꿀이 반짝인다.
목이 아픈지 아닌지는 뒷전이고 그 찐한 꿀맛에 황홀하다. "삼키지 말고 목에 넣고 있으라"라고 할아버지의 엄하신 경고에도 불구하고 꿀은 이미 넘어간 후다. 할머니가 조금 더 주라고 하셔도 할아버지의 처방은 절대 바뀌지 않는다. 옆집 삼촌댁 아이들 합쳐 열 손가락 보다 많은 손주들을 책임진 할아버지의 꿀단지 재고 관리는 엄격하다. 가끔씩 꾀병으로 꿀처방을 받으려다 혼날 때도 있었다.
설날이 다가오면 할머니와 엄니가 제사상 준비하는 힘든 일 중에 하나가 조청을 만드는 일이었다. 제사상에 한과를 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고두밥을 보리싹을 틔워 말린 엿기름으로 삭여 밤새 장작불에 고아서 만들어냈다. 꼬박 하루가 걸렸다. 그 조청 한 숟갈 얻어먹으려고 장작불 때는 부뚜막에 앉아 밤을 새운 적도 있었다. 한과를 만든 후에 남은 조청은 또다시 할아버지의 엄중한 관리품목으로 지정된다.
꿀과는 달리 조청은 인센티브나 보너스 재료로 사용하셨다. 그런데 할아버지의 조청항아리 관리는 공개된 원칙은 없었다. 할아버지의 기분에 많이 좌우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주로 여름철 보리밭 깜부기 뽑기나 가을철 타작 때에 볏단 나르기를 한 후에 한 숟갈씩 입에 넣어 주셨다.
가끔씩은 "옛다, 한 숟갈 더 먹어라"라고 하시며 인심을 쓰신다. 할아버지의 재량권 (裁量權) 발동으로 보았다. 손주들이 볼 때에는 "할아버지 마음대로"로 보였으나 뭔가 원칙은 있어 보였다. 할아버지의 되는 것과 되지 않는 것의 경계선은 분명했기 때문이다. 할머니의 되는 것과 되지 않는 것의 경계선은 되는 쪽으로 많이 기울어져 있었다. 지금도 잡힐듯한 어느 자그마한 산촌의 하늘 아래 있었던 일인데 벌써 칠십여 년이 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