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정민 Jan 21. 2020

매일 매일 좋은 날!

'자신을 찾아라'라는 말에 현기증과 피로함을 느낀다고 했다. 도대체 '진정한 나' 가 뭐길래, 그렇게 찾으라고 난리인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이 책을 봐도, 저 책을 봐도 '자아'라는 말이 쏟아지는데 보이만 해도 지겹다고 했다.
"진정한 나가 뭔데요? 난 이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그 자체가 난걸요. 진정한 나는 모르겠고, 그냥 지금처럼 살아가면 안 되나요?"
수년 전에 한참 동안 '스스로'에 대한 고민을 했다고 말한다. 그 과정이 힘들었다고 했다. 안개 자욱한 길 위에 서 있는 느낌이었으려나.
지난한 시간을 보낸 것 같았다. 그 시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듯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이젠 '진정한 나' 같은 건 찾지 않는다고 했다.
그저 살아간다고 했다.
자신에게 주어진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것. 내 앞에 툭 떨어진 현실을 외면하지 않은 채 견뎌내는 것. '진정한 나'는 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지금의 생활에 만족한다고 했다.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굉장히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며, 화가 나고 싫어질 때도 있지만 그래도 내 일이니깐 해 내고 있다고 했다. 그러니 만족한다고.
'만족'이라는 말이 내 귀에 툭 하고 걸렸다. '어느 정도 자신을 찾은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자아실현' 이 말이 거창해서 그렇지 자신에게 만족하고, 내 삶에 기쁨을 느끼면 되는 거 아닌가.

'나다움을 찾아라!'라는 문장을 읽기만 해도 머리가 멍 해졌다. '나다운 게 뭐지?' 그냥저냥 남들처럼 살고 있는데 갑자기 '나다운'걸 찾으라 하니 막막해졌다. 여태 내 앞에 닥치는 현실의 문제에 맞서 잘 지내온 것 같은데.
"더럽게 철학적이네."
온갖 자기 계발서, 에세이를 봐도 '나다움'을 외치니 더 답답하다. 그들은 이미 자신이 원하는 삶을 실현했으니 그딴 소리를 하고 있는 거 아닌가 투정의 말과 동시에 '그럼 나는 지금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가지 지던 때가 나에게도 있었다.
'나는 도대체 누군인가'라는 논제를 앞에 두고 한참을 고민하던 시절이 있었다.
아내로, 엄마로 하루를 지내다 보면 '나'인 채 지낸 시간이 없었다는 걸 문득 깨달을 때가 있다. '내가 밥하고, 설거지하려고 결혼 한 줄 아나!' 하며.
그때 닥치는 대로 읽었던 것 같다. 시간이 나면 책을 손에 잡고 살았다. 오롯이 나에게 시간을 쏟는다는 그 자체가 위안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잘 하는 것, 못 하는 것들을 마구 물었던 것 같다. 나 스스로에게.
그리고 '쓰는 것'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았다. 쓰고 있을 때엔 나 스스로에게 집중할 수 있었으니깐.
그래서 '글을 쓰는 나'가 '진정한 나'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쓸 때만이 나라고. 하지만 차츰 깨달았다. '쓰고 있을 때도 나라고'
엄마로, 아내로 사는 그 삶도,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쓰며 사는 시간도 결국 나인 것이다.
어쩌면 한참 시간이 흘러 '나다움'에 대한 정의를 다시 내릴 수도 있다. 인간인 이상 나는 끊임없이 생각할 것이며, 변화할 것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무엇을 하든 그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바깥이 아닌 안으로 향해있는 삶'
'순간의 기쁨을 놓치지 않는 마음'
'타인이 아닌 나를 위해 묵묵히 버텨내는 인내'

누구나 타인의 삶을 바라보며 초조함을 느끼거나 자괴감을 느낄 때가 있다. 나는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는 것 같은데 내 옆에 누군가는 이미 저만치 앞서나가는 걸 바라보고 있노라면 이 악물고 붙잡고 있던 무언가가 툭 하고 끊기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나는 왜 잘 하는 것도 없고, 좋아하는 것도 없고, 하고자 하는 일도 다 제대로 안되는 거야!' 스스로를 질책한다.
영화 <<일일시호일>>의 주인공 노리코의 삶을 가만히 바라보면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말문이 턱하고 막힌다. 남들처럼 자신 앞에 놓인 삶의 과제들을 해 내며 나름 열심히 살아가는 평범한 스무 살 여자다. 그런 그녀가 토요일만 되면 배우는 것이 있는데 바로 '다도'다. 차를 마시는 예법.
다도는 여자가 배우면 나쁠 것 없다는 엄마의 권유에 사촌 미치코랑 함께 다도를 배우기로 했다.
'일일시호일'이라는 족자가 커다랗게 걸려있는 다도 선생님의 집에서 그녀는 무려 20년이 넘게 다도를 배운다.
그 사이에 노리코는 삶의 많은 좌절을 겪는다. 원하던 회사 취직시험에 떨어지고, 결혼하기로 했던 남자와도 끝내 이별한다. 자신만 참으면 결혼을 할 순 있을 것 같은데 남자의 배신을 눈감아 주는 것이 도무지 용납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남들은 다 결혼을 하는 그 나이에 노리코는 이별을 한다. 다도만큼은 오래 배워 자신 있다고 여기던 찰나, 갓 들어온 신입의 놀라운 다도 재능에 넋을 잃는다.
'아, 난 이것마저 제대로 하지 못하는 거야.' 서른을 막 넘긴 그녀는 그렇게 자신의 삶 한 귀퉁이를 꾹 잡고선 바둥바둥 매달려 있다.
'매일매일 좋은 날'이라는 글귀를 앞에 두고 매주 다도 수업을 듣지만 그녀의 날은 매일매일 좋지가 않다. 자신도 남들처럼 뭔가를 이루고 싶은데 시도하는 것마다 매번 좌절을 겪으니 말이다.
그런 그녀의 마음을 눈치챈 다도 선생은 이야기한다. "가장 추울 때 피는 꽃도 있어요."

한결같은 수업을 24년간 들으며 그녀는 차츰 깨닫는다. '인생의 모든 순간은 단 한 번밖에 없다'라는 사실을.
같은 봄이지만 작년의 봄과 올해의 봄은 결코 같지 않다. 오늘 함께 차를 마시는 이와 내일 또 같이 차를 마실 순 있지만 같은 날은 다시 오지 않는다.
매일 같은 일을 반복하며 살고 있지만 같은 일을 반복할 수 있다는 건 무척 행복한 일이라는 꽃 같은 삶의 지혜.
그녀는 그제서야 깨닫는다. '매일매일 좋은 날'이라는 뜻은 매일 좋은 일이 벌어져야지만 좋은 날인 게 아니라는 것을.
"비 오는 날엔 빗소리를 듣고, 눈 오는 날엔 눈을 보고, 여름에는 찌는 더위에, 겨울에는 살을 에는 추위를 느낀다.
오감을 동원해 온몸으로 그 순간을 맛본다. 매일매일이 좋은 날이란 뜻은 그런 뜻인가!"

자신을 찾지 못했다고, 나만 뒤처진 것 같다고, '자아실현'이라는 말 앞에서 머리를 쥐어뜯고 있지 않아도 된다. 노리코는 40이 훌쩍 넘겨서야 깨닫는다.
"세상에는 '금방 알 수 있는 것'과 '바로 알 수 없는 것' 두 종류가 있다.
금방 알 수 있는 것은 한번 지나면 그걸로 충분하다.
하지만 바로 알 수 없는 것은 몇 번을 오간 뒤에야 서서히 이해하게 되고, 전혀 다른 존재로 변해간다.
그리고 하나씩 이해할 때마다 자신이 보고 있던 것은 지극히 단편적인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

글 쓰는 일을 좋아한다고 생각하여 '프리랜서'지만 작가의 삶을 놓지 않았던 그녀는 자신에게 '이젠 다도를 가르쳐보지 그래요?'라는 다도 선생의 말에 번뜩 깨닫는다.
'어쩌면 지금부터가 시작일 지도 모르겠다'라고.

'나다운 삶'을 살아간다는 건 나에게 주어진 삶을 나만의 속도와 빛깔과 모양과 향기로 살아내는 것이 아닐까. 누군가의 삶에 내 삶을 비교하지 않을 때 비로소 맛볼 수 있는 '나다움'이라는 달콤함.
'자아실현'이란 거창한 무언가를 해 내야지만 주어지는 훈장이 아니라 내 삶을 진심으로 꽉 끌어안아 줄 때 비로소 주어지는 선물이다.

자신의 삶에 '만족'하고 있다는 그녀의 말을 들으며 곰곰이 생각했다.
자신의 삶에 만족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자아실현'의 삶이 아닐까 하고.
'나다운 삶'이라는 뜻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마음을 놓치지 않고 내가 뜻하는 대로 살아가는 이에게 주어지는 따스하고 밝은 빛이라고 생각한다.
우린 각자가 모두 고유한 존재들이다. 삶의 모양새가 똑같을 수 없는 이유는 내딛는 한 걸음에서조차 그 사람의 고유성이 묻어나기 때문이다.
남들이 이루어내는 삶의 속도에 맞춰 살아가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건 나의 한 걸음, 한 걸음을 인정해 줄 수 있는 마음이다. 내 삶의 곳곳에 숨어있는 기쁨을 놓치지 않는 마음. 그렇게 다독인 마음은 내가 생각지 못한 어느 날, 어느 때에 봉긋하고 움트게 될 것이다. 그렇게 나만의 삶은 차츰 내 안에 뿌리를 내릴 것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