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휴, 창피해!"
동지(冬至)를 지나고 섣달로 접어들면 본격적으로 동장군(冬將軍)이 가난한 시골 마을을 점령하기 시작한다.
그 시절 겨울은 삼한사온(三寒四温)이 분명한 때라 기온이 좀 올라가면 비도 가끔 오다가 느닷없이 지독한 한파가 몰려오기 일쑤였다.
밤새 문풍지가 "웽웽" 거리며 우는 날 아침 이면 윗목의 자리끼는 여지없이 꽁꽁 얼어 있었다.
해가 뜰 즈음에는 처마지붕 끝에는 수정 같은 고드름이 발을 치고, 동창(東窓)에는 참새 소리가 유난히도 청량하게 들린다. 어젯밤 내린 진눈깨비가 얼어 앞마당이 번들거린다.
아침밥을 후딱 먹고는 두툼한 책가방을 등에 매고 자전거는 재빠르게 집을 빠져나온다.
"길이 미끄러우니 조심해라"
엄니의 말을 들은 척 만 척 뒤로하고 자전거는 이미 신작로에 접어든다. 학교에 다닌다는 것이 그렇게 즐겁고 신나는 일이었다. 학교에 가지 못하고 지게를 지고 논밭으로 나가는 또래들 보기가 미안스러울 때도 많았다.
세일러복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여학생들이 삼삼오오 걸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아직은 여학생들이 자전거를 타고 등교하는 모습은 보기 힘든 시절이었고, 교복으로 바지조차 허용되는 학교가 드물었다.
그러다 보니 시골의 여학생들은 일찍 집을 나서야 하고 이른 아침 추위를 감당해야 했다. 가방 든 손을 바꿔가며 손을 호호 불 때마다 하얀 입김이 길게 핀다.
여학생들 옆을 지날 때면 페달을 더 빨리 밟아 멋지게 보이려고 바람처럼 스치며 지나간다. 빨리 달리면 달릴수록 찬바람이 세차게 얼굴을 때린다.
그뿐인가? 장갑을 끼지 못한 손가락은 끊어질 듯 시리고 아팠다. 뒤에서 여학생들이
"폼 잡다 동상 걸리겠다."
라는 비웃음이 들리는 듯하다.
그런데 진짜 낭패가 나고 말았다. 자전거 뒷바퀴가 덜커덩하더니,
"쉬~"
하며 바람이 빠져 납작해져 버리는 게 아닌가ᆢ
펑크가 나고 말았다. 아스팔트가 깔리지 않았던 시절이라 신작로에 튀어나온 돌부리에 찍혀 펑크 나는 일이 잦았다.
그 당시 자전거 타이어는 요즘처럼 튼튼 하지도 못했다. 자전거 수리점이 호황을 누리던 시절이었다.
터덜터덜 자전거를 끌고 펑크 때우러 들어갔다. 다행히 시내 입구에는 자전거 수리점이 여럿 있었다. 단골집에 들어서니 주인아저씨가 반가이 맞아준다.
"야, 넌 자전거를 타고 오는 날 보다 모시고 오는 날이 많은 거 같아."
하시면서 껄껄 웃으신다.
펑크를 때우고 있는데 아까 폼(?) 나게 바람처럼 스쳐 지나왔던 그 여학생 무리가 지나가며,
"야 야, 쟤 멀리 못 갔구먼ᆢ"
하며 깔깔 거리며 지나간다.
"아휴, 창피해~"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