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실패한 시간의 복기자다.
끊임없이 돌아가는 오토리버스처럼 실패와 슬픔의 시간을 무한 재생으로 복기하는 버릇을 가지고 있다. 좋은 기억은 오래 간직하고, 힘든 기억은 빨리 잊어버리라는 사람들의 충고에도 이 고집스러운 습성을 버리지 못한다. 도리어 그 시간들을 잊어버릴까 봐 자꾸 새기고 떠올리는 것이다.
나름의 이유는 확실한데, 그건 비겁해 지기 싫은 까닭이다. 살면서 빛나고 아름다웠던 시간과 마찬가지로 실패의 시간 역시 그것을 생산해 낸 주역은 나이므로 차마 그 순간을 외면할 수 없다.
어이없지만 가끔은 패전의 증거품과도 같은, 실패의 상징물들을 곁에 두고 자주 꺼내 보기도 한다. 그날의 나를 잊어버리지 않겠다는 의식인 셈이다.
하루에도 십 수 번은 여닫는 부엌 싱크대 위칸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에는 분홍 뚜껑의 작은 약병이 놓여있다. 문을 열 때마다 시선이 향하는 위치에 놓여있는 약병은 보는 순간 자동적으로 움츠러드는 자책을 불러일으키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그 약병을 보며 괴로웠던 시간들을 압축적으로 회고한다.
참으로 악 취미인 것은 휴대폰 사진갤러리에 보관되어 있는 한 장의 사진이다. 길게 꼰 휴지를 한쪽 코에 틀어막은 채 시체처럼 누워있는 내 모습인데, 보는 사람마다 질색을 하지만 지우고 싶은 생각이 없다. 그 사진을 보면 내가 너무 못생긴 골룸 같지만 그런대로 견뎌낸다.
그 외에 지금 봐도 얼굴이 붉어지는 민망한 메시지들이며, 배반의 흔적들은 또 어떠한가!
생각할수록 쪽이 팔리고, 후회가 밀려오지만 꾸역꾸역 복기한다. 나는 내게 일어난 모든 일의 원인이 나 자신에게 있다고 믿고 있으므로, 왜 그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는가를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때로는 생각의 조각들이 너무 먼 곳까지 날아가 뒤죽박죽 엉키기도 하지만 멈출 수가 없다. 시간이 흐르면 기억은 변하기도 한다지만 핵심은 고스란히 남기 마련이어서, 납득할 만한 온전한 이유를 찾아낼 때까지 성실히 되새긴다. 이 무슨 집착 쩌는 습관인지, 고약하게 여겨지지만 고쳐질 것 같진 않다.
그런데 정작 신기한 것은 그런 실패의 기억들이 나를 해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돈의 법칙에 해당되는 것인가?
엉클어지지 않고 차곡차곡 정리된 실패의 기억들은 깨끗하게 세탁되고 정갈하게 개켜졌기에, 기억 서랍 속 명품으로 탈바꿈하는지도 모르겠다.
좋은 추억과 달리 쓰린 기억들은 누구와도 공유하기 어려운 법이다.
매몰차게 버리거나 아니면 내 안에서 내밀하게 화해하고, 쓰다듬을 수밖에 방법이 없다.
버릴 수 없다면 나의 이 짓궂은 방식이 때로는 효과적일 수도 있겠다. 다만 마음을 좀 단단히 먹고, 못돼 먹은 냉담한 감성을 키워야만 기억에 끌려 다니지 않을 수 있다.
객관적일 수 없다면 복기는 왜곡될 수 있기 때문이다.
못나고 삐뚤어진 우리의 아픈 시간들도 어떻게 다독이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독특하고 귀한 나만의 상징으로 재창조될 수 있다. 그저 단순한 반성의 차원은 절대로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실패는 무한정 복기해도 무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