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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아 Sep 13. 2020

통속적 스토리홀릭

                              


나는 유전적으로 스토리에 홀릭되어 있다. 엄마가 광적으로 그랬고 그 인자는 내게로 내려왔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 신혼이었던 엄마는 라디오 드라마에 팔려 아무리 초인종을 눌러도 아빠의 귀가를 알아채지 못한 적이 있었다. 추운 날 대문 밖에서 호되게 떨었던 아빠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 신혼부부의 소중한 재산목록 중 하나였던 소니 라디오를 마당에 던져 박살 내 버린 적이 있다고 들었다. 아빠의 고백으로는 사실은 아까워 살짝 던진다고 한 것이 돌멩이에 부딪쳐 라디오는 회생불능이 되고 말았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엄마는 재미있는 영화를 볼 때면 영화관에 죽치고 앉아 몇 번이고 다시 보는 취향을 가졌는데,  질려버린 아빠는 나중에 죽으면 영화관 밑에 묻어주겠노라는 살벌한 농담을  날리기도 하였다. 예전의 영화관은 한번 들어가면 나올 때 까지는 공짜로 영화를 볼 수 있었다. 

어찌 되었던 집착 저는 스토리 홀릭 증상은 엄마에 이어 나에게도 어이없는 에피소드들을 양산케 했다.


초등학교 무렵 아빠는 TV는 바보상자라며 '육 개월 TV 보지 않기 프로젝트'를 감행한 적이 있었다. 나름의 교육적 시도였던 셈인데 나는 거의 정서불안 증세에 빠져 버렸다. 

그 시절 핫한 드마라는 ‘꽃피는 팔도강산’과 ‘여고시절’이었다. 드라마 시간이 되면 골목골목을 돌며 TV가 켜져 있는 아무 집 문이나 두드리며 ‘꽃피는 팔도강산 보세요?’ 하며 드라마 구걸을 하곤 했고, 문을 열어주면 들어가 기꺼이 모르는 사람들과 드라마를 보았다. 궁하면 통하는 법이었다. 

조간신문에 실리던 연재소설 등은 어찌나 감질나게 재미있었던지 신문 쉬는 날이면 무료했고, 지금은 줄거리도 가물거리지만 김말봉 선생의 통속소설 '찔레꽃'은 너무 읽어 나달나달 해질 정도였다.






조금 더 자란 고3 때는 이덕화 정애리 주연의 드라마 ‘못 잊어’가 인기 절정이었는데 방영시간이 되면 도서관에서 몰래 기어 나와 학교 앞 대웅 서적으로 숨어 들어가곤 했다. 다행스럽게도 서점 사장님은 본방사수를 위해 헐떡이며 들어서는 내게 ‘못 잊어 왔어?’ 하며 TV 앞 지정석을 내주셨다. 따뜻한 난로 앞 의자를 내게 양보하신 유머러스한 서점 사장님은 나를 ‘못 잊어’라고 별명 삼아 불렀다. 지금이야 다시 보기가 있어 자유스럽고, 넷플렉스가 24시간 계속되지만 그때는 본방을 놓치면 기약이 없었다.      

꽂히면 포기하지 않았다. 봐야 할 주말 드라마가 있으면 집에서 꼼짝 않고 있었는데, 연애 때 남편은 이런 모자란 나를 위해 그 시절 배터리가 수도 없이 들어가야 하는 최신식 휴대용 TV를 구입해서 한적한 곳에 차를 세워두고 드라마를 보여주는 호사를 선사하기도 했다.


소설이건 드라마건 영화건 장르를 가리지 않고 스토리에 홀릭된다. 

이십 대 무렵에는 주말 목욕탕 나들이 후 각자 좋아하는 연애소설을 읽으며 저녁 드라마를 기다리는 시간을 우리 모녀는 가장 좋아했다. 그거면 충분했다. 

뻔한 스토리 건 시시한 스토리 건 사실 퀄리티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어느 지점에서건 마음을 건드리는 포인트는 발견되기 마련이었는데 그야말로 감정이입의 능력은 탁월했다. 뻔하면 뻔할수록 신파면 신파일수록 더 당기는 맛이 있었다. 이야기에 집중할 때는 어느 누구의 방해도 허용하지 않았다. 입을 헤 벌리고 드라마에 열중하고 있는 모습이 다소 멍청해 보이기도 하겠지만,  그 순간 머릿속은 완전히 비워져 이보다 더 효율적인 힐링은 발견할 수 없었다.


세월이 흘러 엄마도 늙어가고 나도 늙어가지만, 우리 모녀의 스토리 홀릭은 변하지 않았다. 이야기 속에서 만나는 누군가의 인생과 사랑, 슬픔과 죽음은 같은 것 같지만 같지 않고 다른 것 같지만 신통하게도 비슷하다. 사람 사는 이야기만큼 흥미로운 것은 이 세상에 없는 법이다. 우리 모녀는 살면서 이야기를 통해 세상을 구경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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