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어탕 실소담(失笑談)

미꾸라지 대탈출 스토리

by Morpheus

파란 가을 하늘에 유유자적(悠悠自適)하던 고추잠자리들도 어느새 자취를 감추고, 때 늦게 참며뚜기 몇 마리가 논둑가 마른 강아 지풀 사이를 힘 없이 뛰어다닌다.

음력으로 시월초가 되면 절기상 입동 (立冬) 을 기점으로 날씨가 제법 쌀쌀해지고 뭇 벌래들은 겨울나기 준비에 들어간다.

베어내도 베어내도 끝없이 자라던 논두렁이나 도랑가의 잡초도 생기를 잃고 마른풀로 변신하고 끝내는 농부들이 불을 지펴 태워 버린다. 병충들을 없앤단다.

황금물결로 가득했던 논에는 농부들이 볏짚을 여기저기 깔아 둔다. 내년 농사를 위한 비토(肥土)를 만들기 위함이다.


농부들은 초봄부터 모판을 만들고 모내기를 하고 정성껏 김매기를 하며 자식 키우듯이 벼농사에 여염이 없다.


추수는 농부들의 땀의 결실이고 삶의 희망이 된다.

벼를 베어낸 그루터기 밑을 손을 넣어 뒤집 으면 벌써 겨울나기 동면(冬眠)에 들어간 엄지손가락 보다 굵은 미꾸라지들이 꿈틀 거리며 나온다.

불그스름하게 약이 올라 추어탕감으로 최고란다. 굵직한 미꾸라지 대여섯 마리만 있어도 온 식구가 넉넉하게 한 끼를 먹고도 남을 추어탕을 끓일 수 있었다.


고향 마을 당수나무 아래 오두막에 사는 석촌 댁 노부부가 어느 날 약이 잘 오른 엄청 굵은 미꾸라지 몇 마리를 잡아 가마솥에 넣고 추어 탕을 끓였다.


얼갈이와 시래기며 대파를 듬성듬성 쓸어 넣고 걸쭉하게 추어탕을 끓여 고천댁이며 이웃 몇 집 친구들을 초청하여 추어탕 파티(?)를 했다.

모두가 배를 두들기며,


"오랜만에 영양 보충 했다."


며 석촌댁 부부에게 몇 번이고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다들 돌아갔다.


석촌댁 할멈이 설거지를 하는데, 추어탕에 들어갔어야 할 미꾸라지 놈들이 가마솥 뒤 솥 전에 뛰쳐나와 널브러져 죽어있지들 않는가?

그 놈들이 어둑 컴컴한 부엌에서 눈이 침침한 석촌댁 할멈이 얼갈이를 넣는 틈을 타서 탈출에 성공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장작불이 이글거리는 아궁이 위의 뜨거운 솥 전을 어이 빠져나가려고 탈출을 시도했단 말인가?

석촌댁 할멈이 영감을 불러 솥 전에 눌어붙은 그놈의 미꾸라지들을 보라 한다.


석촌영감이 껄껄 웃으며 겸연쩍게 하는 말이,


"에휴, 어쩐지 오늘 추어탕이 감칠맛이 없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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