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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아 Aug 31. 2020

솔직함의 단계

  



잠이 제대로 오지 않는다. 자다 깨다 했는데, 느낌은 그저 잠시 누웠다 일어난 것 같다. TV를 켜는 시간이 늘어났고, 코로나 이후 습관적으로 뉴스를 본다. 활동량이 줄어서인지 수면의 질이 엉망이다. 그리고 내 앞에 놓인 시간이 많아지자, 안 그래도 멈추지 않는 잡념들이 끊임없이 계속된다.


오전 나절, 친구와 오랜만의 통화를 했다. 그러다 대화 중에 ‘넌 진심이 없어...’라는 말을 들었다. 밑도 끝도 없이.... 갑작스러운 질책에 당황해서 ‘아니야, 네가 못 느꼈을 뿐이지 난 진심, 진심이 한가득이야.’라고 농담조로 얼버무렸다. ‘이 친구가 또 뭔가 심통이 났나?’하면서도 영 기분은 산뜻하지 않았다. 찝찝하게 전화를 끊으며, 산책이나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실외와 실내가 가장 다른 느낌을 주는 계절이다. 실내는 으스스한데, 창밖의 풍경은 따뜻하고 찬란해 보인다. 주섬주섬 옷을 껴입고 집을 나섰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버튼에 쓰여진 숫자를 무심코 보다가 솔직함의 레벨을 생각한다. 솔직하다와 솔직하지 않다의 단계를 10까지로 놓는다면 나의 솔직함은 어느 지점에 멈추어 있을까? 아무리 후하게 쳐봐도 나의 단계는 2나 3 정도의 지점에 머물러 있을 거 같다. 

그러고 보니 친구의 진정성 지적에도 뭐라 할 말이 없다. 늘 나의 솔직하지 못한 태도가 불만일 것이다. 


밖으로 나서니, 변덕 심한 날씨로 영 마땅찮은 봄기운이 바람을 타고 일렁인다. 어디로 갈까 잠시 망설이다 평소엔 잘 가지 않는 집 앞 낮은 산으로 방향을 잡는다. 몇 걸음 떼지도 않았는데, 이리저리 피어난 꽃들이 얼굴을 들이밀며 서로 봐달라고 아우성이다. 마지못해 바라보니, 아닌 게 아니라 아름답긴 하다.      


길을 건넌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난 솔직해지는 것이 늘 두려웠다. 겉으로는 나에게 집중하는 듯 연기했지만, 사실은 상대방이 원하는 것에 나를 맞추는 것이 훨씬 쉽고 익숙했다. 관계의 평화를 위해 그쯤이야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다고도 생각했다. 그런데 그러다 보니 정작 내가 원하는 것은 깊숙이 감춰져 드러내는 것을 어려워하는 사람이 되었다. 감추고 있으니 늘 모호하고, 곁에 있는 사람들은 답답함을 느끼나 보다. 입술만 달싹 일 뿐 한 번에 뱉어내지 못하는 말들은 간절할수록 엉뚱한 말이 되어 나온다. 솔직함은 자신감에 기반을 두기 마련이어서, 나의 못난 열등감이 솔직함을 자꾸 밀어낸다. 그래서 나는 솔직한 성격을 가진 사람에게 호감이랄까 선망 같은 것이 있다. 

  

한 계단, 두 계단, 이 생각 저 생각, 어느새 산은 보잘것없는 정상 내어준다. 정상으로 향하는 계단 중간쯤 사이좋게 앉아 있는 다섯 살가량의 아이들 둘이 보였다. 그런데 가까이 가니 아이들 주변에 의외의 재즈가 흘러나온다. 작은 주머니에 쑤셔 넣은 휴대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었다. 선율과 풍경이 묘하게 어우러져 마치 아이들이 숲에 음악을 선사하고 있는 것 같다. 저 맘 때의 아이들은 존재만으로 시선을 송두리째 빼앗아간다. 아이들에게서 눈을 떼자, 서너 걸음 뒤쳐져 계단을 걸어 내려오는 엄마인 듯 보이는 두 여자의 모습이 보인다. 뭐가 재미난 지 키득키득 웃으며 대화에 빠져있는 그들의 표정에는 또래 아이들을 키우는 동질감이 스며 나온다.





그러고 보니 아들이 저 나이였을 때, 나도 친하게 지나던 아들의 친구 엄마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중에는 놀랍게도 솔직함의 레벨이 8이나 9 정도 되어 보이던 한 여자가 끼어 있었다. 범상치 않았고, 호감을 가질 밖에 없었는데, 나는 그녀의 솔직함에 반해 버렸다. 도저히 타인에게 말할 수 없을 것 같은 가족사부터 사적인 부부 이야기, 자신의 결점까지도 그녀는 별반 친해지지도 않은 동네 엄마들에게 털어놓았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온 이야기였다. 자신이 느끼고 있는 감정을 표현하는데도 거침이 없었으며, 고마움과 서운함도 미루지 않고 그때그때 이야기했다. 


처음에 나는 놀라웠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솔직함은 그 무엇보다 관계에서 큰 힘을 지닌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툭 터놓고 다가오니 모두들 최소한 그녀 앞에서는 솔직해 지려 노력했고, 신뢰는 단단하게 성장했다. 무엇보다 그 모습이 너무 자유로워 보여, 나는 한동안 그녀의 태도를 따라 해 보려 노력했다. 그리고 얼추 비슷한 지점을 한 두어 번 경험해 보기도 했다. 나는 그때 나도 달라질 수 있구나 하고 느꼈다.


그런데 잊고 있었던 걸까? 솔직함은 자유를 선사하고, 열등감을 이긴다는 사실을 알았는데, 또 무엇이 그렇게 겁이나 모호한 행동과 말에 젖어들었던 걸까? 이래서 사람은 참 변하기 어렵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산 정상 공원에는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봄을 즐기고 있다. 나는 그 공원에 살고 있는 토끼를 좋아하는 아들을 위해 토끼 사진을 찍고 싶었다. 그런데 웬걸 토끼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한참을 찾아보니, 예민한 토끼들은 사람의 시선을 피해 덤불 더미에 웅크린 채 쉬고 있었다. 스트레스에 취약한 토끼의 생존 방식이 나와 별반 다르지 않아 쓴웃음이 났다.


뒤돌아서 집으로 돌아오는 산책의 마무리에는 늘 그렇듯 반성과 다짐이 함께 한다. 나는 내일, 좀 더 나은 내가 되고 싶다. 그러기 위해 솔직함의 레벨을 확 끌어올리고 싶은데, 비결은 없는지 궁리해 본다. 답답하지 않고, 자유롭게... 어떻게 해야 될까? 생각만으로는 해답을 만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고개를 드니 눈앞에 뽀얀 벚꽃 잎이 훨훨 날아간다. 지극히 자유로운 그 장면이 마음 깊이 저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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