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뜨내기인생 스토리
어스름이 내려 제법 어둑했다. 들일 나갔다 돌아오는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읍내로 나가는 샛길로 접어들었다. 개울을 따라 내려가다 산비탈에 이르니 인적이 없어 으스스했다. 송죽이 생각에 종종걸음이 급했다. 전에 일했던 국밥집에서 저녁 일을 거들어주고 식당 뒷방에서 자고 다음날 새벽차로 출발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여름의 끝자락이라 해 떨어지고 나니 제법 선선한 기운이 돈다. 송죽이 모(母)는 마음은 급하고 종종걸음을 쳤으나 머릿속은 줄곧 송죽이를 데리고 갔을 '그 인간' 생각이 가득했다.
미영이는 대전시내 변두리 고아원에서 박기태를 포함하여 십여 명의 고아들과 어린 시절을 함께 살았다. 어느 독지가(篤志家)가 운영하던 그 고아원은 재정이 좋지 않아 원생들을 이곳저곳으로 취업을 시켜 내보냈다. 당시에 열대여섯 살 되는 아이들이 일을 할 수 있는 곳은 많지 않았다. 여자아이들은 여유 있는 집에 가정부로 들어가 숙식을 제공받고 청소나 어린애를 돌보았고, 남자아이들은 구두닦이나 신문팔이가 고작이었다. 고아가 아니더라도 가난한 집 애들은 그런 일을 많이들 했다. 개천에서 용 난다고 신문팔이하면서 공부하여 사법고시에 합격하던 그런 시대였다. 힘들고 고단한 시대였으나 희망도 있었다.
미영이는 원장의 소개로 숙식이 제공되는 부잣집 식모로 들어갔다. 몸은 편했으나 사람 취급받지 못하는 종이나 다름없는 삶이 처량했다. 거기다 그 집 도령들 추근거림에 견디지 못하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 후 주로 식당을 떠돌며 힘들고 고단한 세월을 보냈다. 고아원을 나와 암흑 같았던 세월을 어떻게 살아냈는지 모르는 사이 미영이는 성인이 되어있었고, 어떻게 찾았는지 기태를 다시 만났다. 기댈 곳 하나 없는 세상에 둘은 금방 가까워졌고 이심전심으로 서로의 체온으로 서로를 덥혔다.
먹을 것도 풍족하지 못했는데 기태는 원생 때부터 덩치가 컸다. 그래서 한두 살 차이인데도 다른 애들보다는 듬직했고 말이 묵직했다. 자그마한 미영이에게 기태는 원생 때부터 항상 바람막이와도 같았다. 기태도 말은 하지 않았으나 아릿한 마음을 품고 있었던 게 맞았다.
한 식당의 뒷방에서 기태와 미영이가 살림을 차렸다. 식당 주인이 기태의 듬직함을 좋게 보고 둘을 받아주었다. 기태는 낮엔 밖으로 나돌며 공사장 막일이나 시장 바닥의 짐을 나르는 일을 하고 품삯을 챙겨 왔다. 저녁에 들어와서 식당일도 거들고, 가끔씩 술 취한 주정꾼들의 소란을 덩치로 수습하는 역할도 했다. 그럴 때마다 식당 주인은 기태를 든든해했다.
그런데 미영이와 같이 산지가 반년쯤 지난 즈음에 일하러 나간 기태가 돌아오지 않았다. 한 번도 그런 일이 없었던 터라 혹씨 사고 라도 당했는지 미영이와 식당 주인은 안절부절 못했다. 나서서 알아보려야 알아볼 사람도 없었다. 예전에 고아원에서 같이 지냈던 몇몇 친구들을 만난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어디서 무얼 하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하도 고단한 삶을 살고있는터라 더 이상 나쁜 일이 뭐 있겠나 하는 심정으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미영이는 속이 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