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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세 홀로서기 결심하다_3

3. 투쟁으로 얻은 평온이 오래가는 평온이다.

by 정은초


어릴 때는 안전을 위해 소풍을 가도 엄마가 함께 오는 분위기였다. 내가 어릴 때 하필 그 시골 마을엔 이혼이 그리 흔치 않아서 이혼 가정이 나 뿐이였다.

소풍에 따라 올 엄마가 없었다. 할머니는 관절이 좋지 않아서 참석이 어려웠고 아빠는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같은 반 누군가의 엄마에게 부탁 받아 밥을 먹을 떄가 되면 그 집 돗자리 한켠에 내 자리를 마련해서 눈치밥과 함께 할머니가 싸주신 김밥을 먹었다.


내가 무안하지 않도록 이름도 모르는 같은 반 친구의 엄마는 과일도 챙겨주시고 치킨 한조각도 나눠주셨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내가 폐를 끼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가장 첫 기억이 유치원 6살때 소풍이였다.


방학마다 할머니가 힘들지 않도록 나는 셋째고모, 둘째고모 집에 한달씩 머물렀다. 지금 생각하면 고모들은 정말 잘해줬지만 나는 내가 그들의 가족이 아니니 선을 지켜야된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지금도 남에게 폐를 끼치는 게 두렵고 어렵다. 필요 이상으로 미안해하고 죄책감을 느끼기도 한다.

상담을 받아 보니 아무도 내 편이 없는 곳에서 어린 내가 선택한 생존 본능은 자신을 탓하고, 남을 배려하고 미움 받지 않으려 애쓰는 방식이였다. 힘들어도 내가 조금 더 저 사람 마음에 들게 행동해야해, 나의 괴로움과 나의 힘듬을 생각하는 것 보다 남을 생각하고 눈치를 보고 내 행동을 고치는 게 그 때 내가 할수 있는 생존본능 이였다.


지금도 나는 사람과의 갈등을 두려워해서 미리 눈치를 보고 신경에 거슬리지 않게 노력한다. 갈등이 벌어지면 여전히 나는 기댈 곳 없이 불안정한 8살에 내가 되기 때문이다. 상대에게 조금 미안한 일이 생기면 죄책감을 느끼며 더 아부하고 더 그사람을 생각하며 무언가라도 보상해줘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인간관계는 늘 만족시켜야하는 고객을 대하는 감정 노동자 같았다.


이번에 내가 경솔하게 만든 상황과 오해로 인해 상대에게 상처를 줬다고 생각했을 때 엄마가 물었다.

"니가 지금 원하는 게 뭐야?"

20살 이후에 만난 친엄마가 요즘 나를 잘 보살펴주고 있다. 엄마는 항상 내가 생각지 못한 방식으로 깨달음을 주신다.

"엄마 저는 그냥 그 일이 일어나기 전에 평온한 저로 돌아가고 싶어요"

그랬더니 엄마가 그랬다.

"투쟁한 평온이 오래가는 평온이야. 지금 마음이 불편하고 너의 편이 없는 것 같아 불안한 마음에 상대에게 필요 이상으로 미안함을 느끼고 , 과한 요구도 다 받아주려 하는 건 잠시 평온으로 갈 수 있지만 두고 보면 그건 평온할 수 없는 방법이야. 니가 힘들더라도, 너의 기준을 세우고 맞서 싸워 얻어내는 것이 두고두고 너의 평온이 되는거야. 니 편이 없어서 타협하는 선택을 하지마. 이젠 엄마가 있잖아"


싸워도 이길 수 없는 아이 , 아무도 내편이 되어주지 않아서 떼도 쓰지 않고 웃기만 했던 아이로 나는 35세를 살고 있었다. 엄마가 나에게 그런 말을 해주는 게 낯설었다. 나의 어린 시절에 이런 가르침과 기준과 함께 자랐다면 나는 얼마나 건강하고 강한 사람으로 자라났을까.


투쟁으로 얻어낸 평온.

오늘부터 나는 두려워서 회피하고 나의 욕구과 욕망을 포기하며 얻어내는 평온을 안전하다고 느끼지 않을거야.

부딪히고 싸워서 내가 나를 위한 벽을 세워 나를 보호하는 평온을 만들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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