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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아 Aug 10. 2020

코로나 톡




다섯 명 여자 친구들의 단톡 방이 있다. 그저 일 년에 한 두어 번 어색하게 생사를 확인할 뿐이었고, 대게는 먼저 말 거는 이가 없어 조용하기만 한 톡방이었다. 다들 미국으로 호주로 그나마 같은 하늘에서도 지방으로 흩어져 살고 있는 친구들이어서 이십 년이 지나도록 다 같이 만날 기회조차 없었다. 한때 가까웠지만 사느라고 세월이 벌려놓은 관계였다.     


‘잘 지내고 있지? 다들 건강하지?’ 코로나가 멀리 사는 친구들의 안부를 묻게 했다. 내일이 불확실해 지자 진한 무기력에 빠져 버린 나는 오전 내내 소파에 드러누워 있다가 심드렁하게 인사말을 던졌다. 사실 걱정이 조금 되기도 하였다. 그런데 반응이 예상치 못하게 폭발적이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진심 어린 염려와 위로가 서로에게 넘쳐나더니 그로부터 몇 달째 톡이 멈추지를 않는다. 시차도 상관없이 각자 눈 뜨자마자 시작되는 이야기들은 날이 저물어 잠자리에 들 때까지 그치지 않는다. 잠시 볼일을 보고 휴대폰을 열어보면 수백 개의 끝도 없는 톡들이 겹겹이 쌓여있을 때도 있다. 


코로나로 예기치 않게 일상적인 쇼핑조차 어려운 곳이 생겨나고, 앞날을 예측할 수 없게 되자 친구들은 필사적으로 톡의 대화를 붙잡고 있다. 서로에게 따뜻한 위로를 보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진심임을 알 수 있다. 톡의 대화에도 그런 진정성은 얼마든지 판단이 가능한 법이니까.     


사실 우리의 대화는 두서가 없고, 그저 다급하게 이어질 뿐이다. 어느새 다 커버린 아이들 근황을 묻다가 대뜸 저녁 레시피를 공유하고, 이십 대 풋사랑 이야기에 깔깔대다가, 혼자만 생각해 온 노년의 계획을 조심스럽게 털어놓는다. 어렵고 견디기 힘들었던 결혼생활은 무늬만 다를 뿐 너나 할 거 없이 겪을 수밖에 없는 필수과목이었다. 아이들 양육에도 저마다 가슴 아픈 실패의 기억들을 가지고 있다. 이젠 건강에 슬슬 자신이 없고, 시간이 갈수록 더해가는 외국생활의 고충들도 솔직하게 다가온다. 살다 보니 잘 살았는지 못 살았는지 점점 더 알 수가 없다고 말한다. 누가 더 멋진 삶의 결과를 만들어 냈는지도 말할 수 없다. 그렇지만 매일매일 열심히 살아왔노라고 친구들은 앞 다투어 이야기한다.


그렇게 톡을 시작한 지 일주일이 지난 후 한 친구가 불쑥 ‘나 이혼했어. 3년 전에‘하고 털어놓기도 했다. 우린 그녀가 힘든 시간을 보낸 것이 안쓰러웠지만 과히 놀라지 않았다. 그리고 쓸데없이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그저 사정이 있었겠지. 그리고 너의 용감한 선택을 지지한다.‘라고 한 목소리로 응원해 주었다. 우리는 이미 삶의 한 방식으로 그녀의 선택을 이해할 수 있는 자세를 지니고 있었다. 코로나 블루로 마음을 활짝 열게 된 친구들은 그동안 만나지 못해서 차라리 단순하고 순수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 같았다. 대화는 근래에 보기 드물게 솔직하고도 편안하게 이어지고 있다. 살아온 세월을 세세히 알지 못했기에 더 귀 기울이게 되고, 어려서의 모습을 알기에 더 깊은 이해가 가능하다.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들이 보고 싶어 졌다. 그리고 멀리 떨어져 살면서 애쓰는 친구들이 나처럼 애처롭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긴 세월이 지나면서 친구들은 멋지게 성숙해 있었다. 


마음이 통했는지 친구 중 하나가 2024년 10월에 만남을 제의했다. 편안한 곳에서 4박 5일쯤 아무것도 하지 말고 살아온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 노년을 시골에서 보내기로 한 친구가 여기가 어떠냐고 자신의 시골집 사진을 보내왔다. 그림처럼 평화롭고 어여쁜 집이었다. 마당에는 커다란 가마솥도 걸려 있었다. 기꺼이 모두가 그곳에서 만나기로 동의했다. 우리는 아침 일찍 일어나 각자 산책도 하고, 듣고 싶은 음악도 듣고, 시골 장터에서 장을 봐 서로에게 맛있는 음식도 해주기로 했다. 가을이 깊어갈 것이니 우리의 삶을 더 깊이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아주 따뜻한 위로의 시간을 서로에게 선사할 수 있을 거 같다.   


기대가 생겨났다. 나는 부디 그 시간이 우리 모두에게 허락되기를 조심스럽게 기원해 본다. 언젠가 코로나도 끝이 날 것이다. 그리고 친구들의 단톡도 시들해질 것이다. 하지만 불안하고 힘들었던 시간 가운데 선물 같았던 코로나 톡은 내내 기억될 거 같다. 지금도 멈추지 않고 톡이 날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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