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맨날 우울한 표정이야?
어쩐지 우울한 게 편해.
왜 땅만 보고 걷지?
머릿속이 잡다한 상념으로 가득 차서....
왜 늘 농담 따먹기야?
진담이 뭔지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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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다들 쓸쓸하지 않나?
그리고 모두 자기만의 생각에
갇혀 있잖아.
이 세상에 자신의 진심에 확신이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겠어....
오늘도 길을 나선다. 토끼 굴을 만났을 때 한 치의 망설임도 없다.
왼쪽으로 가면 강변이고, 오른쪽으로 가면 꽤 큰 공원이지만 나는 직진이다.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을 내 산책의 습관을 굳이 말하자면 한적하고 평화로운 이른바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길과는 부득부득 반대로 걷는 것이다.
망설이지 않고 굳이 대로변을, 북적이는 인파들 속으로 고개도 들지 않고 뛰어 들어간다. 마치 깊은 물속을 향해 헤엄쳐 가듯 도심 한가운데로 깊이 더 깊이 파고들어 걸을 때 갑갑했던 마음이 탁하고 풀린다.
어쩐지 숨이 잘 쉬어지는 것 같다.
지나친 생동감과 출처 없는 에너지로 대다수의 사람들이 불편해하는 그 거리를 나는 몇 시간이고 헤매며 걷는다.
쏘다닌다는 게 가장 적절한 표현이다.
휩쓸려 걷고, 덩달아 걷고, 때로는 어깨를 부딪치며 걸어간다.
걷다 보면 그 길은 정처 없는 피난길 같다가 변두리 도시의 엉성한 축제 같기도 하고, 그러다가 포스트 모더니즘의 발현지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다양하고 복잡하고 때로는 정신이 없지만 늘 날카롭게 살아있다.
큰 대로변에서 시작된 산책은 자연스럽게 작은 골목길로 이어지고 배가 고프면 식당 탐험이 된다. 식욕이 없을 때 남이 해준 밥은 그래도 맛있다. 기분이 나면 혼자 삼겹살을 시켜먹기도 한다. 그러다 굳이 살게 없어도 옷집으로 운동화 가게로 서점으로 영화관으로 꼭 곧이어 약속이 있는 사람처럼 뒤처지지 않고 걸어간다.
‘낙오되지 말아야지....’ ‘행진하는 거처럼 걸어야지...’
사람들의 움직임은 매 순간 거대한 흐름의 물결을 만들어 내지만 그 어떤 구속도 없이 스스로 자유롭기만 하다.
천천히 빠르게 도시의 거리가 흘러간다. 음악이 흩어졌다 모이고 상점의 불빛이 반짝이다 소멸된다. 내게 눈길을 주는 사람은 없지만 나는 어쩐지 하나도 외롭지 않다. 나는 지치지 않고 더 새로운 에너지로 타박타박 걷는다. 나의 발걸음은 특색 있는 리듬이 되어 내 귀에만 울려 퍼진다.
내가 지금 향하고 있는 곳이 어딘지, 내가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지금 그리워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아무도 끼어드는 이가 없어 시간은 내 것이 된다. 거리의 웅성거림은 침묵보다 평화롭고, 낯선 이의 무표정한 얼굴은 친구보다 담백한 위로를 준다. 혼자만의 산책은 지칠 때까지 계속된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고개를 들어 문득 바라보면 저 멀리 집이 보인다. 손에는 맛있는 간식이 쥐어져 있을 때도 있다. 다 소모되었으므로 오늘 밤도 새롭게 꿈꿀 것이다. 그래서 걷는 일은 내게 있어 가장 좋아하는 것 중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