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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아 Sep 21. 2020

쑥국

 

       


1995년 나는 서른두 살의 노처녀였다. 이십 대 중반부터 선을 백번쯤 봤지만 상대를 만나지 못했고, 신랄하게 이야기하자면 결혼 적령기 남자 백 명에게 차인 꼴이었다. 연애는 철들 무렵부터 끊이질 않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결혼 상대자로는 취급받지 못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모를 일이었다. 하긴 결혼 자체에 대한 흥미가 부족한 채 연애를 하고, 선 자리에 나가 앉아 있었으니, 똑똑한 남자들이 그걸 몰랐을 리 만무하다. 고개가 절로 돌아가는 미인형도 아닌 주제에 나는 적극성과 절실함이 부족했다. 어찌 되었건 서른을 넘기자 뭔가 채워지지 않은 허전함에 슬슬 안달이 나기 시작했는데도 변화는 없었다.


그러다 갑자기 혼자 살게 되었다. 남동생은 먼저 결혼을 했고, 안식년을 빌미로 부모님이 해외로 떠났다. 서른두 살, 빈집에 남겨졌다. 지금이야 대학생만 돼도 독립이 반인 세상이지만 그때는 좀 달랐다. 혼자 사는 여자가 드물었고, 친구들은 죄다 결혼했으니 같이 놀아줄 사람이 없었다. 밤에 멍청하게 TV 앞에 앉아 있으면 이렇게 살다가 혼자 죽어나간들 아무도 모르겠구나 하는 독고사의 두려움이 제대로 느껴졌다. 나름 열심히 일하고, 될 수 있으면 매일 저녁 약속을 만들어 고립되지 않으려 노력했다. 하지만 역부족이었고, 심신 미약인 나는 여러모로 혼자 살 품성은 될 수 없음을 통렬히 깨달았다. 알고 보니 나는 상당히 외로움을 타고 의존적인 여자였다.      


그렇게 어두운 겨울을 보내고 봄을 맞이했는데, 어느 날 오전 회의 후 동료가 사주를 보러 가자고 권유했다. 아닌 게 아니라 언제쯤 짝을 만나게 되는지 궁금하던 차였다. 종로구 내자동의 유명한 철학관 이래서 기대를 잔뜩 한 채 따라나섰는데, 상담 결과는 참담했다. 사주를 넣자마자 일찍 결혼을 하면 무조건 실패고, 늦으면 늦을수록 좋다고 하는데, 적절한 시기가 입이 딱 벌어질 만큼 늦은 나이였다. 나는 기대한 만큼 분노했다. 그래서 그 집을 나서자마자 현금인출기에서 곧바로 복비 이십만 원을 호기롭게 뽑아 다닥다닥 붙어있는 내자동 철학관 열 집을 그날로 순례했다. 내 사주 결과의 통계를 보면 해결점이 보일 것도 같았기 때문이었다. 복비가 아까웠지만 다급했으므로 눈을 감았다.


똑같은 사주의 결과는 지멋대로였다. '성공한다'에서 '별 볼일 없다'부터 '부모덕이 있다'와 '자수성가형이다'는 물론 '수명이 짧다'와 '길다'에 이르기까지 이렇다 할 공통점을 찾기 어려웠다. 이상하게도 ‘결혼만은 만혼이 정답이다’라고 입을 모아 이야기했다.

나는 상당 부분 의기소침해졌으나 최선을 다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앞으로 수십 년을 혼자 살기에는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이제껏 찾아볼 수 없었던 적극성과 절실함에 진정성까지를 장착해보기로 했다. 그때까지 오랜 친구로 남아있던 지금의 남편을 집으로 초대했다.      






나와는 무관해 보였던 여성성을 발휘해 최고의 신붓감으로 인정받아, 그 길로 친구관계를 깔끔하게 청산해 볼 요령이었다. 저녁을 손수 만들어 먹이기로 작정하였고, 메뉴는 이제 막 봄이 시작되는 시점이었으므로 향기로운 쑥국과 생선전으로 정했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성질 급한 나는 일사천리였다. 곧바로 약속을 정했다. 결혼한 지 3년 차 되는 솜씨 좋은 친구에게 상세한 레시피를 전수받고, 마트에서 꼼꼼하게 장을 봤다. 쑥국과 생선전쯤은 해보지는 않았지만 할 수 있을 거 같았다. 마트에서 돌아와 막 밑 손질을 시작하려는데 운 나쁘게 아파트 전체가 단수였다.        


지금 생각해도 단수면 요리를 깔끔하게 포기했어야 옳았다. 하지만 나는 이미 멈출 수 없는 폭주족이었다. 꼭 성공적인 저녁 상차림을 완성하고 싶었다. 그래서 단지에서 유일하게 물이 나오는 일층 수위실 앞 수돗가에서 물을 길어 12층 집까지 날랐다. 그러고 나니 이미 피곤해서 곤죽이 되었는데도 부족한 물로 야채를 손질하고 세심하게 된장을 풀었다. 이제 향기로운 쑥국 냄새로 온 집안이 그득할 차례였다.  


하지만 아무리 끓여도 쑥이 가라앉기는커녕 뻣뻣하게 솟아오르는 폼이 뭔가 불길했다. 엄마가 끓여주던 쑥국의 형체는 나타나지 않았다. 약속시간은 다가오는데 나는 멘붕이었고, 생선전은 시작도 못했다. 친구에게 전화로 팔짝팔짝 뛰다가 싱크대 위에 놓인 포장용기에 눈이 닿았다. 32살 노처녀인 내가 팔자를 바꾸기 위해 최선을 다해 고른 국거리는 쑥이 아니라 쑥갓이었다. 말이 되는가? 쑥과 쑥갓쯤은 당연히 구별했겠지만 욕심에 눈이 멀어 말도 안 되는 실수를 한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 세상사는 절대로 마음먹은 대로 되질 않는 법이다.      


성공적인 봄 저녁상은 고사하고 설익은 맨밥에 오징어 젓갈 하나로 오랜 남사친과 나는 어색한 저녁을 먹었다. 황량한 밥상에 대해 이실직고했고, 웃어 주었는데 나는 영 기분이 별로였다. 그리고 즉각 의욕도 상실했다. 하지만 적극적이고도 간절했으며 진실한 쑥갓 국의 해프닝은 그에게 닿았는지 이듬해 그와 결혼했다. 결혼하고 보니 그는 쑥국을 싫어해서 그날의 실수를 만회할 기회는 별반 주어지질 않았다.


그리고 나는 그일 이후로 더 이상 나의 사주를 다른 이에게 상의하지 않는다. 인간의 삶에 운명은 분명히 존재한다고 생각하지만 그걸 해석하는 방식은 내게 있다고 믿어졌기 때문이다. 뭐 엄청나게 긍정적인  새 나라의 어린이 성향은 아니지만 내게 닥친 상황은 내 생각으로 해석하는 것이 훨씬 드라마틱하다. 향이 진한 쑥의 파릇한 계절이 또 한 번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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