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동정해줘
나는 오래도록 다른 사람의 동정 속에서 안도감을 찾으려 했다. 내 약한 부분을 드러내면 상대가 나를 챙겨주고 떠나지 않을 것이라 믿었다. 그래서 내 모든 것을 털어놓으며 이해받고자 했지만, 사람에 따라 나는 쉽게 평가하거나 가르쳐야 하는 존재로 비쳐지기도 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이해였는데, 상대는 언제나 자기 방식대로 이해하기 마련이었다.
나는 "내가 감히"라는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대할 때 평가보다 이해를 먼저 두려 한다. 사람은 누구나 다면적이고, 때로는 감정에 휩쓸리기도, 필요 이상 냉정해지기도 한다. 한 순간의 모습만으로 그 사람을 규정할 수 없다는 걸 알기에, 나는 단정적인 말이나 평가를 삼가는 편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주변은 달라졌다. 자신만의 내공과 경험이 쌓였다는 확신에서인지, 사람들은 점점 쉽게 타인을 재단한다. 마치 자신의 경험이 곧 진리인 듯, 상황을 단정해 버린다. 그럴 때 나는 상처받는다. 나는 단지 현재의 상황을 털어놓고 싶었을 뿐인데, 너무 쉽게 평가의 말로 잘라버리거나 단면적으로만 이해해버리면, 내 마음은 허무해진다.
곰곰이 돌아보니, 그만큼 남의 평가에 예민했기 때문이었다. 늘 무언가 설명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지니고 살았다. 심지어 꿈속에서도, 나는 아무도 내 말을 믿어주지 않는 상황에 갇히곤 했다. 가족 안에서도 내 목소리는 힘이 없었고, 내 의견은 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스스로를 ‘힘없고 존재감 없는 사람’으로 규정해 버린 듯하다.
그래서일까. 오해를 받거나 공격을 당할 때 이겨낼 자신이 없었다. 결국 나는 약한 부분을 먼저 보여주고 동정을 얻어 갈등을 피해 가려 했다. 하지만 이 방식은 나를 지켜주지 못했다. 약점을 드러낸다는 것은 동시에 공격할 빌미를 제공하는 것이기도 했다.
고양이가 집사 앞에서 배를 까는 것은 신뢰의 표시라고 한다. 배는 뼈로 보호되지 않은 취약한 부분이기에, 오직 믿는 존재 앞에서만 드러낸다. 나는 그와 달리, 늘 아무에게나 배를 까 보이며 “나를 공격하지 말아 달라”고 애원해온 꼴이었다. 하지만 나의 모든 것을 보여줘도 되는 사람은 결국 나 자신뿐이었다.
나는 이제 깨달았다. 나를 이해해 줄 거라는 기대에 매달려 모든 걸 털어놓는 습관은 나를 지켜주지 않는다. 오히려 나를 약하게 만들 뿐이다. 나를 있는 그대로 존중할 사람은 결국 내가 먼저 되어야 한다. 동정을 바라는 마음, 남의 평가에 흔들리며 설명해야만 한다는 강박을 내려놓고 싶다.
홀로서기를 결심한다. 내 약점은 내가 품고 갈 것이며, 이해는 남에게 구걸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에게 줄 수 있는 것이다. 이제 나는 누군가의 동정이 아니라, 나 자신을 지켜주는 힘으로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