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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아 Sep 03. 2020

길치의 비애

        

                        


나는 완벽한 길치이다.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 소뇌가 덜 발달되어서 그렇다고 하는데 그것이 정도가 좀 심한 편이다. 그래서 늘 내게 저장된 공간들은 연결성이 없다. 예를 들어 바로 이웃한 음식점이 있다고 치면, 나는 두 곳을 다 들려봤지만 그 둘이 어떤 길로 연결되어 있는지 알지 못한다. 

몰론 각각의 개별 된 장소로는 선명하게 기억한다. 함께 갔던 사람, 그때 그곳의 냄새, 벽의 색깔과 음악, 분위기까지 남들이 잊어버린 것도 세세하게 기억해 내지만, 그곳에 어떻게 도달했는지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여자들의 약한 부분이라고 하는데, 나는 상태가 심하다. 그래서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가는 것을 유독 싫어할 수도 있다.


어찌 되었건 이십 대까지 명동의 신세계와 코스모스, 롯데의 삼각관계를 파악하지 못했다. 영원히 인식되지 못한 채 코스모스가 없어졌다. 지하도로 내려가면 도대체 어느 길로 올라가야 내가 원하는 목적지로 갈 수 있는지 백 프로 헤맸다. 맨날 가도 맨날 몰랐다. 생각해 보면 짜증 날 만도 한데 나는 그게 그다지 불편하지 않았다. 원래 그러니까 그러려니 했다. 한 번에 목적지를 찾아가는 날이면 어쩐지 내가 참 똑똑해진 것 같기도 했다.


운전을 싫어하는 것도 그와 비슷한 이유이다. 그나마 내비게이션이 보급되면서 한결 목적지에 도달하는 시간이 짧아졌고, 핸들 잡는 일이 두렵지 않아 졌다. 네비가 없었을 때는 아무리 익숙한 길이라도 진입로를 놓치기 태반이어서, 뱅글뱅글 돌거나 아니면 아예 다른 곳으로 가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나에게 길은 목적지를 향해 있는 것이 아닌 듯하다.

며칠 전에도 친구들과 약속이 있었는데 북촌 근처의 그곳은 처음 가본 길이었다. 

사실은 처음이 분명히 아니었으나, 나는 그렇게 인식했다. 약속시간에 맞춰 경복궁 역에 도착했지만 나만 거의 삼십 분이 늦었다. 그저 아무 생각 없이 길 따라 걸었기 때문이다. 가는 도중 살짝 그곳이 안중에서 없어지기도 했다. 

추위에 떨면서 나를 기다린 친구들은 구글 앱을 왜 이용하지 않았냐고 원성이 자자했지만 나는 그냥 ‘몰라’하고 말았다.

  





생각해 보면 나는 늘 그랬다. 목표를 잃어버리는 것이 비단 그저 길을 걷는 것뿐이랴...

호기심은 많아 시작은 원대하다가도 얼마 지나지 않아 심드렁해졌다. 목표를 잃어버리고 갑자기 내가 왜 이 고생을 해야 하나 하는 회의에 빠져들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포기하고 원래 생각했던 목적은 상실되었다.


젊은 시절, 일은 꼭 먹고살 만큼만 하고 약간이라도 성가신 구석이 생기면 때려치웠다. 벌인 일만큼 때려치운 일이 많아 부끄럽기도 했다. 

그때 우리 업계는 그날 놀만큼만 일하고 말겠다는 멋들어진 선배들도 드물지 않았다. 치기 어린 사람들이 많은 그룹이었다. 나도 함께 그렇게 보낸 세월이 하 세월이다. 이제와 보니 목적 없이 길에서 헤맨 시간이 너무 많았다는 생각이 든다. 끝까지 해보지 못해 아쉬운 것들도 가슴 밑바닥에는 남아있다. 


낭비되고 허투루 소비되었다는 후회, 하지만 다시 돌아간다 해도 똑같이 걸을 수밖에 없으리란 확실한 예측이 씁쓸하다.

시작은 어려워지고, 그나마 여기까지 살아온 것이 행운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이년 전 새로 이사한 아파트에는 무려 다섯 갈래의 길이 있다. 언덕 지대의 맨 마지막 코너에 위치해 있는데, 고립되어 있을 줄 알았던 우려와는 달리 길이 많았다. 토끼 굴에서 빠져나오는 길도 있고, 좋아라 하는 93계단도 있고, 이웃 아파트 산책로와 통하는 길도 있고, 대로변에서 바로 올라오는 언덕길도 있다. 길이 많으면 일단 궁리가 많아진다. 몸이 피곤하면 대로변 완만한 언덕길로, 구경이 필요하면 토끼굴로, 움직이고 싶으면 93계단을 이용하면 된다. 


그래, 그러면 된다.  아무리 길치여도 아직 길이 끝나지 않았으므로 나는 길 위에 서 있고, 꼭 한길이 아니어도 이리저리 헤매다 보면 언젠가 목적지에 도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보다는 멈추지 않고 걷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그리고 사실 목적지란 애당초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목적지와는 반대라고 여겨져도 가보고 싶은 방향으로 걸어보는 것이 맞는 것이다. 길치는 오늘도 길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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