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는 여행을 미친 듯이 사랑한다. 또 하릴없이 매일 빵을 굽는 친구도 있다. 그런가 하면 요가나 피트니스에 인생을 바친 여인들도 심심치 않게 발견된다. 모두들 갈구하는 것이 있는 것이다. 나는 그것들 모두에 관심이 없다. 나는 사실 말장난에 빠져 있다.
말하는 것이 너무 좋다. 단어를 고르고, 반응을 살피고, 함께 공감하는 그 순간이 진짜 재미있다.
머릿속에서 적절한, 도저히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단어들이 튀어 돌아다니고, 문장들이 깜찍한 장난기와 농담으로 포장되어 나올 때 희열은 대단한 것이다. 가끔은 입이 머릿속의 단어들을 쫓아가지 못해 서로 뒤엉켜 버릴 때도 있다. 점프를 계속하다가 버버 거리게 되는 것이다. 순간 내가 작두를 타고 있나 하고 느낄 때도 있다. 그것은 수다라는 단순한 행위의 이상이다. 전율이 느껴지고, 이미 내 마음은 머나먼 안드로메다로 날아가 있다.
문제는 대상이다. 대상을 만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의외로 농담을 싫어한다. 유치하다고 생각하거나,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느끼고, 때론 시간낭비라고 질책한다. 가끔은 성숙된 어른들의 모임에서 분위기 파악 못하고, 말장난의 유혹에 빠져 내 멋대로 떠들어 버리는 실수를 범하기도 한다.
그러다가 정신을 번쩍 차리고 사람들의 시선을 살펴보면 차갑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눈으로 공격당하는 것이다. 그럴 때 나는 재빨리 입을 닫는다. 그리고 평소대로 쭈그리가 되어 구석에 처박힌다.
잘못한 것이다. 같은 실수는 두 번 다시 하면 안 된다. 하지만 이런 식의 분위기 파악은 늘 지리멸렬하다.
친구들이 있다. 나의 농담을 힘들더라도 받아주는 마음씨 좋은 사람들이다. 내가 고등학교를 자퇴한 아들과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친구들은 내게 찾아와 주었다.
평일 한낮, 집에서 가까운 식당들은 무대가 되었다. 마치 연극 같았다. 시간은 한두 시간으로 정해져 있었지만 축복이었다. 당시 나는 늘 갇혀 있었고, 매어 있을 수밖에 없었는데, 학령기의 아들이 집에 혼자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감질나는 시간, 친구들은 나의 농담을 안주삼아 술을 마셨다.
그날의 테마를 좋아해 줄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었지만, 나는 상관하지 않았다. 막이 오르면 나는 입을 털어댔다. 혼자가 아니었고, 친구들도 주연으로 기꺼이 동참했다.
나를 비롯한 우리는 관능을 추종하고 연애에는 목을 매는 입만 살아있는 중년의 여자들이었다. 주제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 내가 흥분할 수밖에 없는 것들 그리고 나를 미치게 만드는 것들 등으로 내 위주 일 때가 많았음을 고백한다. 누구나 그렇듯 나도 내 안에 과격하고 흥미로운 것들이 숨겨져 있다. 때로 반응을 살펴가면서 점점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친구들은 서로의 농담에 취하고 술에 취했다.
그리고는 마지막에는 농담을 주도한 내가 바람잡이라고 했다. 속을 털어놓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는 상관없는 농담지꺼리를 하면서 남에게 펌프질을 해댄다고 비난 아닌 비난을 했다. 하지만 나는 바람잡이가 아니다.
내 머릿속에서 돌아다니는 것들을 끄집어내어 발산하고 싶었을 뿐이다. 현실적인 것은 아니지만 사실이었고 진심이었다.
표현되지 못하고, 쌓여 있는 그것들은 희한한 단어가 되어 튀어나왔다. 농담은 분명히 아름다운 것이고, 다듬을수록 정교 해지는 수준 높은 놀음이다. 그리고 한두 개의 규칙이 반드시 존재한다. 우선 무대와 합이 맞는 배우, 참을성 있는 관객이 있어야만 한다. 불이 꺼지고 무대가 치워지면 나는 입을 굳게 닫았다. 다음 공연을 위한 휴식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그렇게 말을 가지고 신나게 놀았다.
그런데 얼마 전 우연히 젊은 철학 선생의 강의 중에 말은 다른 예술영역과 비교해 월등히 혼에 그 기반을 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영혼에서 나오는 소리가 바로 언어라는 것이다.
나는 듣는 순간 조금 무거워졌다. 나의 농담들이 나의 영혼에서 새어 나오는 것이라면 나는 좀 더 신중해져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광대처럼 맨얼굴을 숨기고 다분화 되어 있었다. 농담들이 나의 내면에서 나오는 것이기는 했지만 때로는 부풀려졌고, 때로는 리드미컬하게 조절되었고, 때로는 상상력으로 보충되었기 때문이다. 반성하기로 하고 농담의 수위를 조절해 보기로 한다. 내 영혼의 보존도 문제지만 친구들도 이제 지겨울 것이다.
농담 수위를 확 낮춰야 한다고 결심하니 따뜻한 커피 한잔이 필요해진다. 사랑해 마지않는 커피머신은 깨끗하게 세척되어 늘 최상의 맛을 제공한다. 한 모금 두 모금 커피를 들이키는 행위는 나에게 숨 고를 시간을 선사한다. 바야흐로 나도 묵직한 여자 어른이 되어야 하는 건가? 길 것으로 예상되는 농담의 휴지기가 시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